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김태훈은 아버지가 그리울 때면 강림중학교 뒷산에 오른다. 중학교 설립자 百牛 金光水 선생 묘지에서 김창완의 시 <무등산에게>를 큰소리로 낭송해 본다.
말문이 막혀
억장이 무너져
넋 놓고 주 질러 앉은 그대 마음을
쓰다듬어 주고 싶은 내 손
(중간생략)
그의 얼굴로 항상 있는 그대
엎드려 얼굴 묻고
어깨만 출렁이는 그대
아버지 김영흠은 국군방첩사령부 동원훈련장에서 홍제동 대공분실로 연행되었다. 남영동 대공분실이 박종철 고문치사 시건으로 언론에 공개된 이후 더 이상 대공분실의 기능을 할 수 없자 은밀하게 새로 지은 것이 홍제동분실이다.
그는 1980년 5월 18일에 광주에 있었다. 국군보안사령부 505 보안부대 속칭 이름으로 굉주보안부대 수사관이었다. 정보사령부나 보안사령부나 민간인을 접촉하는 부대의 대면 직위자들은 상사라는 군대 계급 대신에 계장 또는 반장이라는 위장 호칭을 사용했다. 언론 통페합을 주도한 이상재 준위도 가명으로 완장을 차고 언론대책반장을 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듯이.
1980년 505 보안부대장은 이대우 대령이었다. 이 대령은 성격이 소심해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광주에서 차후 일어날 큰일을 감당할 수 없겠다고 생각을 해서 광주사태 감독관으로 홍석철 대령을 광주로 파견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