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무비리
병무비리 원조는 조선시대 균역법이 문란해진 것까지 찾아봐야 하겠지만 그건 너무 먼 이야기고 현대사에서 찾자면 이승만 정권 하의 병무부조리다.
병무비리 1호는 헌병총사령관이다. 그에게 원창희라는 아들이 배재고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육군사관학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8세 이상인 대한민국의 국적을 취득한 자에게 일정한 시험을 거쳐 선발한다고 된 교칙을 어기고 나이도 17세 고교 졸업도 안 한 중학교 5학년 창희를 시험도 없이 합격시켰다.
박경석 예비역 준장은 대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과 시험에 합격하고도 나이 미달로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낙심한 그에게 담임 선생님이 육군사관학교에 합격했으니 빨리 태능으로 가라고 했다.
대학시험에서 과수석보다 기쁜 사람이 예비합격자 중에 입학금을 못 내거나 결격사유로 떨어진 학생의 뒤를 이어 합격하는 대기자 합격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 기쁨을 어찌 그리 잘 아냐고요.
경험자라 압니다. 할아버지 재산이 횡성 한우 99마리였는데 그거 팔아 장손을 서울 경기고등학교 보내려 위장 전학을 시켰는 더 박지만 때문에 서울이 이미 고교추첨으로 변했다. 뺑뺑이로 흑석동 고등학교에 갔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종로 2가 학원 특수반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느라 84번 버스를 탔다. 84번 화계사에서 흑석동까지 왕복 버스가 갈월동에서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버스 안내양이 회수권을 나누어 주고 죄송하다고 했다.
나중에 군대 가서 보병부대 백 킬로 행군 특전부대 천리행군에 비하면 갈월동에서 흑석동까지 걸음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장손에게는 엄청 힘든 것이었다.
원창희 소위는 헌병 소위로 부산 헌병부대로 배치받고 가경취숙은 전방 보병사단으로 명령이 났다. 원창희 소위는 6.25 마칠 때까지 공산군 포로만 구경하고 박경석 소위는 전방전투에서 사단이 전멸하고 인민군 10사단에 포로가 되었다.
인민군10 사단장은 전문섭 소장이었는데 17세 어린 국방군 소위를 해방군관이라고 부르고 잘 대우해 주면서 인민군 소위가 될 것을 회유했다.
회유를 거부하고 탈출을 했다.
이후 병무 부조리로 어마 어마한 돈을 번 사람은 박노항 원사였다. 장부에 수백 명의 국회의원 장관 차관 이름과 대기업 고의층 이름이 있었다.
한 동안 세상을 난리 치더니 잠잠해지고 유승준이 군대 갈 것처럼 언론 플레이 하고 미국 가서 미국 영주권 얻어 잘 산다는 놈이 한국에 오겠다고 소송을 한다고야.
유승준도 유승준이지만 이 나라 군대도 안 마친 놈이 국회의원 장차관 하는 놈치고 제대로 한 놈이 몇이나 될까나.
나를 국회의원으로 뽑아주면 우리나라 모든 선출직 공무원과 2급 이상은 병역을 필한 자로 한다 한 줄만 만들면 병무 부조리 사라지고 국가 청렴도 새겨 일등 되고 국민소득 미국 스웨덴 추월할 수 있는데 못하는 이유는 국회의원 선출직 공무원 2급 이상에 병역 기피한 놈들이 너무 많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