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밥 먹기 힘든 사람. 22
노고소 수레너미 배향산 마치골
KBS 춘천 방송국 프로그램 중에 지명수배가 있다. 우리 고향 창호 선배가 부산에서 역사 교사로 은퇴한 분이 고향을 지명수배 제작진에 요청을 해서 촬영을 했고 지나간 11월 1일에 방송되었다.
지명과는 상관없지만 TV에서 촬영하고 방송에 내보내면 재미있어 시청률 제고에 도움이 될 거라고 제보를 했는데 촬영을 안 해서 여기 브런치스토리에 소개한다.
고향을 초등학교 6학년 12살 나이에 서울로 전학을 왔다. 전학 사유가 할아버지께서 장손은 자전거 타고 20리를 왕복하며 공부시킬 수 없다고 횡성, 원주, 서울을 고민하다 어차피 소를 팔아야 전학시켜 공부할 것인데 5마리 팔으나 10마리 팔으나 할아버지는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냐 장손 잘 되는 것이 우선이라고 하셨다.
지금이야 거주이전의 자유가 있지 박정희 통치시기는 법 보다 박정희 어록이 김일성 수령의 현지지도 교시와 동일한 효력이 있던 시기였다.
그러니 박지만이가 경기고 합격할 실력이 못되니 뺑뺑이 만들어 중앙고 나오고 육사를 가는 진로를 정했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서울 뺑뺑이도 모르시니까 장손은 서울 가면 공부 열심히 해서 경기고, 서울고, 경복고, 용산고, 성남고 중에 한 곳에 꼭 가라고 하셔서 예. 경기고는 시험 봐서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겠지만 용산고, 성남고 정도는 한쪽 눈을 감고 한눈으로 풀어도 합격할 수 있습니다! 호기를 부렸다.
그 말에 할아버지는 기뻐하셨다. 그래. 사내놈이 그런 기백이 있어야 한다고 소판 돈으로 안흥면장 2만 원 강림출장소장 1만 원 서울 대방 2 동장에게 3만 원의 봉투를 건네고 장손을 서울 영등포 대방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3만 원 우습게 알면 안 되는 것이 그 시절 면서기 월급이 2 천 원이 안 되던 시절 만원 이만 삼만의 뇌물은 큰돈이었다.
전학을 하자마자 담임이 실사 가정방문을 왔다. 서울은 박정희 교시에 의해 인구를 억제하기 위해 위장전학을 담임이 가정방문하고 교장에게 보고 하면 교장이 남부교육청에 보고했다.
가정방문온 담임에게도 할아버지는 봉투를 드리면서 우리 장손인데 강림은 중학교가 없다. 중학교를 보내려면 원주나 횡성으로 유학을 시켜야 한다.
내가 일정시대에 만주서 아편 장수로 돈은 많이 벌었다. 아편을 다 현금으로 만들어 강림서 소 99마리를 키운다.
그중 5마리를 팔아 서울에 이렇게 손자와 조부모가 지낸다. 전학을 위해 에미 아비랑 손자가 대방 2동에 왔지만 예비군훈련 때문에 아비 에미는 강림으로 보내고 조부모와 손자 3인 세대가 될 것이니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하며 봉투를 건넸다.
그걸로 나는 확실한 서울 시민이고 대방초등학교 학생이 되었다.
강림에 북한에서 1.4 후퇴에 혼자 님하한 가족 일가친척 없는 1인 세대주 김광수라고 할아버지 보다 약간 어린 사람이 있었는데 이 사람도 소가 99마리였다.
할아버지에게
형님! 저랑 소 100마리 누가 먼저 하나 시합하실래요? 제안에
안 해! 난 소 99마리 중 5마리 팔아 장손 서울로 유학시킬 걸세라고 했다.
그랬으면 어차피 김광수가 100마리 먼저 도달할 텐데 황소 제일 큰 소를 팔아 100마리 만들었다고 자랑을 했다.
자랑 끝에 불난다고 며칠 후 마치골로 집으로 올라가다 돌아가셨다.
김굉수 사망 소문이 나자 전국서 자기가 상속자라고 열 명이 왔으나 횡성 경찰서 조사결과 다 가짜라서 소 100마리는 강림공동재산으로 빨리 처리하거나 시간이 지나면 국고 귀속이라고 해서 강림 유지들이 회의를 해서 리 단위에 중학교 강림리중학교에서 리를 빼고 강림중학교가 되었고 그 무덤은 중학교 뒷산에 있다.
위에 마치골은 고려가 망하고 조선초기에 태종 이방원이 13세에 강림서 운곡 원천석 문하생이었는데 임금이 되어 찾아왔다.
하지만 원천석은 만나지 않았다. 제자였지만 임금이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어느 자리든 선생님 하시고 싶은 거 고르라고 하면 거절하기 힘들기에 빨래하는 여인에게 자기는 왼쪽 변암으로 갈 텐데 뒤에 가마 일행이 물으면 우측 고개를 넘어갔다고 해주시오 부탁을 했다.
노파는 순진하게 우측으로 손가락을 가리키고 보니 어머나! 가마에 용이 그려있었다. 임금에게 거짓말했으니 요즘으로 치면 용산 윤 대통령에게 허위 보고한 보훈부 장관 수준이니 노파는 바로 자진했다. 그래서 그 지명이 노고소고 수레가 넘어간 비탈길이라고 수레너미가 되었다. 변암에서 수레가 넘어가는 방향에 절을 했다고 배향산 절을 하고 이제 일을 다 미쳤다고 마치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