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게 자전거 가르치던 날
두발 달린 것들 자전거 오토바이 스케이트
장손이라고 할아버지가 두 발로 타는 것은 할아버지 눈에 흙이 들어간 후에 배우라고 하셨다.
자전거도 스케이트도 오토바이도 배우지 못하고 장교가 되었다.
소위 초등군사반 수료하고 배치받은 부대가 XX사단 OO연대였다. 전년도 동계 스케이트 대회에서 OO연대가 꼴찌를 했다고 신임 소위는 사단 인사처에 스케이트 잘 타는 장교 보내라는 말을 못 하고 강원도 출신을 우선 보내라고 연대장님이 사단 인사참모 중령에게 압력을 넣었다.
강원도 출신 철원 춘천 영윌 횡성이 고향인 소위들이 그 연대에 도착했다. 인사과장 첫 질문이 강원도 출신이니 다들 스케이트는 잘 타지 하고 물으니 다들 예라고 했다.
나 혼자 과장님 저는 못 탑니다.
뭐야. 넌 강원도 아니야.
아니요. 강원도 맞는데 할아버지가 장손은 두 발로 가는 자전거 오토바이 스케이트 스키는 금지시키셔서...
알았다. 연대장님 신고 후 물으시면 그냥 다 탄다고 대답하고 함 소위는 신고 마치고 인사과에 들르라고 했다.
인사과에 가니 빈휴가 용지를 50장을 주셨다. 이거 가서 일직사관이 아닌 주는 무조건 서울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 가서 스케이트 최고 속도로 타 알았지. 동계 스케이트 대회 우리 연대 우승 못하면 함 소위 책임이다라고 하셨다.
빈 휴가증에 행정병 시켜서 매달 변경되는 비번 넣은 휴가증으로 검문소를 통과 동대문스케이트장 최고 단골손님이 되었고 그해 겨울 소위 중위 단거리와 장교 4인조 이병부터 소령까지 이어달리기 우승을 했다.
세월이 지나 결혼하고 딸이 초등학생 시절 자전거를 사달라고 했다.
딸은 아빠가 가납리비행장 무인항공중대장 직위를 간파한 것이었다.
활주로에 비행이 없는 시간은 아빠 찬스로 자전거 연습 최고의 장소라는 것을 알고 한 말이었다.
2킬로미터 활주로 이쪽에서 저쪽 끝까지 뒤에서 아빠가 잡고 달리니 페달을 힘껏 밟으라고 했다.
처음 잡아주고 달리다 힘에 부쳐 손을 놓았다. 딸은 끝까지 달렸는데 그만 정지를 안 가르친 상태라 활주로 담장까지 가서 어쩔 줄 모르고 울타리 위장수 나무를 들이받았다.
약간의 상처가 있어 중대 의무병이 구급 가방을 들고 와서 치료하고 밴드를 붙여주고 갔다.
딸에게 아빠가 미안해.
방향전환과 정지까지 가르치고 손을 놓아야 하는데 순서가 틀렸구나 했더니 아니야 아빠가 이렇게 한 번에 자전거 가르쳐준 것이 빨리 배웠고 이후 자전거 사고 미연에 방지하는 거라고 꿈보다 해몽의 말을 했다.
문득 초등학교 시절 여의도에 자전거 타러 가자던 그녀 생각이 났다. 인생에 가정법은 없지만 그때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었다면 인생이 달라졌을까.
가납리 비행장에서 자전거 배운 딸이 다 컸다고 내 인생은 나의 것을 외치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