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프롤로그
대한민국과 북한은 같은 민족이면서 다른 민족보다 더 원수처럼 지낸 지 70년이 넘었다. 오늘날은 북한이 핵실험을 해도 하는구나? 별 반응이 무디어졌지만 핵 개발을 하고 지하 핵실험에 대해 시인도 부인도 안 하던 시기에 대한민국의 정보기관은 총력을 기울여 핵실험에 관한 첩보를 수집하는데 상상 이상의 달러를 사용했다. 지금은 우리 국가정보원의 정보력이 상당하게 구축되었지만 한 때 모사드가 핵 관련 정보를 많이 입수하기도 했다.
서울 주재 모사드 무바라크 칸은 199X 년도 정보보고에 러시아가 북한에 로켓 발사 기술을 이전했고, 북한은 이 기술을 비밀리에 이란에 고가로 팔았다. 칸은 탈북자들 중에서 핵 및 미사일 시설에 근무한 경험자들만 가려서 대림동에 있는 중국 식당 <양자강>에 초대를 했다. 술과 음식을 마음껏 먹게 하고 자기들이 북에서 경험했거나 보고 들은 이야기를 아무런 제한 없이 이야기하도록 했다. 칸은 이미 식당 구석구석에 고성능 도청 장치를 하고 손님을 불렀다. 손님들이 떠나고 칸은 조용히 도청 테이프를 반복 청취하면서 정보보고서를 작성했다. 그 시기에 북한은 핵 및 미사일에 종사하는 인원이 10 만 명이 넘고 핵 실험만 하지 않았을 뿐 완성 단계에 있었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했다. 심근경색이 사망 원인이라고 발표했지만 왜 수령을 심근경색이 되게 만들었는지는 모른다. 조선중앙TV 이춘희 아나운서가 비통함을 담아 수령의 서거 소식을 알렸다. 김일성 사망 이후 김정일이 처음으로 내세운 것은 유훈통치였다. 수령의 유지를 이어받았다고 수령 김정일이라고 해도 되었으나 그는 국방위원장 김정일로 통치했다. ‘유훈통치’를 강조하더니 ‘강성대국’을 외쳤다. 북한이 하루아침에 강성대국이 될 수는 없다. 미국이 북한에 온갖 압제를 가하는 와중에 핵 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표현한 말이 ‘강성대국’이었다. 강성대국, 국민소득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상태라면 강성대국이 맞지만, 인민들은 굶어 죽어 가는데, 구호만 강성대국을 외쳤다. 인민들은 김일성 시대보다 더 살기가 나바진 정도가 아니라, 허기진 배를 채우고자 국경을 넘엇다. 일단 중국은 조선보다 먹을 것이 많았다. 중국 농가에서 머슴처럼 일을 해주면 노임은 적으나 배불리 먹을 수 있었다.
농사일을 하던 장사를 하던 가족 중에 누구 한 명 중국에 나와 있는 집과 모두 조선에만 처박혀있는 집은 비교가 안 될 정도였다. 그중 일부는 연변이나 심양에 나와 있는 한국의 정보사령부 가장 명칭 ‘흑금성’, ‘행림상사’, ‘자금성’등의 조력자가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