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의 시작과 오늘 ① : 읽고 쓴다는 것의 의미

리터러시 인사이트 제14화

by 시뮬라크르

지인 모임 대화 중 ‘리터러시’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사람들 대부분 개념 자체를 알지 못했습니다. 필자는 많이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틀렸습니다. 관련 일을 해 익숙했던 것이지 모두의 일상어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단어가 낯선 전문용어가 아닌, 평소의 단어처럼 쓰였으면 합니다. ‘리터러시’라는 개념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리터러시의 시작과 개념


‘리터러시(literacy)’라는 단어는 라틴어 ‘littera’에서 유래하며, littera는 ‘글자’를 뜻합니다. 지금 영어에서 ‘literacy’가 하나의 단어로 사전적 정의를 얻은 것은 19세기 후반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의미하는 문해력(文解力)이라는 개념 자체는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에 존재해 왔습니다.


처음 문해력은 문자, 숫자, 기호 같은 표시를 이해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나 미디어 환경과 기술이 변하면서 리터러시는 정보를 찾아 이해하고, 비판하며, 활용하는 능력까지 아우르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리터러시, AI 리터러시처럼 특정 유형별로 세분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기록의 시작과 문자의 발명


인간이 무언가를 기록하려는 욕구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문자 이전 사회는 동굴 벽화나 도자기에 새긴 그림 같은 시각적 표현으로 사냥 장면이나 신화적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사회가 점점 복잡해짐에 따라, 수량을 표시하는 눈금 새김 돌과 상형문자 등 기록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세계 각지에서 서로 다른 재료와 방법을 통해 독립적으로 발명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수메르의 점토판 쐐기문자, 이집트의 상형문자, 중국의 갑골문자 등은 서로 다른 문화 속에서 탄생했습니다.


수메르의 점토판 쐐기문자 사례 (출처: https://www.metmuseum.org/essays/the-origins-of-writing)


초기 문자의 목적은 ‘누가 읽느냐?’보다는 ‘무엇을 남기느냐’가 더 중요했습니다. 행정, 회계, 세금 징수, 법, 계약, 거래 기록 등을 남기는 것이 문자 이용의 주된 이유였습니다. 이에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는 사람, 즉 문해력을 가진 사람은 대부분 성직자, 관리, 상인 같이 권력과 관련된 소수 엘리트였습니다. 일반 민중은 문자가 거의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긴 시간이 흘러 17~18세기에 접어들 때까지도 읽고 쓰는 능력은 지역, 계층, 성별 등에 따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문해력은 권력과 지식의 소유를 의미했습니다. 현대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지식과 권력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시절 문해력이 있다는 것은 지식을 독점하거나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을 뜻했고, 그만큼 영향력과 권력이 함께했습니다.

이때 문자를 담은 책은 하나의 예술작품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직접 쓰고, 엮는 작업이 필요했다. 권력을 가진 특정 사람만 볼 수 있었습니다.


수기로 제작한 중세 시대 책 본문 사례 (이미지 출처: https://www.europeana.eu)


인쇄술의 등장과 문해력 확대


사회 전반에 문해력이 퍼질 수 있었던 결정적 사건은 인쇄술의 발명입니다. 15세기 중반 독일의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는 포도와 올리브 압착기를 본떠 만든 목제 틀에 금속활자를 조합해 최초의 기계식 인쇄기를 발명했습니다.

구텐베르크는 1455년경 성경을 대량으로 인쇄했습니다. 이전 대부분 책은 필사본으로 옮겨 적는 노동이 필요했고, 비용 부담이 컸습니다. 발명된 인쇄기는 빠르고, 정확하며, 저렴한 비용으로 책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인쇄술은 곧 정보전달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인쇄술의 발달로 일반 대중이 책과 신문을 접할 기회가 커지게 됐습니다. 저렴해진 책은 중산층의 필수품이 되었고, 이는 곧 문해력의 확장으로 이어졌습니다. 곧 인쇄술은 유럽 전역으로 퍼졌습니다. 같은 내용의 글이 대량으로 빠르게 복제되며 생각과 정보의 확산이 크게 빨라졌습니다. 종교, 정부, 대학,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생각과 저작물을 이전보다 더욱 널리 퍼트릴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종교개혁과 과학혁명에 중요한 요인이 되었습니다. 특정 언어가 반복 사용되며 표준어가 정착하는 데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인쇄술은 정치, 정교, 학문, 언어 등 사회 전반 변화의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인쇄술 발명은 사회 변혁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미지 출처: https://quocirca.com)


유념할 점이 있습니다. 일반 대중에게 인쇄물이 공급됐어도, 모두가 비판적으로 글을 읽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과장되거나 선동적인 인쇄물도 빠르게 확산했고, 지금 말하는 가짜뉴스 역시 존재했습니다. 즉 ‘글을 읽을 줄 안다’와 ‘글을 잘 읽는다’의 차이가 중요했습니다. 이는 현재도 유효합니다.


말하기 문화와 쓰기 문화의 차이


<구술문화와 문자문화>의 저자 월터 옹(Walter Ong)은 말하기와 쓰기가 사고방식까지 바꾼다고 강조했습니다. 말은 순간적이며 사라집니다. 문자로 적힌 글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보존됩니다. 책을 생각해 볼까요. 문자는 세상을 더 세부적으로 분류하고, 개념을 고정하며, 긴 설명과 논증을 가능케 합니다. 반면 말하기 중심 문화는 관계와 맥락을 중요하게 보며, 즉흥성이 강합니다.

지금은 디지털 시대입니다. 말처럼 문자로 즉각 반응할 수 있습니다. 실시간 댓글, 짧은 메시지, 이모지 등은 문자를 대화처럼 느끼게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리터러시-문해력의 개념을 더 확장했습니다. 읽고 쓰는 능력을 넘어 비판하고, 평가하며, 정보를 활용하는 능력까지 포함하게 했습니다.


영상시대와 디지털 시대의 리터러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들어와 정보를 전달하는 다양한 미디어가 등장했습니다. 라디오, 영화, TV 등의 보급으로 사람들은 글과 함께 소리와 영상을 통해서도 정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미디어 이론가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현대 사회가 논증과 긴 설명보다, 즉각적으로 전달되는 이미지와 인상을 더 쉽게 받아들인다고 지적했습니다. 다시 말해 정보를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사건이라도 어떤 장면을 보이고 생략하는지, 자막이나 배경음악을 어떻게 배치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에 미디어 리터러시는 정보의 사실 여부뿐만 아니라, 어떤 관점으로 제작됐는지, 무엇을 바탕으로 하는지, 누가 어떤 의도로 만들었는지도 함께 읽어낼 수 있는 역량을 강조합니다.


미디어가 어떻게 보여주느냐에 따라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리터러시가 강조되는 이유다. (이미지 출처=https://www.psychologs.com)


오늘날 우리는 스마트폰, 인터넷, SNS 등을 통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접하고 있습니다. 문자, 음성, 사진, 영상을 넘나들며 대화하고, 알고리즘이 추천한 콘텐츠를 소비합니다. 오래전부터 리터러시는 문자 해독에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보 출처를 확인하고, 다양한 관점을 교차 검증하며, 알고리즘이 어떤 기준으로 나에게 정보는 추천하는지 등을 이해하고 비판하는 능력 역시 중요해졌습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리터러시는 변화하는 미디어 및 기술환경 속에 정보를 이해하고, 비판하며,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지금 이어지고 있는 AI 시대에도 끊임없이 리터러시를 재정의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AI가 어떻게 학습하고, 어떤 한계를 갖는지 알고, 비판하는 것도 새로운 리터러시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이어지는 다음 편(리터러시의 시작에서 오늘까지 ②)에서는 디지털과 AI 이후의 읽기와 쓰기 문제를 살펴봅니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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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ucault, M. (1975). Surveiller et puir: Naissance de la prison. 오생근 (역) (2011). 감시와 처벌: 감옥의 역사. 서울: 나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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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g, W. J. (2011). Writing is a technology that restructures thought. In The linguistics of literacy (pp. 293-320). John Benjamins Publishing Company.


Postman, N. (2025). Amusing Ourselves to Death. 홍윤선 (역) (2020). 죽도록 즐기기. 서울: 굿인포메이션.


Reuters(2024. 7. 4). World's oldest cave painting in Indonesia shows a pig and people. URL: https://www.reuters.com/science/worlds-oldest-cave-painting-indonesia-shows-pig-people-2024-07-03


Spar, I. (2004). The Origins of Writing. 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 URL: https://www.metmuseum.org/essays/the-origins-of-writing


University of Illinois Library. American Newspapers, 1800–1860: City Newspapers. URL. https://www.library.illinois.edu/hpnl/tutorials/antebellum-newspapers-city/


*이 글은 ‘디지털포용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하였습니다.

https://www.dginclusion.com/news/articleView.html?idxno=1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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