김미숙 4명

by 함문평

할아버지는 장손을 위해서라면 횡성에서 키우는 한우 99마리를 다 팔아 학원비에 써도 된다고 하셨지만 4수를 할 수가 없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개혁 입법이라고 자랑삼아한 일 중에 하나가 징집 연령을 단축시켰다.


병역법 개정이 없었더라면 4수를 해도 되었는데 82년 대학생이 못되면 군에 입대해야 했다.


의과대학교나 자연과학대 생물학과 기려던 것이 전기대학교 떨어지고 나니 이과반으로 갈 곳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종합대학교 서원대학교가 되었지만 1982년 버전은 후기였고 청주사범대학교였다. 이과반 출신이지만 중고등학교 교지 편집에 가담한 문예부라 국어교육과를 지원했고 합격했다.


교양법학개론 시간에 교수님이 출석을 불렀다. 김미숙하고 부르니 4명이 동시에 네 하고 대답했다. 국어교육과 김미숙 둘 체육교육과도 김미숙 둘이었다.


교수님은 웃으면서 한 교실에 동명이인이 4명인 것은 교수생활 15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셨다.


지금은 대학교재도 한글이지만 그때 법학개론은 국한문 혼용인데 법조 용어는 한자였다. 무작위로 낭독을 시키니 한자 약한 여학생들은 울상이었다.


옆자리 체육교육과 큰 김미숙이 부탁이라고 다음 시간까지 한자에 음을 달아달라고 책을 나에게 주었다.


각 과목별로 리포트 쓰기도 바쁜 시간이지만 수업 쉬는 시간에도 들고 다니면서 교재 1페이지부터 마지막 값이 얼마인지까지 한자는 모두 한글 음을 달았다.


정말 가경 어른에게 천자문을 배울 때는 정말 싫었는데 그 천자문을 입학 전에 익힌 덕분에 중고등학교 6년간의 한문과목은 선생님 설명 없이 다 이해가 되었고 S 중 100년 역사에 지금도 깨지지 않는 연소 한문 시험 100점이었다.


연필로 한자에 음을 달아주었더니 그녀는 일주일 동안 털실로 조끼를 짜서 나에게 주었다. 빈 강의실에 가서 조끼를 입고 나왔다. 하늘색 털실로 짠 조끼를 입으니 미남은 아니지만 인물이 살았다.


딱 맞았다.

그 일로 국어교육과 여학생들이 한동안 나와 말도 안 했다. 여기저기서 털실 조끼에 대해 수군거렸다. 남자들은 교재에 음을 달이 달라는 것은 핑계이고 너를 그녀가 좋아하는 모양이라고 한번 시도해 보라고 부추겼지만 나는 원래 손톱 긴 여자와 신라공주도 아니면서 귀걸이를 치렁 치렁한 여자는 맘에 없었다.

국어교육과 키 작은 김미숙은 함문평 털조끼 입으니 좋아하면서 빈정댔다. 그녀뿐만 아니라 국어교육과 78명 중 여자 39명 전부 그 조끼 사건 때문에 나를 외계인 취급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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