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9월 18일 강릉 잠수함 사건
김영삼 대통령의 화
지금 강릉 안보공원에 가면 그때 침투한 북한 잠수함이 전시되어 있다.
당시 나는 정보사령부에 근무했다. 강릉 해안가를 달리던 택시 운전기사가 좌초된 북한의 잠수함을 발견했다.
북한 인민무력부 소속 해상공작원이 잠수함의 추진 프로펠러가 어망에 걸려 작동이 안 되자 하는 수없이 해상으로 부양해 올라오고 물개들이 육상으로 도망을 갔다.
육군은 지상에서 전투를 잘하고 해군은 바다에서 잘 싸우고 공군은 공중전의 달인이다.
해상전투원이 육지로 올라갔으니 결론은 뻔한 것이었다. 해군이 아무리 날렵해봐야 산속에서 잘 싸울 수 없는데 하여튼 우리는 그들에게 49일 동안 농락당했다.
26 명 중 1명 생포 1명 도주 24명 사살되었다. 우리도 전사 11명 부상 27명 아군이 오발로 아군이 사망 1명으로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다.
북한은 6일 만에 우발적 사고라고 발표해서 무마하려 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은 의도적 침투로 규정 강경 노선을 유지했다. 대북 지원을 중단하고 기업인 방북도 금지시켰다.
남포에 임가공공장을 건설하던 대우 직원도 철수 시 켰다. 권오기 통일부 장관은 대가를 치르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남북관계는 최악으로 치달렸다. 미 국무장관 크리스토퍼가 나서서 남북 모두 추가적 도발행동을 말아달라고 성명을 발표했다.
김영삼 정부에 대북 강경파가 득세하고 온건파는 벙어리가 되었다. 오죽하면 크리스토퍼는 한반도에서 가장 골치 아픈 존재는 한국정부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을 미국 언론에 흘렸다. 김영삼 대통령은 열받아 한미관계는 최악이 되었다.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자 빌 리처드슨 의원이 특사로 북한을 방문했다.
북한 외무성이 1996년 강릉 잠수함 사건에 대하여 사과했으나 김영삼 대통령 화를 풀지는 못했다.
위 사진처럼 잠수함이 전시되었으니 우리가 작전을 잘한 것으로 보이지만 아니었다. 한번도 해군이 육상에 침투하여 우리 작전반경을 뚫고 도망친 자료가 없으니 일반적인 평균 도주거리로 포위망을 만들었다.
그 포위망 밖에서 적과 교전이 벌어졌다. 급하게 포위망을 넓혔는데 모든 부대 동시 같은 명령이 하달되어야 하는데 명령받은 부대 아닌 부대 혼재하다보니 오발도 있었다. 오발은 명중이라고 오발에 아군 1명이 전사했다. 마치 광주사태에서 전투병과학교 직할부대에게 최정예 3공수부대원이 아군끼리 교전에 개죽음 당하듯 죽었다. 광주사태서 아군에 맞아죽은 공수부대원은 시민군에 맞아 전사한 것으로 공적조서를 꾸며 훈장을 주었다.
역시 여기도 공저조서는 무장침투 잠수함 승무원과 교전으로 희생된 것으로 했다.
앞으로는 그런 거짓말 안하고 솔직하게 아군끼리 오인사격이라고 기술해야 후세에 이런 한심한 죽음이 방지될거 아닌가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