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같은 가상이 뒤섞인 시대의 ‘비판적 AI 리터러시

리터러시 인사이트 13화

by 시뮬라크르

실제 같은 가상, 가상 같은 현실의 도래


어느 날, 동생에게 사진 한 장을 받았습니다. 보자마자 “AI가 만든 거야?”라고 물었습니다. 하지만 여행에서 찍은 아이들의 실제 사진이었습니다.


아래 첫 번째 사진을 보겠습니다. 석양이 비추는 바닷가에서 아이 둘이 떨어지는 해를 잡고 있습니다. 무수한 별이 함께 보이는 환상적인 분위기입니다. 물론 디지털 기술로 보정된 사진입니다. 두 번째는 첫 번째 사진을 바탕으로 AI로 생성한 이미지입니다. 만약 ‘AI로 만든 사진이 무엇이냐?’라고 묻는다면, 어떤 사진을 선택하실 건가요? 실제와 가상을 구분하기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실제와 가상을 구분할 수 없는 이미지의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미지=(위)필자 소장, (아래)챗GPT로 생성)


필자는 이제 하나를 생각합니다. ‘실제인가?’. 아무 생각 없이 SNS를 보던 ‘감각의 마비’를 벗어나게 됐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이제 많은 사람도 역시 AI 생성을 의심합니다. ‘영화 같은 현실’이란 표현이 익숙해졌듯, ‘AI 같은 현실’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구분 기준 자체가 흔들이는 세상이 눈앞에 왔습니다.

AI 생성 콘텐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현실에 없는 콘텐츠입니다. 가령 고대 신화 속 인물이 현대의 거리를 걷거나, 고양이가 요리도구로 음식을 만들기도 합니다. 허구임이 분명한 콘텐츠들입니다. 둘째, 현실 같은 콘텐츠입니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가짜인지 알아챌 수 없거나, 처음부터 실제로 받아들여지는 콘텐츠입니다.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딥페이크(deepfake) 영상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다음 사진을 보겠습니다. ‘thenaturewindow_’라는 인스타그램 계정의 AI 생성 콘텐츠들입니다.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영상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AI라는 것을 알면서도 진위보다 완성도와 흥미를 평가합니다. 혹은 알고리즘에 우연히 노출되어 실제 상황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이 계정 외에도 AI 생성 콘텐츠를 올리는 수많은 계정이 있습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다음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현실 같은 수많은 AI 생성 영상을 숏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thenaturewindow_인그타그램 계정 콘텐츠 캡쳐)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와 AI 생성 콘텐츠

AI 생성 콘텐츠 현상은 기술 문제를 넘어 현실 구성 방식 변화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사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이러한 현상을 시뮬라크르(simulacre)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크르에 따른 사회적 현상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실제가 이미지와 기호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다.”


무슨 뜻일까요? 먼저 보드리야르가 말했던 ‘시뮬라크르’라는 개념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해, 시뮬라크르는 실제를 대체하는 새로운 현실을 뜻합니다. 무엇을 모방하려면 그 대상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모방은 점차 원본과 분리되며 하나의 사실이 됩니다. ‘미키마우스’를 떠올려 봅시다. 처음엔 ‘쥐’를 모티브로 시작된 캐릭터였습니다. 이제 미키마우스를 보고 실제 쥐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미키마우스는 원본과 다른, 독자적 현실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시뮬라크르는 현실에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AI 생성 콘텐츠는 학습된 데이터와 계산을 통해 ‘만들어진 이미지’지만, 실재보다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AI로 만든 인플루언서, 가수, 아나운서, 배우가 실제 사람처럼 SNS 활동하며, 때로는 실제 사람보다 더 대중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보드리야르는 이러한 과정을 ‘시뮬라시옹’(simulation)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시뮬라시옹은 동사적 의미로 ‘시뮬라크르 하기’이고, 우리가 익숙한 단어 ‘시뮬레이션’이라는 단어와 연결됩니다. 이는 실제 상황을 가상으로 흉내 내어 분석하거나 예측하는 행위를 뜻합니다. 보드리야르는 시뮬라시옹이 이미지가 사실을 반영하는 단계에서 시작해, 사실을 감추고, 사실의 부재를 가리며, 결국 어떤 사실성 과는 무관한 순수한 시뮬라크르가 된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시뮬라시옹 단계는 일상의 SNS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SNS에 AI로 보정된 자신의 사진을 올립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그 사람의 인상’으로 기억합니다. 시간이 지나며 원본 사진은 사용되지 않고, 디지털 세상에서는 AI가 만든 이미지가 그 사람을 대표하게 됩니다. 결국 현실의 개인은 SNS 계정과 AI 이미지로 구성한 또 하나의 정체성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요새 말하는 ‘SNS 페르소나’입니다.


시뮬라크르의 시대, 다양한 SNS 페르소나가 태어나고 있다. (이미지=챗GPT로 생성)


시뮬라크르 시대의 비판적 AI 리터러시


마음먹으면 AI 생성 콘텐츠를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됐습니다. AI 생성 텍스트, 이미지, 영상 등은 알고리즘과 SNS를 타고 퍼지며, 우리가 현실을 인식하는 방식에 영향을 줍니다. 중요한 것은 진짜를 가려내는 능력이 아닙니다. 무엇이 실제처럼 보이게 되는지가 점점 불투명해졌음을 아는 것이 요구됩니다.


결국 ‘비판적 AI 리터러시’가 필요합니다. 비판적 AI 리터러시는 실제와 가상, 그리고 시뮬라크르를 질문하는 힘입니다. 이 이미지는 누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어떤 목적으로 공유되고 있는지, 노출 방식은 무엇인지, 어떤 맥락이 빠져 있는지 등을 비판적으로 묻는 역량입니다. 특히 SNS의 알고리즘은 이전에 본 콘텐츠를 기준으로, 관심 있을법한 것들을 반복해 보여줍니다. 그 결과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됩니다. 또 그것이 세상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끼게 됩니다.


‘비판적 AI 리터러시’는 실제와 시뮬라크르의 완벽한 판별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댓글을 읽어 보고, 모를 때는 모른다고 말하며, 확실하지 않은 이미지를 쉽게 공유하지 않는 태도부터 시작합니다. 무엇이 보이는가만큼, 무엇이 보이지 않게 되었는지를 의식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시뮬라크르 시대에 우리는 실제와 가상이 뒤섞인 환경에 살고 있습니다. AI의 발전은 구분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구분의 필요성조차 느끼지 않게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중요한 것은 비판적 태도입니다. 필자는 하나를 먼저 떠올린다.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힘입니다.

*참고문헌

Baudrillard, J. (1981). Simulacres et Simulation. Galilee. 하태환(역) (2001). <시뮬라시옹>. 서울: 민음사.


*이 글은 ‘디지털포용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하였습니다.

https://www.dginclusion.com/news/articleView.html?idxno=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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