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해운대 신시가지가 된 탄약창 경비중대장을 마칠 때 군수사령부 의장대장 김 대위 보직이 끝나서 경비 중대장 곧 마치는 3명이 후보가 되었다.
군수사령부 잔디 연병장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군수사령부 침모장 준장 인사처장 대령 근무과장 중령이 면접관이었다.
잔디 연병장을 큰 걸음으로 반듯하게 걷기와 걸어가면서 우로봐 구호와 부동자세로 부대차렷 열중쉬어 뒤로 돌아 앞으로 갓 구호였는데 키가 문제 되었다.
후보자 박 대위는 키 185인데 오다리고 이대위는 키 178인데 구령소리가 작았다. 아무리 다시 해도 군악대 악기소리에 구령이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다리도 반듯한 11자 다리고 목소리도 무심천 강변과 구룡봉서 학생장교시절 단련된 목소리라 군악대 연주를 해도 심사하는 세분들 귀에 구령 소리가 들렸다.
한참 고민하던 참모장님과 인사처장이 함 대위로 결정했다고 하시면서 10만 원 수표 두장을 주시면서 멜본제화에 가서 새로 뽑힌 의장대장이라고 말하고 행사화 뒷급8센치 특수신발을 맞추게 했다.
제화점 사장님이 뒷굽만 높이면 앞으로 넘어진다고 완만한 경사가 되게 앞굽도 높였다.
놀이공원에 피에로 복장을 한 아르바이트생처럼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붕 뜬 기분이었다. 잔디 연병장에서 팔월 뜨거운 태양 아래 연습을 했다.
그런 연습을 하고 나니 행사에 이상 없었다.
의장대장은 장군들 취임식 퇴임식 부대창설기념일 국군의 날 현충일 등 행사에 참가하는데 이례적으로 어린이날과 프로야구 개막식에는 사직야구장에 가서 의장시범을 벌였다.
의장대는 선발도 엄격하고 훈련도 힘들었다. 현역으로 군대 복무한 사림은 일 것이다. 소총을 어깨에 둘러매고 행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소총 하나만 없어도 얼마나 몸이 가벼운지.
신병이 4명이 총을 들고 탈영했다.
군대서 병사가 총을 안 들고 혼자 탈영하면 탈영 둘 이상 탈영하면 집단탈영 총 들고 4명이 탈영한 것은 집단무장탈영으로 육본상황실과 청와대상황실까지 30분 이내 긴급으로 보고할 사항이었다.
보고하자마자 참모장님이 걱정이 되어 내려오셨다. 여군대장 성이 김인지 이인지 오래되어 잊었지만 이름이 수정인 소령이 여군에서 의장대로 오셨다. 좁은 의장대장실에서 4인조 무장탈영병 체포에 대한 회의를 했다.
본근대와 여군대 중사 이상을 차출해서 부산역 고속터미널 해운대역 시외버스터미널에 보냈다. 참모장님이 이거 미신이라고 무시 말고 지금은 물에 빠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하는데 기장에 아주 용한 점집이 있다고 하는데 가보라고 하시면서 봉투에 5만 원을 담아주셨다.
본근대장에게 보고하고 수송대에서 배차된 지프를 타고 기장 점집에 가서 4명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알려주고 생시는 모른다고 했다.
한참 주문을 외우고 자기가 모시는 신에게 예식을 올리더니 점괘가 나왔다고 4명 모두 자살은 안 할 것이고 총은 부대 안에 운동기구나 운동장을 잘 찾아보라고 했다.
기장 공중전화 부스에서 부대로 전화하여 점괘를 말해주고 의장대 병력으로 부족하니 본부중대 근무대 여군대 수송대 도움을 받아 연병장을 수색하게 했다.
정말 놀랄 일이 총기 4정을 군수사령부 대연병장 잔디밭에서 바닥에 눕혀진 것을 찾았다. 병사 4명도 각 터미널로 기차역으로 보낸 간부들이 잡아 부대로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