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군 2 사단장을 지냈고 한국군의 총사령이었습니다. 인민군대가 인민의 이익을 철저히 옹호하는 군대라는 것과 인민정권은 조선인민을 위한 정권이라는 것을 똑똑히 알게 되었습니다.
삼천만 동포 여러분!
인민해방군을 나처럼 도와 총부리를 인민의 원수 미제와 매국노 이승만 괴뢰도당을 타도합시다!
송호성의 선무방송이 끝나자 안재홍이 등장했다.
나는 미군정시기에 군정장관을 지낸 안재홍일씨다. 난 미제의 주구였습니다!
오직 미제의 침략적 야망의 도구로 이용된 것을 진실로 뉘우치고 고백합니다. 우리 모두 조국해방전선에 동참합시다!
1950년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했다. 이 작전으로 밀리던 6.25 전쟁에서 역전의 발판을 마련했다.
인천상륙작전은 극비리에 추진되었다. 모택동 사자전법의 하나인 성동격서를 바둑의 연제 최정이 서쪽을 잡을 욕심이면 슬쩍 동쪽에 의사타진을 하듯이 원산을 상륙지점으로 상정하고 장사에 상륙연습을 했다. 김일성은 동해안 항만에 미제의 상륙을 대비하라고 교시를 했다. 허를 찔러 맥아더는 인천으로 상륙하고 9월 28일에 수도 서울을 탈환했다.
기세를 몰아 10월 1일 삼팔선을 돌파했다.
이 작전은 비밀이 해제된 미국방성 문서에 한국에 전쟁이 발발하면 어느 정도까지 후퇴햤다가 일정 장소에 상륙을 하여 멀리 남하한 적을 쌀자루에 담아버리듯 담아포 위하는 전술을 그림까지 그려 전술토의 했다.
비밀해제된 것을 빌미로 미국이 6.25 전쟁을 일어나도록 유인방치했다고 주장하는 학설도 나타났다.
일방적으로 밀리던 국군이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과 해군 공군의 우세를 앞세워 북진의 계기를 마련했다.
낙동강까지 전진한 북한군 선두는 인천상륙작전과 수도서울 탈환으로 보급로가 차단되었다. 사기는 땅에 떨어지고 먹고 자는 것을 소부대 단위로 자력갱생 또는 각자도생으로 내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