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놈 때려잡자 김일성

by 함문평

요즘 용산과 여의도 인간들이 자기들이 역사를 공부했으면 얼마나 했다고 돌아가신 이기백 교수만큼 했어 강만길 교수만큼의 백만분의 일도 안 되는 실력으로 뭔 육사 흉상과 정율성에 대해 언급하는지 한심하다.


경 선생은 중학생 손자에게 말씀하셨다. 통일이 되어 북한의 비밀문서가 개봉되면 남한에 동작동 국립묘지에 있는 독립유공자 장군묘 절반은 파서 지들 문중산으로 보내거나 유골 썩고 남은 거라도 화장해서 명수대 앞 한강에 부려 서해를 돌아 친일 했던 북해도로 흘려보낼 유골 부지기 수라고 하셨다.


가경 선생은 때려잡자 김일성 잊지 말자 6.25 표어나 포스터에 경기를 일으켰다. 김일성이 나쁜 놈은 맞지만 해방 이전의 김일성과 해방 이후의 김일성을 냉정하게 구분해시 평가해야 한다고.


또한 박정희도 배선엽도 자기의 간도특설대에서 독립군 몇 명이나 죽였는지 고백하고 후손들에게 사죄하고 저승에 가길 기대하셨다 히지만 배선엽 자서전 초판에는 간도특설대에 유감이었다고 하더니만 재판에서는 은근슬쩍 빼더니 나중에는 전혀 아니라는 말에 94세 가경 선생이 현기증을 일으키고 급기야 그해 12월 14일에 소천하셨다.


요즘 보훈부 장관 민식이 형이 어느 학교 무슨 과를 나왔는지 모르지만 모르면 입을 다물거나 역사학자에게 자문을 구해 언급했으면 가경 선생 손자가 덜 불편하겠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5명 인물을 선정하기 위해 당시 많은 전사편찬 위원들이 동원되었다. 전사편찬 위원은 아니지만 고 김종필 민주공화당 총재가 박정희에게 받은 삼정도를 박경석 예비역 장군에게 죽기 직전 유언으로 전달했다. 김종필은 과연 이 검을 누구에게 주는 것이 검이 임자를 만날까 고민한 것이 박경석 장군이다. 그는 전두환을 정점으로 하는 신군부가 광주 진압 마친 장군들에게 무공훈장을 주는 공적심사를 하라는 것을 거부하고 전역한 분이다. 그런 분이 선정한 육사 5인의 흉상을 박민식 윤석열 이름이 기억 안나는 국방장관은 그걸 아는지 궁금하다.


용산 윤 대통령도 그 자리 김일성이나 박정희만큼 할거 아니면 함부로 김박 흉내 그만 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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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돌아가셨는데 가경 선생도 생존하고 이기백 교수가 우리나라 역사학 교수들이 대부분 박정희에게 연구비를 지원받았는데 이기백 교수 당신은 왜 내가 연구비를 준다고 해도 안 받느냐는 물음에 백지에 선을 좌에서 우로 그었다. 각하 각하가 통치한 기간을 이게 우리나라 역사라면 얼마니 되는지 구간으로 표시해 보십시오 했다.

박정희는 볼펜을 들었으나 어찌할 바를 몰랐다. 왜 총 18년이지만 이기백 교수가 박정희를 독대한 시기는 12년 정도 시기였으니 한 점도 안 되는 게 까불지 마라라는 뜻을 박정희가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고 가경 선생과 역사학자는 옛날 가경 선생 아편 장수 시절 이야기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고 손자에게 한 되 더 받아오너라 하셨다.


용산의 윤 대통령은 기간이 먼지도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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