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구상은 정승화를 계엄사령관을 만들고 이어 계엄사령부를 혁명위원회로 간판을 바꾸면 혁명은 완수하는 것이다.
혁명 후에 승화나 나나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직접투표로 대통령을 뽑아만 주고 떠나면 두고두고 칭송받는 역사적 인물이 될 줄 알았다.
계획이 꼬인 것은 궁정동 만찬장에서 차지철과 박정희를 제거하고 나의 승용차로 정승화 참모총장을 태우고 궁정동을 빠져나와 남산으로 가는 중에 계엄을 선포하자면 남산 중앙정보부보다는 육본이 좋겠다는 정승화 참모총장과 운전하는 유성옥 사무관이 말을 해 육본으로 진입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치 사람 마음속은 알 수 없다고 내가 별 셋에서 별넷 진급하는데 정승화를 위해 각하에게 얼마나 많이 승화를 주지 시켰는데 나는 승화를 믿고 기대했으나 승화는 나를 믿지 못한 모양이다.
육군본부에서 나는 혁명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일개 단순 시해범으로 전락했다.
직속상관을 시해하고 내가 그 자리를 차지할 그런 예의 모르는 놈이 아닌데 완전 언론과 전두환은 나를 마녀사냥 했다.
무장해제 당하고 구금되었다.
10.26 혁명을 수행한 얼마 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내가 대통령 욕심에 눈이 멀어 박정희를 시해하고 내가 대통령이 되려는 과대망상증 환자로 몰아갔다.
이 자식이 축구 볼이나 차던 놈이 박정희가 4년제 1호 기수라고 이뻐해 주니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는 놈들이 노태우 전두환 김복동 정호용 백운택 등이 오성회라고 시작해 나중에는 아래 기수들을 끌어모아 종적으로 하나회를 만들었다.
박정희가 4년제 1호 졸업생이라고 그 다섯 놈을 청와대로 초대해 식사를 하고 계급에 분에 넘치는 위로금을 주는 것에 대해서도 버릇없게 된다고 그러시면 안 된다고 건의를 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정상적으로 퇴임할 계획도 없고 차지철 저런 놈이 부통령 행세를 하면서 지 밑에 군인 장군을 차장으로 두고 국기 강하식을 별도로 하는 정신이상자와 내가 마주 앉아 회의를 하고 밤이면 안가에 가서 같이 술을 마시는 것이 괴롭다.
사범학교 육사 군대생활과 5.16을 거치고 10월 유신을 하면서 인간적으로 업무적으로 난 박정희에게 최선을 다했다.
박정희 가슴에 총을 쏘았다고 배은망덕한 놈으로 나를 몰지만 난 보안사령관이 발표한 그처럼 파렴치한 놈이 아니다.
미국의 교민들 사이의 박대통령에 대한 반감과 카터 대통령이 오죽하면 박정권은 악마의 정권이라고 공식석상에서 발언한 것도 알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개신교에서 구국기도회에서 악마를 물러가게 해 달라는 기도의 악마가 사탄이 아니라 박정희를 악마로 호칭하고 기도하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지만 차마 정보보고서에 그런 타이핑을 하면 타자수 입을 통해 전파되는 것을 우려해 말로만 보고했다.
나를 조사한 수사관에게 나는 절대로 박정희를 저격하고 내가 정권을 잡으려 한 것이 아니라 절대로 그냥 물러날 분이 아니기에 내가 이 땅에 민주회복을 위해 총을 쏘았다고 했는데 기어이 전두환은 나를 배은망덕하고 허황된 통치자로 매도했다.
역사는 승자의 편이다.
50년 100년 후에 두고 보자 전두환 너와 나 누가 이 나라 발전 민주회복에 기여한 자로 평가되나 2020년이 되면 알게 된다.
이 시기에 언론은 나를 부정축재자로 매도했다.
나는 부정축재로 말할 것 같으면 박정희와 비교해도 당당하다.
우리 아버지는 선산 갑부였다. 아버지는 재산을 정리해 시골에 중학교가 없는 것을 애석해서 학교를 세우고 국가에 기부채납했다.
만들기는 사립으로 만들었지만 공립 화한 것이다.
박정희는 영남대학교, 정수장학회 어떻게 만들었고, 운영했는지 비교해 보면 안다.
국가의 땅이고 돈이고 잠시 내게 들어왔다 이 땅 다른 사람이 많이 사용해야 국가가 발전한다는 생각을 지녔다.
재단을 사유화하는 사람이면 부정축재가 가능하지만 나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재물을 공유한 사람에게 부정축재 죄를 뒤집어 씌웠다면 그렇게 배후에서 조정한 전두환이 더 큰 부정축재자가 되는 것이다.
나는 군인이다. 군복이 자랑스럽고 내 어깨 별 셋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나와 같이 근무한 소위 시절부터 내 부하들이 잘해서 나를 별 셋을 만들어 준 것이다.
내 친한 사람에게 미리 유언은 아니지만 나의 장례식 복장에 대해 일러주었다.
마지막 별 셋 계급장이 부착된 정복을 내 수의로 입혀달라고 했다.
비석의 비문은 육군 중장 김재규의 묘라고 새겨달라고 했다. 일부 나의 민주회복을 위한 혁명을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내 무덤의 비석과 강돌을 훼손하는 것을 나는 가슴 아프지만 역사적으로 재평가되는 그날까지 참고 있을 뿐이다.
사나이 대장부 죽어야 할 때와 장소를 택하여 나의 의지로 결행해서 나는 행복하다.
다만 충성심 하나로 내 명령에 무조건 따라 공범이 된 박선호 등 네 명 부하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10.26일 70년 전 도마 안중근은 이토오 히로부미를 탕! 했다.
이날 탕! 탕!으로 박정희를 보냈다. 오늘은 탕! 탕! 데이다.
보신탕 먹는 날로 오해 없기 바란다.
후세 자유민주공화국에서 사는
국민 여러분!
여러분이 자유롭게 토론하는 세상이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자유민주 국가는 피를 뿌리고 올라간 계단임을 잊지 말아 주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