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정란>

할아버지 뎐. 86

by 함문평

1979년 고3이었고, 12.12군사반란일에 학원 마치고 집에 오다 서울역에서 버스 안내양이 죄송하다고 돌려준 회수권을 받고, 서울역서 흑석동까지 걸은 이야기는 이미 브런치에 몇 년 전에 썼다.


흑석동 연못시장 복덕방 노인은 정말 안테나가 높았다. 복덕방 주인장은 전직 일본강점기 순사 출신, 일본 강점기 경성 제1 고보 요즘 경기고 은퇴 교사, 일본 강점기 시절 카미카제 특공대 훈련 다 받고, 출동 대기하다 광복되어 귀국한 노인, 일본 강점기 시절 아편으로 돈을 엄청 벌어 김 구 선생과 88 여단 김성주(일성)에게 군자금 보낸 할아버지가 고정 멤버였다.


12.12일 영문도 모르고 서울역서 걸어 흑석동 온 장손 이야기를 열변을 토하자 노인들이 돌아가며 자기 아는 이야기를 했는데, 정확했다.

백 수사관이 김재규 거사와 정승화 관련 없다고 수사 보고 했음에도 전두환이 최규하에게 정승화 체포 문건 결재받으려고 했다.


전형적인 외교 관료 출신 최규하는 원칙과 절차를 따른다고 노재현 국방부 장관 배석을 요구했다. 장군 출신 노 국방장관은 쪽팔리게 국방부에 총성이 울리자 도망갔다.

아내와 자식을 여의도 아파트 이 모 장군집에 이동시키고 미군 벙커에서 국방부로 오다 보안사에 체포되어 일단 보안사 분실서 혼나고, 정신교육받고 삼청동 최규하 공관서 체포문건에 배서했다. 최규하는 비겁하지만 그래도 후세 역사가에게 이 서명은 강압에 의한 시간이 경과한 사후 결재를 알려주는 12.13. 05:10이라고 분까지 기록하고 최규하라고 반흘림체로 서명했다.


그 말씀을 들려주면서 장손이 글을 쓰려거든 할아비 죽고, 30년 후에 써야지 그전에 쓰면 할아비 묘가 파묘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열혈청년 작가는 1984년 대학 3학년 ROTC 1년 차로 선배에게 좌로 굴러 우로 굴러 당하면서도 교내 구룡문학상을 수상했다.


골 때리는 것은 <기미정란>을 심혈을 기울여 쓰고 <대홍수>는 ROTC를 바보티시로 읽은 것에 분개해 절연하고, 여자에 대한 복수심으로 쓴 것인데, 이것이 당선되었다.


하도 화가 나서 문학 교수님을 찾아갔다.


교수님, 대홍수보다 기미정란을 더 심혈 기울여 쓴 것을 왜 초빙 심사위원이 기미정란 버리고 대홍수를 뽑았는지 설명 좀 해주세요. 했다.


설명 필요 없다.

내가 봐도 기미정란이 잘 썼는데, 그거 뽑아주면 함 군은 물론 심사위원도 다 중앙정보부에 잡혀갈 거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

조선시대 계유정난과 유사하기에 1979년이 기미년이라 <기미정란>으로 쓴 것을 심사위원이 간파하고 떨어뜨린 것이다.

뒷줄 맨 우측이 대학3년 시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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