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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Nov 06. 2023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이유

나는 내 장점 대신 단점을 먼저 찾는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이유 10가지.


물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당연히 내가 아닐 것이고 그 누구도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는 오로지 내 인생만을 살았고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타인의 괴로움과 고통에 공감하려면 그것을 직접 겪어봐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내가 되어야만 한다. 갑자기 나와 내 옆을 지나가던 사람의 영혼이 바뀌지 않는 이상. 아니, 바뀌어도 어차피 나의 영혼과 의식은 그대로 존재하니 변하는 건 없을지도 모르겠다.




1. 집이 가난하다.

돈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다면 적어도 불행할 조건은 갖춘 셈이다. 가난해도 화목하게 사는 집안은 과연 신으로부터 어떤 축복을 받은 것일까.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일상생활조차 영위하기 힘들어지고, 생계가 어려우 신경이 예민해진 가족 구성원들은 서로를 향한 불만과 불신을 키워간다. 갈등이 잦아지고 불화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경제적으로 빈곤하면 '어휴, 하필이면 왜 이런 집에서 태어났을까!'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부모님께 심히 불효스러운 자식이다. 돈이 없으면 가족 여행조차 떠난 적 없는 슬픈 사람이 된다. 나는 아직 비행기를 한 번도 타지 못했다. 대한민국에서 벗어난 적도 없다. 대출금을 갚고 돈을 벌면 제일 먼저 여행을 떠나고 싶다.


2. 체력(+정신력)이 약하다.

체력은 모든 일의 기본이다. 공부하는 것, 일하는 것, 움직이는 것, 하다 못해 아무것도 안 하고 멍하니 누워 있는 것만으로도 분명 힘이 든다. 나는 체력이 몹시 약해서 뭘 하든 쉽게 지친다. 몸이 금방 힘들어지는 데다가 정신력도 강하지 않아서 소위 말하는 근성이라는 것이 없다. 열정, 인내심, 끈기력… 뭐 그런 것들. 우선 건강한 정신을 만들려면 건강한 몸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만드는 것부터가 고난이다. 이따금 원인 모를 두통과 이곳저곳에서 느껴지는 골통(骨痛), 소화불량에 시달리며 10초만 달려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허약한 몸뚱이. 이런 몸에 건강하고 튼튼한 영혼이 존재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슬픈 일이다. 체력과 정신력이 없는 사람은 해야 하는 일도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인간이 된다. 사실 박약한 체력보다는 단순히 할 마음과 의지가 없기 때문이지만.


3. 회사에 다니는 중이다.

대학생이라고 행복하던가? 내로라하는 명문대학교에 다니거나 멋들어진 유학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고 행복하던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처를 찾아다니는 구직자라고 행복하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그리고 대한민국 직장인은 높은 확률로 행복하지 않은 것을 넘어 불행하다. 나의 자유와 시간과 청춘을 모두 정기적인 수입과 반강제적인 단체 생활에 바쳐야 하는 운명. 한 달에 300만 원 받는 백수와 한 달에 1,000만 원 받는 직장인 중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정답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한 달에 300만 원도 받지 못하는 직장인이니까요! 이런 빌어먹을 현실. 의외로 직장생활에 만족하면서 자기 계발도 철저히 하는 Not Human이 생각보다 많아서 간혹 '이거 나한테만 적용되는 사실인가?' 싶기도 하다.


4. 자꾸 외모에 불만을 가진다.

나는 자신감이 없는 편이다. 사춘기 시절처럼 자기 비하를 일삼거나 괜히 나 자신을 깎아내리는 언행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아직 완치는 되지 않았다. 자기 자신에게 100% 만족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지만 이상하게 100% 불만족하는 사람은 많다. 나는 보이는 외면보다 스스로 가꾸는 내면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그렇게 살고 있지만… 그래도 거울을 볼 때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예뻤다면, 잘생겼다면, 키가 컸다면, 얼굴이 작았다면, 볼살이 없었다면, 치아가 가지런했다면 참 좋을 텐데!' 같은 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외모에 불만을 나열하자면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쓸 수 있으나 구태여 그러지 않는다. 어쨌든 타고난 얼굴은 의학의 힘을 빌리지 않는 이상 변할 수 없으니 소중하게 끌어안고 살자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못났다고 욕해봤자 외모가 잘나게 바뀌는 것도 아닌데 뭐 하러 내가 나를 뜯어먹고 사는가…. 그냥 그렇게 체념하는 중이다.


5. 미래가 불확실하다.

이건 조금 우스운 이야기다. 세상에 미래가 확실하게 결정된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다. 어쩜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미래가 결정되었다니 사는 게 정말 지루하겠구나. 내가 조선 시대 왕세자들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유 중 하나다. 세자로 책봉되자마자 오로지 국왕이 되는 일에만 일생을 바쳐야 한다고? 자유롭지 못한 삶은 질색이다.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삶은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다. 그게 당연한 건데도 그 시간을 살아보지 못한 나는 불확실한 미래를 향한 확실한 불안과 걱정에 괴로워한다. 나중에 퇴사하면 뭘 해야 할까, 대학은 갈 수 있을까, 간다고 한들 열심히 공부할 수 있을까, 다른 회사로 갔는데 지금보다 더 안 좋으면 어쩌지, 하고 싶은 건 많은데 하나라도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정말 멍청한 질문이다.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벌써 안되면 어떡하지'를 생각한다니. 안되면 어쩔 수 없지. 진짜 후회되는 건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더 슬픈 사실은 때로는 열심히 해서 후회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6. 성격이 별로다.

성격이 좋은 사람을 보면 신기하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사고방식이 긍정적일까? 어떻게 하면 저렇게 사교성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저렇게 자연스럽게 남을 배려할까? 와우! 신기한 사람이 너무 많다. 세상은 긍정적이고 사교성 좋고 남을 배려하는 사람을 좋아하기에, 부정적이고 사교성 없고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배척되거나 험담의 대상이 되고 만다. 물론 나도 당연히 성격 안 좋은 사람과는 대화도 하기 싫다. 다만 의외로 성격 안 좋은 사람에게도 배울 점은 많다.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을 수도 있고, 성격도 안 좋고 말도 험하지만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나 살아가는 방법, 자신만의 신념 혹은 가치관에서 본받을 점도 존재한다. 그러나 어쨌든 성격이 좋지 않은 사람은 비호감이다. 문제는 내가 다른 사람들 눈에도 그런 성격으로 보일 거라는 사실. 하하. 성격이 안 좋은 걸 인지하고 있다면 좀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니? 으음… 이게 천성이라 그런지 변하기가 어렵네요. 이런, 비겁한 변명이로구나.


7. 시력이 나쁘다.

과연 이게 불행한 이유가 될까 싶지만, 의외로 일상생활에 큰 불편을 주는 요소는 모두 불행의 조건이 될 수 있다. 선천적으로 뛰어난 시력을 타고나거나 올바른 관리로 깨끗한 시야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큰 축복을 받은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수년 동안 다져진 스마트폰 게임과 TV 시청으로 초등학생 때부터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착용했다. 안경은 정말이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물건이 아닐 수 없다. 물방울이 튀거나 작은 흠집만 생겨도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든다. 뜨거운 음식을 먹을 때나 겨울철에 추운 바깥에서 따뜻한 실내로 들어왔을 때 순식간에 안경알에 김이 서려서 시야를 방해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건드리지 않아도 수시로 닦지 않으면 먼지가 쌓이고 기름기가 묻어서 몇 번이고 닦아줘야 하는 데다가 안경 닦이도 정기적으로 세탁을 해주어야 한다. 시력이 나쁘다는 건 세상을 흐릿하게 보고 살거나 안경을 쓰는 대가로 선명한 세상을 보고 사는 것. 시력은 신장, 피부, 치아와 더불어 가장 훌륭한 유전적 요소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안타깝게도 시력을 물려받지 못했다. 물론 큰 신장, 깨끗한 피부, 건강한 치아도 물려받지 못했다.


8. 나 자신을 믿지 못한다.

자신감이 없는 성격과 더불어서 나는 나를 잘 믿지 못한다. 자존감이 낮다는 말과도 이어질 수 있을까? 자존감은 '스스로 품위를 지키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을 뜻하는 단어. 자신감이 낮으면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하고, 나 자신을 향한 불신과 불만이 하나둘 쌓이면 나를 존중할 수도 없게 되니 그것들은 분명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자기 자신을 향한 불신은 불행의 씨앗이 되기 충분하다. 누군가가 내게 기대를 품으면 그 순간부터 나는 온갖 불안에 시달린다. 나는 저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우수하거나 훌륭한 사람이 아닌데, 혹여나 그것을 들키거나 그 누군가가 진짜 내 모습을 보고는 실망할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그건 내가 나 자신을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하든 '나는 제대로 못하겠지….'라는 생각이 먼저 튀어나오니, 설령 내 능력의 수치가 100이라고 해도 나는 기껏해야 50 정도의 능력밖에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연이어 나타나는 실수와 온 신경을 지배하는 압박감. 내가 능력 없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일종의 서커스 같다. 세상에. 정말 불행한 사람 같잖아? 막상 누군가에게 기대를 받은 적도 많지 않은데 말이다.


9. 되는 일이 없다.

이게 불행의 조건이 된다면 우리는 모두 불행하다. 되는 일이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러나 되는 일이 없는 사람도 의외로 적다. 어제가 괜찮은 하루였다면 오늘은 쓰레기 같은 하루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언제나 되는 일은 없다. 나는 이루어진 소원보다 엎어진 소망을 기억하는 사람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불행한 사람이 되었다.


10. 나는 아직 행복하지 않다.

행복하려면 멀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이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아직 대학교를 가지 않았으니 나는 좋은 대학교에 가야 할 것이다.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교에 진학해서 열심히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좋은 학교를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고 싶다. 좋은 직장에 들어가면 좋겠지만 적어도 내 인생에 '좋은 직장'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세상 어디에도 좋은 직장은 없다. 조금 더 나은 직장과 덜 나은 직장이 존재할 뿐. 나는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보람찬 일을 하고 싶다. 그러면 좀 행복해질 것 같다. 돈을 많이 번다면 좋겠지만 내 행복의 우선순위는 돈이 아니다. 다만 돈이 없다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까? 욕심을 버려야겠지. 과연 내가 물질적인 욕심을 완전히 버리고 살아갈 수 있을까. 거처도 직장도 없이 방랑하듯 방황하며 살아가는 길바닥 신세가 되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인가? 모르겠다. 어쨌든 나는 아직 행복하지 않다. 마음 한구석이 뚫린 기분이다. 텅 비어 있다.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 그러면 나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좋을지를 모르겠다.




쓰다 보니 행복과 불행의 정체를 의심하게 된다. 자신이 행복하다고 확신하는 사람과 자신이 불행하다고 확신하는 사람을 불러서 인터뷰를 하고 싶은 심정이다. 행복한 사람은 유복하고 단란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서적인 안정과 사람들의 신뢰 속에서, 건강한 신체와 밝은 성정을 가지고 철저한 교육과 자기 계발을 통해 잘 자란 사람일까? 그렇다면 불행한 사람은 정확히 그 반대여야 할 것이다. 불우하고 험악한 가정에서 태어나 불안하게 성장한다면 적어도 불행할 기본 조건은 자연스럽게 갖추게 된다. 하지만 세상 그 누가 불행해지기 위해 태어난단 말인가. 전지전능한 신에게도 한 사람의 생을 불행하게 만들 자격은 없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이유를 쓰다 보니 시시하다. 시시하면서도 불행한 이유 하나하나가 너무 거대해서 어떻게 이걸 극복하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다가 시큰둥하게 깨달았다. 행복은 노력한다고 해서 이뤄지는 게 아니구나. 쳇. 재미없어라. 노력해서 행복해진다니 참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불행해질 수도 있고, 그럭저럭 행복해질 수도 있다. 어떤 날은 태어남을 감사할 정도로 행복할 것이고 어떤 날은 삶을 놓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불행하겠지. 사실 나는 알고 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미래의 나와 지금의 나는 크게 다를 바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나는 이미 내가 아니게 되었음을…. 아아, 참 슬프다. 나는 육체와 영혼이 모두 죽은 이후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나'의 삶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구나.


딱히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세상이 언제 내 마음대로 흘러갔던 적이 있던가. 받아들이고 사는 게 가장 비참하고도 가장 편안한 방법이라는 건 어느 정도 깨우쳤다. 물론 그렇게 살고 있지는 않다. 나는 그 정도로 현자가 아니다. 어떻게든 이 간악한 현실을 부정하고 밀어내고 바꾸고 저항하는 게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고,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믿는다. 그 과정이 곧 나의 결과이다. 나의 하루하루는 전개인 동시에 결말이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지금의 나를 끌어안을 수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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