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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야사 Mar 01. 2022

Higher, 헤아리다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모르는 사이에 마음 구석을 차지한다


주변 사람, 아니면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불쑥 묻고 싶을 때가 있다.




"혹시 가장 좋아하는 단어가 무엇인가요?"




사실 뚜렷한 답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루를 살면서도 수많은 단어와 수많은 문장을 접하고 사는데, 그 안에서 구태여 '이 단어가 가장 좋아!'라고 생각하는 경우는 없다.


단어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우는 외국어라면 몰라도 태어나서부터 자연스럽게 익히며 살아온 모국어는 더욱 그렇다. 이 질문을 들으면 머릿속에서 수많은 단어가 떠오를 것이다. 내가 평소에 뭘 좋아하며 살았더라. 세상, 삶, 빛깔, 바다, 하늘, 평화, 사랑, 나른하다, 뜨뜻미지근하다, 가족, 친구, 좋다, 모든 것, 전부, 예쁘다, 달리다, 나아가다, 성장하다, 달, 별, 밤 등등등.


도저히 하나의 단어를 정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다. 대답을 포기하는 것도 당연하다. 애초에 '가장 좋아한다'는 전제 자체도 애매하다. 듣는 걸 좋아하는 건지, 말하는 걸 좋아하는 건지, 의미를 좋아하는 건지, 어감을 좋아하는 건지도 정확하지 않으니 말이다.


좋아하는 건 언제든지 바뀐다. 그래서 글로 남기고 싶다. 2022년 2월 26일 토요일의 나는 어떤 단어를 가장 좋아했는지. 왜 하필 많고 많은 단어 중에서 그 단어를 선택했는지.





더 높이, 내가 나로서 올라갈 수 있는 만큼


가장 좋아하는 영어 단어는 'Higher'이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우선 읽는 방법은 하이얼 또는 하이어. 영어사전에 등재된 뜻은 '고등의, 더 높은, 더 중요한'이라고 한다. 하지만 사전에서 정의하는 의미로서 좋아하는 건 아니다. 이 단어에 유독 관심을 가진 건 우연히 영국의 음악 그룹 Clean Banditd(클린 밴딧)의 노래 [Higher(feat. iann dior)]을 듣고 난 후이다. 트로피컬 하우스 장르 노래를 무척 좋아해 유튜브에서 트로피컬 하우스 팝송을 찾아보다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 후로 나의 음악 플레이리스트 한편을 당당히 차지한 영광의(?) 노래 중 하나이다.


그러다 문득 이 단어에 눈길이 갔다. 그동안 'High(하이)'라고 하면 수준, 가치, 위치 등이 높은 '고등'이나 '고위'라는 느낌이 강했다. 하이레벨, 하이스쿨처럼. 그런데 이 노래를 듣고 난 후에는 단어가 품은 느낌이 조금 달라진 것이다. 참 신기한 일이었다. 지금보다 더 높이. 단순히 지금보다 더 유복하거나 유능하거나 유명한 위치로 올라간다는 뜻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고 나아가는 내가 됨으로써 높이 올라가겠다는 의미가 되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렉트로니카 DJ인 'Tobu(토부)'가 탄생시킨 음악 'Higher' 역시 내가 이 단어를 매력적으로 느끼는 이유 중 하나이다. 가사를 통해 감정과 이야기를 전달하는 노래가 아닌, 오직 리듬과 멜로디만으로 채워진 음악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일상 속 기적이다. 오직 제목 한 단어와 음악의 흐름만으로, 내 몸이 구름을 뚫고 연한 하늘빛과 주황빛과 분홍빛이 한데 어우러진 하늘 위로 올라가게 해 주니까. 음악 자체에 담긴 신나는 희망과 즐거운 쾌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게 단어 자체가 더 높이 올라간다는 의미인 Higher은 어느 순간, 누군가 나에게 가장 좋아하는 영어 단어가 무엇이냐 물으면 대답할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사실 단어 자체보다는 그 단어를 이용한 음악으로 인해 단어를 사랑하게 된 것이지만. I will go higher. 나름 괜찮은 문장이 아닐까 싶다.





나는 하늘의 별도, 사람의 마음도 헤아릴 수 없어요


최근 들어 마음이 풍덩 빠진 노래가 있다. 대한민국의 인디밴드 '너드커넥션(Nerd Connection)'의 노래 중 하나인 '좋은 밤 좋은 꿈'이다. 유튜브에는 참 좋은 노래가 많다. 새벽 감성, 인디 음악, INFP의 플레이리스트를 검색하면 나의 취향을 알고 만든 듯한 노래가 몇 시간짜리 영상으로 주르륵 놓여있으니 말이다.


저 많은 별을 다 세어 보아도
그대 마음은 헤아릴 수 없어요


노래의 첫 소절. 파도가 치듯 잔잔한 멜로디와 찬란한 별하늘을 연주하는 기타 선율, 서늘한 가을밤을 채우는 깊은 목소리가 가사를 읊조리는 순간이었다. 나는 저 문장과 처음 눈을 마주했다. 헤아릴 수 없어요. 하늘에 뜬 수많은 별은 알더라도 당신의 마음은 알 수 없어요. 헤아리다. 왜 갑자기 그 문장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는지는 나조차도 알 길이 없다.


헤아리다. 국어사전에 등록된 의미를 찾아보면 특별할 것도 없다. 수량을 세다, 그 수 정도에 이르다, 짐작하거나 가늠하여 미루어 생각하다, 이 정도가 '헤아리다'라는 문장이 가진 의미이다. 하지만 누가 사전적 의미를 마음에 품고 살까. 수많은 시와 소설과 노래에 등장하는 헤아림의 뜻은 그저 수량을 세거나, 수를 가늠하거나, 짐작하는 정도에 다다르지 않는다.


내가 생각한 '헤아리다'는 조금 더 많은 의미가 있다. 어떤 대상이 무언가를 이해하는 것, 깊이 생각하는 것, 그 의미를 고민하는 것, 머리로든 마음으로든 받아들이려 하는 것. 그런 마음이 나무처럼 심어진 것을 '헤아리는 일'이라 말하는 걸지도 모른다. 비단 사람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존재에 해당되는 것. 어쩌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이 '나'이자 '남'으로 사는 세상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을 헤아리면서 살게 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헤아리며 산다. 드넓은 우주에서도 기어코 생명을 품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하나씩 빛을 머금는 수많은 별이 생겨난 땅에서. 보이지 않는 별빛을 매일 헤아리고, 또 헤아리고, 헤아리며 살고 있다. 그래서 이 단어가 좋아졌다. 나는 앞으로도 무언가를 계속 헤아리며 살 테니까. 셀 수 없는 숫자를 세기보다는 그 숫자 속에서 살아가는 많은 것들을 짐작하고, 가늠하고, 생각하고, 이해하고, 고민하고, 받아들이면서 살아가고 싶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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