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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 먹기 힘든 사람. 54

인민, 동무, 여사

by 함문평

중학 국어 선생님 한 분이 특이한 경력자였다. 지금은 경기도 파주 장단이 우리 행정구역이지만 광복 직후 미군과 소련이 분할 통치 시기는 북한 땅이었다.

평양사범을 나오고 장단서 초등학교 선생 중에 광복을 맞이했다. 어쩔 수 없이 교원 강습에 소집되어 김일성 장군의 노래와 몇 가지 군가풍 노래를 배우고 학생들에게 풍금을 켜면서 가르쳤다. 6.25 전쟁 시기에 부산까지 내려가 평양서범 졸업증서나 교원증서를 챙기지 못한 탓에 과거 경력을 인정받을 수 없어 껌팔이 구두닦이, 손수레로 짐 운반하는 일을 했다.


휴전이 되고 서울로 올라와 낮에는 남대문 시장 점원으로 일하고 야간대학 국문과를 졸업했다.

안 되는 사람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지지만 되는 사람은 앞으로 넘어져도 넘어진 자리에 동전이 있다는 것이 선생님 말씀이다.


선생님 장단에서 가르친 제자 한 명이 내가 졸업한 학교재단에 가을 추수가 끝나면 총 몇 만평의 땅에 소출된 벼가 몇 섬. 몇 대 몇으로 소작인에게 얼마 주고, 심부름하는 자기 몫 얼마 학교 재단에 납부할 벼 몇 섬을 농협수매 몇 섬 농협서 안 받아준 등외 품 몇 섬을 미곡상에 판매한 것 얼마를 서울로 보고하러 왔다가 영등포 시장에서 만난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반가운 사람 만나면 가는 곳이 밥집이라 밥과 소주 한 잔 하면서 헤어졌던 10년의 스토리를 말하던 중 당신이 사실 내일 교사 모집 응시 원서 낼 거라고 말했다.


그 소작료 심부름하는 영향이 다는 아니지만 선생님은 그 제자와 부친에게 늘 고마움을 말씀하셨다. 국어선생님 4명 중에 모두 S대 출신인데, 자신만 비 S 대라 학생들이 졸업 후 욕할까 봐 더 열심히 수업준비, 강의교안을 만드셨다는 것이 대학생이 되어 세배를 가서 들은 말이다.


그분이 제자 중에 시인, 소설가, 국어학자가 나오면 작품에 동무, 인민이 사실은 좋은 말인데 북한이 선점해 못쓰게 한 단어라고 하셨다. 하지만 시인이 시어로 쓰고, 소설가가 작품 중 대화로 쓰면 대법원 가도 승소하니 쓰라고 하셨다. 여기에 여사를 더 보태고 싶다.


국어사전에 여사는 사회적으로 지체 높은 여자를 부르는 말인데, 요즘은 여자도 명함에 함가연 CRO로 표시하고 그렇게 부르지 여사라고 안 한다.


요즘 여사는 여자 간병인을 여사라고 부르고 여사 환경미화원을 여사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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