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선상놈

by 함문평

요즘 서이 초등학교 선성님 사망 49재로 교육당국과 교원단체가 대치 중이다. 강대강의 대결로 한쪽이 부러지는 것보다 한 발씩 양보해서 타협하라고 평론가 패널들은 TV에 나와서 떠든다.


막상 가르치는 교사가 되면 입장이 다르다. 선상님 선생 선생질 선생 놈의 예를 경험과 관찰을 병행해 이야기해 본다.


선상님은 시골 표준어를 모르는 학부모가 정말 고마워서 하는 호칭이다.


지금은 강냉이밥을 월빙식단이라고 보통 쌀밥보다 비싸게 주고 자가용 몰고 강원도 산골까지 찾아가 먹는 세상이 되었지만 1968년에서 1973년 사이 강원도 안흥면 강림리는 점심 도시락 싸 오는 학생 반 도시락 대신 통옥수수 삶아오는 학생 아예 도시락 자체가 없는 점심을 건너뛰는 학생이 섞여있었다.


우리 선배 중에 정말 공부는 잘했는데 너무 가난해 중학 등록금을 못 낼 형편이라 6학년 담임 선생님이 중학교 등록금 고등학교 등록금 대학은 입학금만 대주고 나머지는 네가 공부 잘해 과수석으로 다니던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다니라고 했다.

그 선배는 과수석도 하고 학생 과외도 하고 해서 군대도 병장으로 전역하고 복학해서도 한 학기만 못하고 그다음 학기부터는 서너 살 어린 동생들과 경쟁에도 이기고 과수석을 했다.


직장에 취직해서 첫 급여를 선생님 내외분 내복을 사드렸다.


다음은 내 친구 XX이야기다. 중학교 졸업 후 40년 후에 동창 모임서 알게 되었는데 이 친구는 중3 때 집안이 망가져서 여름 방학 직전에 자퇴를 했다.


우린 그를 자퇴생이지만 같이 공부한 것으로 인정해 동창 모임에 나오게 했고 참석했다.


세월이 몇 년 흘러 그 담임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문상을 갔는데 선생님 딸 아들보다 더 크게 통곡을 했다.


사연은 그때 자퇴를 했지만 선생님이 출석부에 가짜로 출석을 한 것으로 하고 총결석일 수는 방학 빼고 한 달에 한 번 꼴 열 번의 결석으로 졸업장이 나오게 하시고 졸업식이 다 끝난 3월 입학시즌에 수소문해서 너의 중학졸업장 행정실에 있으니 찾아가거라 하셨다. 그 말은 들은 우리 동창 일행은 다 같이 펑펑 울었다.


파란 마음 하얀 마음 이전 버전에서 훌륭한 국어 선생님 다음으로 오신 분도 나는 국어를 잘해서 좋아했다.


문평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관심도 없던 친구들이 검색창에 함문평 엔터 하면 나온다는 말에 그가 나를 출판사에 연락해 너는 국어 잘해 그 선생을 선생님이라고 부르겠지만 난 선생 놈이라고 한다고 했다.


당연히 왜라고 묻기도 전에 그 조 XX 졸업한 지 사십 년이 지냈지만 선생 놈이다라고 하면서 들려준 말이 문평이 넌 조 미친개 담임 한 번도 없어서 모르는 모양인데 담임이면 애들 경제 수준 다 아니까 잘 사는 애들 면담해 과외하라 하고 과외받는 애들은 이뻐하고 자기처럼 잘 살지만 이미 다른 학원서 종합반으로 국영수과 다 공부하는데 국어만 따로 과외할 수 없다고 하니까 자기가 영어 수학도 우리 학교 영어수학선생 동기와 연계해 공부하니 시험 소스도 시내 과외보다 좋다고 하는 걸 그래도 거기 잘 배우고 있어 않끈었다고 담임 내내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