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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로 흥한자 칼로 망하고

할아버지 뎐. 82

by 함문평

나의 할아버지는 인생이 총각시절 서당공부 십 년, 맘에도 없는 증조할아버지와 나의 할머니의 부친과 막걸리 한잔으로 자네 아들과 우리 딸 혼인시키세? 예, 그러시죠? 그것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부부가 되고, 장손인 함문평이 태어났지만 할아버지는 장손에게 절대로 결혼은 니 아비가 지정해 주는 여자와 결혼하지 말고 장손이 맘에 드는 여자와 결혼하라고 하셨다.

그런데, 골 때리는 일이 생겼다. 할아버지가 장손 학비 대느라고 고향 강림서 소를 팔고, 송아지 사기 위해 돈을 찾고 농협을 갈 때마다 상냥하게 인사하는 창구직원이 눈에 들어왔다. 아버지도 영농자금 대출과 이자 갚는 일로 강림농협에 다니다 보니 그녀의 상냥한 인사에 녹은 것이다.

전방으로 관보가 왔다. <조부 위독 급래요망> 관보를 인사과에서 접수했다. 신병교육대 인사장교 겸 화생방 교관 함 중위가 결재받았다.

그 시절 중위 봉급 20만 원에서 재형저축 8만 원 공제하고 12만 원을 수령 시절 거금 3만 원을 봉투에 담아 여비로 쓰라고 신병교육대장이 주었다.

고향 버스정류장에 내리니 할아버지가 나와계셨다. 아니, 위독하다는 관보로 특별휴가 나왔는데, 여기 계시면 이떻게 해요? 했다 내 장손이 장가 못 간 것이 가장 큰 병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전혀 맘에 없는 결혼이지만 21세에 했고, 아버지도 25세 결혼 26세에 나를 낳았다. 함문평 중위 27세니 할아버지, 아버지는 장손을 결혼시키려고 가짜 관보를 면장과 친하니까 때린 것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신병교육대 훈련 영상을 부모가 보는 세상이니 그런 일도 있나 싶지만 1987년은 관보 시절이었다.

난감했다. 촌구석 농협창구 여직원과 결혼시키려고 어른들은 작정하고 관보까지 쳤는데, 솔직히 중위 봉급으로 발가락 20개 먹고살기 힘들고, 1년 후 발가락 10개 태어나고, 또 2년 후 발가락 10개 늘면 발가락 40개 먹고살기 힘들어 그녀와 결혼 거절 사유만 생각했다.

그녀 아니 두 개가 색상이 달랐다. 그걸 핑계로 거절했다.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하고 여자 이빨 흉본 자 이빨로 망한다더니 22 사탄 중대장 시절 훈련 간 10분간 휴식 마치고 다시 행군 출발 시 소총을 메다 총에 이가 부딪쳐 그녀와 똑같이 앞니 두 개를 치과신세를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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