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뎐. 83
할아버지의 아내이고 나의 할머니 송 씨는 한문도 한글도 배운 적이 없다. 동생 나의 이모할머니는 무당이었다. 그야말로 어느 닐 예고 없이 신내림을 받았고, 원주 일산동에서 어머니 무녀 집도하에 소정의 신내림 굿을 하고 독립된 굿당을 만들고 굿을 했다.
윤석열에게 포기하재 말고 사법시험을 더 보게 한 무정스님이 있다면 작가에게는 이모할머니 무당이 고3 때 재수 없는 말을 해서 할아버지가 인연 끊자고 했다.
고3여름 방학에 학교서 보충수업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무당 이모할머니가 와 계셨다.
지난 설날에 고3이 뭐 벼슬은 아니지만 공부에 올인한다고 원주, 횡성, 강림 일가친척에게 세배도 안 가고 공부했다.
이모할머니 설에 세배도 못했는데, 절 받으세요 하면서 큰절을 했다. 혹시 세뱃돈을 주시나 했더니 부적을 주셨다.
조카 손자가 금년 운수가 박정희 대통령도 나쁘지만 나도 극히 시험운이 없다고 부적을 하나 써왔다고 주셨다.
붉은 경명주사에 알 수 없는 그림 같은 상형문자를 쓴 것을 접어 누런 봉투에 담아 늘 지니고 다니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이모할머니 배웅을 마치고 방에 오자마자 부적을 달라고 했다.
교복주머니서 꺼내드리니 바로 부엌 연탄불에 태워버렸다.
골 때리는 일이 벌어졌다.
10월 26일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
12.12군사반란으로 작가는 종로 2가 학원 수업 마치고 오다가 서울역서 버스가 갈 수 없어 안내양이 되돌려준 회수권을 받고 걸어서 흑석동까지 왔다.
거기서부터 내 인생이 꼬였다. 본고사에 영어 과락, 재수해도 그래, 삼수하고도 전기대 낙방이었다.
할아버지는 다급했지만 자존심이 있어 이모할머니 무당은 안 가고 미아리 언덕 위에서 아래를 보고 가장 손님이 많은 만신집에서 장손의 운명 상담을 했다.
신기한 일이 합격했다.
비록 지방대지만 박정희 미움받아 서울대 교수 재임용에 탈락한 교수 외 다수 좋은 교수 강의를 일반선택으로 수강하고 졸업했다.
할아버지 말씀이 내 죽고 30년 후에 신내림 받았으면 굿을 하고 무당의 길을 가면 본인도 편하고 나라도 안정될 것을 그놈 욕심으로 신내림 굿 거부하고 아편쟁이처럼 마약으로 연명할 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