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터러시 인사이트 12화
어느 날 문득 ‘나는 왜 운동을 안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리 상담에 AI를 쓴다는 뉴스가 떠올랐습니다. 궁금해 챗GPT에 물어봤고, 결과는 다양했습니다. 동기 부족, 시간과 에너지 부족, 정서적 요인 등 여러 이유를 알려줬습니다. 보고 있자니 왠지 나를 이해한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자연스레 내 상황을 이야기하며 상담을 이어 나갔습니다. 이윽고 글을 나누는 게 아닌, 언어로 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글쓰기가 즐겁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일기를 쓰며 하루를 정리하거나, 친구들과 메시지를 나누며 웃음을 짓는 날이 그렇습니다. 혹은 시인이 된 듯 끄적끄적 글을 써 내려간 적도 있었습니다. 네덜란드 역사학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즉 ‘놀이하는 존재’라고 불렀습니다. 하위징아에게 놀이는 재미있는 오락을 넘어 인간이 문화를 창조하는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글쓰기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인간의 놀이 중 하나입니다. 챗GPT와의 대화도 일종의 글쓰기 놀이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앞에 말한 경험은 ‘왜 운동을 안 하는지’ 정답을 찾는 것 이상으로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습니다. 문장을 쓰고, 문장에 반응하며 내 생각이 변해가는 과정이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는 확장됐습니다. 텍스트 옆에 이미지, 영상, 소리가 함께 놓입니다. 인터넷에 흔히 볼 수 있는 블로그만 봐도 그렇습니다. 지금의 글쓰기는 여러 콘텐츠가 섞여 의미가 만들어집니다. AI도 합세했습니다. 이를 설명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멀티모달리티(Multimodality). 여러 방식이 함께 작동해 뜻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본래 인간은 다양한 방법으로 커뮤니케이션해 왔습니다. 디지털 기술은 이러한 복합적 소통을 뚜렷이 했습니다. 숏폼(Short-form) 하나에도 텍스트, 이미지, 음악, 사람의 행동 함께 메시지를 전합니다.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는 문장을 만드는 일만이 아니게 됐습니다.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도를 어떤 형식과 흐름으로 만들지 함께 고민하게 됐습니다. 글쓰기 놀이 공간이 넓어진 셈입니다.
이런 변화 속에 ‘멀티모달 리터러시’를 말하고 싶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여러 방식으로 생각을 표현하고 읽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글자뿐만 아니라 이미지, 소리, 영상, 나아가 AI를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을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복합적 방식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짧은 영상으로 생각을 나누고, 밈(meme)으로 세상을 풍자하고 있습니다. 이제 글쓰기는 ‘문법’이 아니라, 생각을 어떻게 ‘조합하고 표현하느냐’에 달렸습니다. 지금 우리는 글보다 시각적 정보를 먼저 받아들입니다. 의미가 구성되는 방식이 달라졌습니다. 이 변화를 읽고 다룰 수 있어야 합니다. 멀티모달 리터러시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역량입니다.
하위징아는 ‘인간은 놀이를 통해 문화를 만든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지금 시대에 더욱 설득력 있게 느껴집니다. AI와의 대화, SNS 글쓰기, 영상 만들기 등으로 우리는 언어와 이미지를 가지고 놀며, 새로운 디지털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놀이에는 책임도 따릅니다. 표현의 자유가 넓어진 만큼 타인의 생각을 존중하고, 왜곡과 혐오를 경계할 수 있는 윤리가 필요합니다.
멀티모달리티는 우리 일상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이 지금의 글쓰기고, 새로운 리터러시-‘멀티모달 리터러시’입니다. 우리는 호모 루덴스, 놀이하는 인간입니다. AI와 함께 언어를 다루고,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는 문화를 창조하는 놀이입니다. 우리는 이 놀이 속에서 새롭게 읽고 쓰는 인간이 되고 있습니다.
참고문헌
Ellevation (2025). What is multimodal literacy?. URL: https://ellevationeducation.com/blog/what-multimodal-literacy
Huizinga, J. (2014). Homo ludens. 이종인(역). <호모루덴스>. 연암서가.
*이 글은 ‘디지털포용뉴스’에 기고한 칼럼을 수정하였습니다.
https://www.dginclusion.com/news/articleView.html?idxno=1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