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보고 싶은 밤
여기 브런치 스토리에 할아버지와 손자 이야기를 여러 번 썼다. 그럼에도 할아버지 이야기를 또 하는 것은 할아버지에게 죄송하고, 어떻게 할아버지가 30년 사후 말씀하신 것이 신기하게 국내나 국외나 발생하는지 정말 신기하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재물 욕심 내지 마라를 정말 수없이 말씀하셨다. 할아버지 말씀이 내가 만주서 아편으로 번 돈을 김구 선생과 김일성에게 군자금으로 보내지 않고 모으기만 했다면 강원도 땅을 다 사고도 남을 돈이라고 하셨다.
절대 재물은 재물이 사람을 따라와야지 사람이 재물을 따르면 안 된다고 하셨다. 니 아비 수준을 알기에 말로는 강림에 중학이 없으니 원주로 전학을 시키나 서울로 전학을 시키나 학비 거기서 거기다. 먹고 입고 자는 거 흥청망청 쓰느냐 검소하냐 차이다. 손자 혼자 객지 보내면 친구들 와서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면 같이 닮는다. 그러니 할아비 할미가 장손만 뒷바라지할 테니 아래 딸딸 아들아 들은 알아서 하라고 서울로 장손만 전학시켰다.
세월이 흘러 요즘도 명절에 두 여동생 두 남동생 만나면 성토 대상이다. 우리 집에서 사람 자식으로 큰 것은 큰오빠, 큰형뿐이라고 한다.
할아버지가 장손 하나만 서울서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3과 재수 삼수하여 대학 국어교육과 82학번을 만들어주시고 고향 강림으로 가셨다.
그동안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아편으로 번돈으로 소 99마리와 강림에 논 20마지기, 밭 1만 평, 산 6 정보의 할아버지 재산을 할아버지 인감이 고향집 사랑방 할아버지 벼루함에 있는 것을 알고 있던 아버지가 다 날려버렸다. 그 시절은 다단계도 없던 시절이라 도박과 여자로 날렸다. 그래서 두 여동생, 두 남동생은 아예 대학 진학을 포기한 동생도 있고, 대학 첫 등록금만 집에서 내고 나머지는 과외를 몇 곳을 하거나 정말 학교를 학력고사받은 점수로 4년 장학생이 되는 학교를 마쳤다.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그렇게 할 것을 미리 아셨는지 소 99마리를 사고 더 살 수도 있었는데, 금을 요즘 골드바가 아닌 할아버지식 금괴 덩어리 30냥을 아편 덩어리 한 뭉치와 항상 휴대하셨다.
세월이 흘러 크산티페와 결혼하고 첫 째 딸을 낳고 다음 유산이 되고, 4살 차이 아들을 임신하고 그 시절은 초음파 검사를 해도 딸인지 아들인지 알려주지 않던 시절에 크산티페에게 마지막 월경일을 물어보시고 병원서 임신 몇 주라더냐 물어보시더니 웃으시면서 아들이겠다. 증손자 잘 키워라. 나는 증손 얼굴 보지는 못할 건데 키가 나처럼 장신인데, 당신은 일정시대라 못 먹고 커서 옥수숫대처럼 가늘고 길지만 증손은 키도 크고 몸무게도 씨름 선수해도 될 거다 하셨다.
정말 아들은 1사단 신병교육대 입소 시 키 190에 몸무게 103킬로 그램 체중초과로 귀향조치를 받았다. 아들은 군의관에게 수료식 전날까지 90으로 줄일 테니 귀향만 시키지 말고, 수료식 전날 체중을 재라고 했다.
군의관도 골 때리는 인간이지 귀향을 취소시키고 현역 훈련을 받게 했고, 수료식 하루 전 89킬로 그램에 신병교육 수료식에 표창까지 받았다.
할아버지 돌아가신 지 금년 12월 12일이면 30년이고 아들이 12월 14일이 만 30세 되는 날이다.
할아버지는 죽고 30년 후가 나라도 천지개벽이고 나라밖도 천지개벽이다. 그런데, 조선에 정말로 단군의 홍익인간을 아는 사람이 지도자가 될 것이고 나라 밖은 미국, 일본, 중국, 소련[러시아]이 지도자가 한심한 놈들이 하고 있어 조선의 지도자가 4강의 지도자를 요리 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