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의 계절. 700
나이 90 고모 전화였다.
성탄에 뭐 하노?
독거노인이 뭐 할 게 있어요, 책이나 보고 원고지에 소설 씁니다.
원고지에 소설 쓰는 건 경주와 서도 할 수 있으니 오너라. 내가 90인데, 이제 살만큼 살았다. 나이 든 조카 죽기 전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고 했다.
고모는 그 시절 20세에 대부분 결혼할 때 장조카인 내가 세상에 태어나니 시집 안 간 시누이 우리 엄마보다 나이 많은 노처녀가 할머니와 합세하여 엄마를 괴롭혔다.
그래도 조카는 귀엽다고 첫돌에 금반지를 해주고, 초등학교 1학년 입학에 아버지가 책가방 등에 매는 것을 빨간색을 사 오자 남자애에게 무슨 빨강 가방이냐고, 검은색 가방을 사다 주셨다.
나이 늦게 군인하고 결혼하고, 아들 한 명 태어난 상태서 고모부가 월남전 참전했다. 월남전 참전은 맹호부대로 참전하고, 한국군과 미군이 엄청난 피를 흘렸으나 월맹으로 공산화통일이 되었다.
지금은 한국인 관광객이 베트남에 버글거리고 간판에 한글 간판이 수두룩해도 작가 개인생각은 맹호부대, 백마부대 참전 시기에 저지른 양민학살이나 밀림에 버트공이 숨어있다고 헬기로 고엽제 살포한 것에 미국은 베트남에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가 일본 놈 강점기 시절 만행에 사과를 받을 수 있다고 여긴다. 나의 잘못은 사과 없이 남의 잘못만 사과받는 것은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인 심보다.
고모부는 맹호부대로 참전하고 귀국해서 재배치에 경상도 경주가 고향이라고 50사단으로 전보되었다. 안강, 강구 일대 해안부대서 상사로 은퇴했다.
나이 90 고모와 65세 조카가 빛바랜 맹호부대 앨범을 넘기면서 회상했다. 고모는 고엽제 이야기를 꺼냈다.
미국 놈들이 아주 나쁜 놈이라고 했다.
어떻게 혈맹이라고 하면서 밀림 속에 한국군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알려주지도 않고 고엽제를 뿌리니? 했다.
고모부 (고) 박태도 상사는 노년에 고엽제 후유증으로 의심되나 보훈병원 의사 놈들이 인과관계 증명이 어렵다고 판정해 보훈연금도 작게 받다 돌아가셨다.
고모 나이 90에도 신주단지처럼 간직한 앨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