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데스리가 군대스리가

by 함문평

1980년대는 차범근이 분데스리가 진출을 해서 골 넣을 때마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동네 축구 동우회 축구도 그때 푹 발적으로 늘었다. 군대도 휴일이면 소대 대항 축구를 했다.


1986년 소대장 전입을 하니 22기 인천대 원 모중위가 전역으로 함 소위가 1 소대장이고 3 소대장은 충북대 태권도 가르치던 김 중위 2 소대장은 병참이라 이십 년 후에 장군으로 군수학교장을 지낸 이 중위 화기 소대장은 한 중사였다.


위문품을 보내려면 4대를 보내던가 전년도 모 교회에서 자매부대 위문품 컬러 TV 3대가 왔다.

소대장들은 서로 흑백 안 가져가려 해서 중대장 백경열 대위가 중대장 돈으로 흑백에 5000원 더해서 가져가고 다음 달부터는 훈련이 아닌 이상 매월 마지막 전투체육에 흑백 보유 소대장이 TV에 5천 붙여서 국기게양대에 놓고 군대스리가를 했다.


원 선배가 너 흑백 가져오면 후배도 아니야?

알았지?


예 충성! 했기에 나는 소대장 마치는 날까지 컬러 시청을 했다.


왜냐하면 중앙 수비를 하면서 스타킹 속에 대나무 행장을 넣고 상대 공격수가 소대장이든 병장이든 하사든 나의 학군단 시절 함 탱크! 별명처럼 수비를 했다.


유격 준비운동 비슷한 나의 자세 뒤로는 골아웃은 되었지 정상으로 통과시킨 일은 없었다.


장교 후보생 시절에도 축구를 하면 전문 수비수였다.


축구 잘하는 사람은 공격만 생각하는데 수비도 공격 못지않게 중요하다. 수비를 철벽으로 하면 공격이 딸려도 어쩌다 한 골 들어가면 그것이 결승골이 된다.


수비수는 상대의 공격 패턴을 읽고 공이 지나가는 길목을 차단해야 한다.


상대팀 공격수 중에 골대 근처에서 위협적인 슈팅을 날릴 사람에게는 50센티미터 이상 그와 나의 간격이 없으면 슛을 못한다.


그뿐만 아니라 할아버지가 산에 약초를 캐러 다닐 때 뱀에 물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나무로 정강이를 보호하는 보호대를 물려주셨는데 축구 스타킹 속에 그걸 넣었다.


상대 선수와 서로 정강이가 부딪치면 나는 멀쩡했고 상대는 죽음이었다.


천하의 차범근도 상대 수비수와 간격이 벌어진 상태에서 슛을 하지 붙은 상태서는 안된다.


그렇게 해서 내가 소대장을 마치는 날까지 컬러 TV 시청을 했다. 내가 소대장을 마치고 후임 25기에게 물려주었는데 그해 성탄절에 컬러 TV가 위문품으로 들어와서 흑백 TV 걸고 하는 축구는 사라지고 친선 경기로 전환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축구에 목숨 걸고 했다는 것이 한심하지만 그때는 그랬다. 뭘 해도 목숨 걸고 달려들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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