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意味)와 가치(價値)는 함께 태어났다. 인간의 두뇌와 마음이 점차 발달하면서 의미와 가치도 함께 발전했다. 의미와 가치를 찾아 헤매는 존재는 지구상에 오직 인간밖에 없다. 먹이를 사냥하고 짝을 찾아 번식하는 일보다 삶의 의미와 존재 가치를 찾으며 허덕이는 생물은 사람밖에 없을 것이다. ― 하지만 또 모르는 일이다. 인간이 아닌 동물들도 믿음으로 살고 신을 숭배하고 의미와 가치를 찾으며 살지도. ―
'인간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진부한 질문이 수천 년 동안 많은 학자들에 의해 연구되면서도 무수한 해답만 나오고 끝내 정답을 찾지 못한 데에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인간의 존재에는 애당초 특별한 의미나 가치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내가 남보다 더 귀한 이유도 없고남이 나보다 더 중요한 이유도 없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무조건인간을 가장 사랑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옛날에는 그랬을지라도 지금은 마음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은가.
성경에는 신이 인간에게 베푼 수많은 자비와 사랑이 담겨 있지만 ―물론나는 비종교인이기에 성경의 정확한 내용은 모르지만― 신의 구원만을 믿으며 살 수는 없는 노릇.지구가 멸망하게 되었을 때 혼돈에 휩싸인 세상을 구원하려 내려온 신이 인간 대신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이나 바닷속에 있는 해양생물들, 혹은 거리에서 힘겹게 살아가던 들개와 길고양이와 생쥐들만 데리고 갈 수도 있지 않겠는가!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왜 그동안 당신을 믿고 따르고 의지한 우리를 구하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신이 "인간은 이제 멸할 때가 되었다. 이맘때 인류는 지구에서 사라지리라고 내가 계획했다."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세상이 모두 전지전능한 신의 뜻대로 흘러간다면 말이다. 천국도 지옥도 없는 세상으로 불현듯 빨려 들어가 그대로 소멸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
너무 많은 생각은 삶을 복잡하게 만든다. 복잡한 머릿속은 어느 것도 결정하지 못한다. 불유쾌하고 찌뿌둥한 두통만 남기고 시간은 바람처럼 사라진다. 없는 의미를 만들어내려 안간힘을 쓰면 지칠 뿐, 나의 가치를 억지로 찾아내려 할수록 되레 나는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쓸모가 있든 없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던가. 쓸모 있다고 파괴되고 사라진 존재들이 얼마나 많던가. 인간의 추악한 욕심과 경쟁심으로 인해 유흥거리로 전락한 생명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실 지구에서 가장 쓸모가 없는 존재는 바로 인간이다. 그런 인간들이 인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서로 자기가 더 쓸모 있다며 짓밟고 올라가는 모습은 처량하다.
나는 그냥 산다. 그렇지만 생각 없이 살고 싶지는 않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어떻게 해야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을지,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세상에 미미하더라도 온기를 퍼뜨릴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생각한다. 자주 쓸데없는 몽상에 빠진다. 사람을 혐오하다가 그래도 사랑하자고 다짐하다가 다시 미워하다가, 말미에는 동질감과 유대감과 우정이 진정한 사랑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정해진 의미는 없으니 그런 것들을 구태여 찾지 말자고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어떤 것에서는 의미를 찾고, 어떤 것에는 가치를 매기며 산다.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사실 꽤 제멋대로 사는 편이다. 어차피 언젠가 죽을 거라면 가장 나다운 사람으로 살다가 죽고 싶다고 생각한다. 다만 역시 도전하기는 무섭고 위험 부담이 큰 세상으로 섣불리 달려들지는 않는다. 제멋대로 살고 싶지만 정말 마음대로 살았다간 삶이 너저분해질 테니까.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우유부단하고 겁도 많다.
의미가 필요한 삶이라면 스스로 만들면 그만. 날씨가 화창한 오후에 집 근처로 산책을 나가서 간단한 군것질거리만 사 먹어도 의미는 충분히 채워진다. 고양이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간드러진 울음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사랑하는 힘이 생긴다. 책 한 권과 노래 한 곡의 힘을 무시하지 말자. 그것들이 내 삶의 모든 가치가 되어 나를 계속 살게 만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