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의 시작과 오늘 ② : 디지털 이후 읽고 쓰기

리터러시 인사이트 제15화

by 시뮬라크르

이렇게 가정해 볼까요. 같은 기사를 포털·SNS·단체 채팅방에서 봅니다. 기사 내용은 같지만, 느껴지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포털에서는 댓글 반응을 살피고, SNS는 누가 공유했는지를 확인합니다. 단체방에서는 사람들의 의견을 봅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사 자체의 내용뿐만 아니라 기사가 놓인 공간과 그 주변의 분위기까지 함께 읽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읽는 방식


디지털 시대의 독자는 포털 화면, 알고리즘 추천, 댓글 수, 좋아요, 공유자 등 텍스트와 이미지 문만이 아닌, 그 주변 분위기까지 함께 받아들입니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매클루언(Marshall McLuhan)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무엇을 읽는지만큼, ‘그것을 어떤 미디어를 통해 읽느냐?’ 역시 영향을 미칩니다. 생각해 봅시다. SNS에서 뉴스 기사를 볼 때, 보도 내용을 먼저 읽나요? 아니면 댓글부터 확인하나요? 디지털 시대에는 글을 읽기 전에 그 주변 분위기를 통해 내용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기술을 다루는 능력을 넘어서는 디지털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는 스마트폰이나 소셜미디어를 다루는 능력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정보 출처를 확인하고, 링크가 어디에서 왔는지 살피며, 개인정보를 지키는 능력까지 포함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왜 이 정보를 보고 있는가?’입니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들은 우연히 보는 것보다, 어떤 알고리즘이 골라 보여주는 것이 많습니다. 의도치 않게 ‘보이게 된 것’들이 함께합니다. 같은 뉴스를 두고 어떤 사람은 요즘 가장 큰 이슈라고 말하지만, 다른 사람은 그 내용을 모를 수 있습니다.


휴대폰 보기.png 스마트폰을 보며 ‘나에게 이것이 왜 보이는지’를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미지=챗GPT로 생성)


추천 알고리즘이 만드는 디지털 시대의 읽기


한동안 특정 주제가 계속 스마트폰에 보였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제를 더 이상 보지 않자, 어느 순간 다른 이슈가 그 자리를 대신한 적도 있을 것입니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는 ‘통제사회’를 언급했습니다. 열려있지만, 강제로 막지 않아도 사람들을 특정 방향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사회입니다. SNS는 이러한 통제사회가 잘 작동하는 곳입니다. 자유롭지만, 무엇을 보고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가 다음에 무엇을 보게 될지를 결정합니다. 추천 알고리즘은 내가 보는 세계의 범위를 조절합니다.


미디어 비평가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는 기술이 만든 이미지가 장치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가령 우리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설계된 프로그램이 미리 정한 선택지 안에서 움직입니다.


플랫폼도 그렇습니다. 이용자는 자유롭게 탐색한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화면에 배치된 요소들에 따라 무엇을 읽을지가 결정됩니다. 같은 콘텐츠라도 어떤 섬네일과 문장이 보이는지, 어떤 순서로 정리되어 있는지에 따라 첫인상이 달라집니다.


다시 말하지만, 결국 디지털 시대의 읽기는 텍스트에 도달하기 전부터 시작됩니다. 콘텐츠 내용을 보기 전부터 이미 이것을 볼지 말지를 마음속에 정하고, 그 이후에 읽는 내용은 이미 정해진 생각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카메라 프로그램.png 우리는 카메라 뷰파인더와 같이 프로그램이 미리 정한 화면 속에서 움직인다. 출처: (이미지=챗GPT로 생성)


숫자가 신뢰로 이어지는 디지털 시대의 읽기와 쓰기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기호가 실체를 대신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반복된 기호(정보)가 사실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디지털 환경에서는 조회 수가 높은 글일수록 더 눈에 띕니다. 내용이나 진위와 관계없이, ‘얼마나 많이 보였는가?’가 의미와 사실이 결정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출처가 불분명하고, 과장된 투자 관련 글이 있다고 해볼까요. 이 글이 SNS에서 여러 사람에 의해 공유되고, 동조의 댓글이 이어지며, 조회 수까지 높다면 사실로 보이게 됩니다. 디지털 리터러시는 여기서 요구됩니다. 이 정보가 어떤 경로로, 어떤 구조 속에 자꾸 보이며, 사실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 물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정보가 믿을만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쓰기 역시 같은 맥락에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글쓰기는 조회 수 및 공유 수를 위해 설계되기도 합니다. 이슈몰이를 추구하는 무수한 황색 언론의 콘텐츠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자극적으로 제목을 만들고, 빠른 소비를 위해 짧아지며, 시선을 끄는 이미지를 넣습니다. 내용보다 클릭 수가 우선됩니다.

이에 디지털 리터러시는 쓰기의 책임까지 포함합니다. 조회 수만을 위한 글을 만드는 것이 아닌, 정확하고 의미 있는 글을 쓰려는 태도 또한 필요합니다.


생성형 AI 시대의 읽기와 쓰기


정보가 만들어지는 방식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필요한 정보를 직접 찾아 참고해 글을 쓰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지금은 AI가 쉽게 글을 만들어 냅니다. AI가 만든 결과를 사용하거나, 이를 바탕으로 글을 재구성하는 일도 많아졌습니다. 직접 쓰기와 AI 활용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이 변화는 글쓰기가 편해졌다는 차원을 넘어, 우리가 정보를 생산하고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철학자 도나 해러웨이(Donna J. Haraway)는 ‘사이보그’라는 개념을 통해 현대 사회의 인간을 설명했습니다. 해러웨이가 말한 사이보그는 로봇 인간을 뜻하지 않습니다. 인간과 기술을 뚜렷이 나눠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인간은 더 이상 순수한 존재가 아닌, “기계와 유기체의 잡종”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AI 같은 기술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은 이미 AI와 함께 생각하고 선택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것도 좋지만, AI가 생성한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지도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해졌습니다. 즉 AI 리터러시는 도구 사용법과 함께, 결과를 한 번 더 생각하고 확인하는 능력이 함께합니다. AI가 만든 문장이 자연스럽고, 또는 나보다 더 잘 쓴 것처럼 보여도, 그 내용을 그대로 믿지 않고, 자기 생각으로 고쳐 쓰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력서에 AI를 활용한다는 이야기를 곳곳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AI가 만들어 준 문장은 더 간결하고 논리적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문장은 어떤 경험을 말하는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자세히 설명할 수 있을까요? 글은 좋아졌지만, 나만의 실제 경험과 제대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AI를 이용할수록 그 결과물에 대한 책임이 커졌습니다.


생성형 AI의 등장으로 읽기와 쓰기의 기준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이제 글을 읽는다는 것은 문장을 잘 썼느냐와 함께, 글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떤 바탕으로 하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필요해졌습니다.


글쓰기 역시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문장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지, 책임질 수 있는지도 중요해졌습니다. 생성형 AI 시대를 맞이해 리터러시의 범위는 더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읽고 쓰기’라는 리터러시의 기본 원칙은 과거에도, 앞으로도 여전히 유효할 것입니다.


면접.png 누구나 AI를 활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며, AI 활용을 포함하여 AI가 생성한 콘텐츠의 맥락을 읽을 수 있는 ‘AI 리터러시’가 중요해졌다. (이미지=챗GPT로 생성)


시대와 함께 변해 온 리터러시의 과거와 현재


다시 처음 질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리터러시란 무엇인가? 세상의 발전과 함께 리터러시도 함께 변화해 왔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문서를 읽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곧 권력이었고, 글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이 극히 제한되어 있었습니다.


인쇄 시대에 들어서며 읽고 쓰는 능력은 대중에게 퍼졌고, 이는 시민 사회의 형성과 사회 변혁에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영상 시대에는 글의 내용뿐 아니라 화면 구성과 연출을 읽어내는 능력이 중요해졌습니다.

디지털 시대인 현재는 플랫폼과 알고리즘이 무엇을 보이게 하는지를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생성형 AI 등장 이후에는 여기에 한 단계 더해졌습니다. 그 정보가 인간이 쓴 것인지, 어떤 과정으로 생성되었는지까지 생각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리터러시는 미디어와 기술 변화에 따라 지속해 확장되어 온 개념입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이 정보는 내가 직접 찾은 것인가? 누군가의 추천과 알고리즘을 통해 보게 되는 것은 아닌가? 좋아요, 댓글, 공유에 영향을 받았는가? 이 문장은 인간이 쓴 것인가? 생성형 AI가 만든 것이라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쓰기 역시 새로운 질문이 필요합니다. 이 글은 정말 내 경험과 생각을 담고 있는가? 내가 사람 앞에서 설명할 수 있는가? 글의 내용을 책임질 수 있는가? 등 말입니다.


일상에 이런 질문들을 떠올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리터러시는 늘 의심하는 게 아닌, 필요한 순간에 잠시 멈춰 생각하는 습관부터 시작합니다. 예컨대 출처를 확인하거나, 같은 내용을 여러 경로에서 찾아보거나, AI가 의심되면 근거가 있는지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개인이 이렇게 노력한다고 충분히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정보를 스스로 선택해 읽는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플랫폼이 먼저 고르고 배치한 내용을 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포털의 메인, SNS의 피드, 조회 수와 좋아요는 더 중요한 정보인 것처럼 보이게 만듭니다. 더구나 생성형 AI는 ‘그럴듯함’을 더합니다.

이에 리터러시는 사실을 구분하는 능력만이 아닌, 내가 읽는 정보가 어떤 방식으로 눈에 띄게 되었는지, 어떻게 믿을만하게 보이도록 만들어졌는지 살펴보는 능력까지 포함합니다.


기술 발전은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리터러시의 원칙이 있습니다. 출처를 확인하고, 맥락을 보며, 비판적으로 질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를 가짐으로써, 우리는 정보에 끌려다니지 않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참고자료


Baudrillard, J. (1981). Simulacres et Simulation. Galilee. 하태환(역) (2001). 시뮬라시옹. 서울: 민음사.


Cialdini, R. B. (2009). Influence: Science and practice (Vol. 4, pp. 51-96). Boston: Pearson education.


Flusser, V. (1996). Kommunikologie. 김성재 역(2003). 코무니콜로기.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Haraway, D. J. (2016). Manifestly Haraway. 황희선 (역). 해러웨이 선언문. 서울: 책세상.

A cyborg manifesto: Science, technology, and socialist-feminism in the late 20th century. In The international handbook of virtual learning environments (pp. 117-158). Springer, Dordrecht.


Law, N. W. Y., Woo, D. J., De la Torre, J., & Wong, K. W. G. (2018). A global framework of reference on digital literacy skills for indicator 4.4. 2.


McLuhan, M. (1994). 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 MIT press. 김성기·이한우 (역). 미디어의 이해. 서울: 민음사.


OECD (2025). Empowering Learners for the Age of AI: An AI Literacy Framework for Primary and Secondary Education. URL: https://ailiteracyframework.org/


Pennycook, G., Cannon, T. D., & Rand, D. G. (2018). Prior exposure increases perceived accuracy of fake news. Journal of experimental psychology: general, 147(12), 1865.


백욱인 (2023). 들뢰즈의 통제사회 비판. 서울: 커뮤니케이션북스.


*이 글은 ‘디지털포용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하였습니다.

https://www.dginclusion.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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