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야사 Mar 05. 2022

느림의 미학

의외로 느린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세상은 빠르다. 빨라도 너무 빠르다. 이동 수단의 발달로 다른 장소, 다른 지역, 다른 국가로 떠나는 것도 무척 빨라졌다. 통신 수단의 발달로 숫자 몇 개만 누르면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사람과도 편하게 통화할 수 있는 세상이다. 유행은 하루 건너 하루 반짝였다가 순식간에 사그라든다. 마치 불꽃놀이처럼.


세상이 빨라질수록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은 더욱 빨라지려 한다. 배달도 더 빠르게, 시험도 더 빠르게, 꿈도 더 빠르게. 최단기록과 최단거리를 계산하고 지하철을 탈 때는 어디에서 타야 출구 또는 환승하는 곳과 가장 가까운지를 확인한다. 세상은 참 빠르다. 무엇이 어디에서 어떻게 빨라지는지도 알지 못하는데 세상이 빠르다는 것만 알겠다. 갈수록 속력이 높아지는 자동차에 타서 위태롭게 길을 달리고 있다는 것만 알 수 있다.


열심히 달리는 남들과 똑같은 속도로 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솔직히 내가 빠른지 느린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빨리 가는 것이고 어떻게 해야 느리고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들이 보는 나는 빠른 걸까, 느린 걸까. 애초에 남들이 나에게 빠르다 느리다 말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부모님이나 친구가 "너무 빠르게 가는 거 아니야?"라고 말한다면, 나는 느려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나는 지금 빠르게 달려야 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주변이 느림을 강요한다면 그것 또한 스트레스일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딱히 빠를 이유도, 빠르다고 할 이유도 없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일찍 취업한 것이 전부. 기초 영문법 책을 산지는 수개월이 지났지만 첫 장도 펼쳐보지 않았다. 대학교를 가지 않았으니 학점은행제를 생각하고는 있지만 아직 내가 어떤 학문을 배워야 좋을지 제대로 고민하지도 않았다. 이 정도면 느린 게 아닐까. 빠르게 달리는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내가 원하는 것, 내가 추구하는 것, 내가 잘하는 것을 생각할 시간도 없이 일단 남들 다 한다는 공부부터 하고 남들 다 한다는 대외활동을 배회하며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빠르다'라고 말하는 걸까?


단순히 직장 생활을 일찍 시작했다고 해서 내가 남들보다 빠르게 달리고 있다고 할 이유는 없다. 나와 다르게 대학교 진학을 선택한 친구들은 자신의 꿈을 향해 차근차근 발을 내딛고 있으며, 나는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과 시간을 가졌으니까.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삶에서 살아간다는 사실이 신기하게 느껴지곤 한다.


결국 중심은 나 자신이 된다. 온몸을 스치는 바람이 너무 차갑고 아프다 느껴지면 나는 빠르게 달리고 있을 것이고, 적당히 서늘하고 따스한 바람이 편안하다 느껴질 때 나는 적당히, 또는 느리게 걷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마주친 기다림의 미학


며칠 전 우체국을 갔을 때였다. 우리 회사는 주요 거래처가 대부분 은행인데, 매일 오후 5시가 되면 회사 근처에 있는 우체국으로 가서 각종 서류와 우편물을 발송하는 것이 필수 업무다. 물론 그 업무는 회사에서 가장 막내인 내가 도맡고 있다.


평소처럼 우체국에 들어가 번호표를 뽑았는데, 창구에 처음 보는 사람이 앉아 있었다. 가끔 우체국 창구에서 서류를 접수할 때 '만약 새 직원이 들어오면 우리 회사에서 매일 이 시간마다 온다는 걸 알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는데, 생각뿐이었던 의문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는 날이 온 것이었다.


마침 내가 뽑은 번호표의 번호가 실무 실습 중이라는 신입 사원분의 창구에서 반짝거렸다. 마스크에 얼굴이 가려져 있었지만 대략 30대 중후반으로 보였던 그분은, 내가 커다란 종이봉투 2개에 가득 담아온 상당한 양의 서류를 보고는 조금 당황하는 눈치셨다. 그리고 내가 종종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은 NO였다. 추측이지만 아마 정답이 맞을 것이다. 그분은 내가 우체국 근처에 있는 법인 사무실에서 은행에 관련 서류를 발송하기 위해 온 직원이라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하는 듯 보이셨다.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분은 창구 직원으로서 실무를 이제 막 시작한 탓인지, 다른 직원분들에 비해서 컴퓨터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는 속도가 확연히 느렸다. 내가 우체국에 도착했던 시간이 대략 5시 10분 정도였는데, 우체국에서 나올 때 시간은 30분이 넘어 있었다. 발송하는 우편물 양이 많다는 것을 감안해도, 보통 5분 이내로 작업을 완료하는 다른 직원분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었다.


물론 초조하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얼핏 들은 이야기로는 5시 30분이 넘으면 익일특급으로 배송하는 우편물 배송일이 다음 날로 넘어간다고 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조금 빨리 입력해달라고 말할까?'라고 고민했지만, 앞에서 재촉한다고 해서 그분이 입력하는 속도가 빨라지지는 않을 것 같았기에 그냥 조용히 기다리기로 했다. 설령 우편물이 늦는다고 회사가 망하거나 내 인생이 끝나는 일은 일어나지도 않을 테니까.


안경을 쓰고 나에게 서류 봉투에 적힌 글씨가 무엇인지를 몇 번이나 물어보시면서 열심히 우편물 주소 입력을 완료하신 그분은, 그제야 비로소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그분도 창구 앞에서 한가득 쌓인 서류 봉투를 들고 기다리던 나의 존재를 내심 원망하거나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었으리라.




"오늘 안에 우편물이 다 가나요?"


"네.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늦어서…."




마음속으로 그분을 응원했다. 처음 마주하는 일은 언제나 힘겹고 아픈 법이니까.


그날, 우체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느림의 미학이 무엇인지를 생각했다. 살면서 가장 시간에 많이 쫓기는 곳은 단연 직장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빨리빨리'를 입에 담아야 하는 곳. 그곳에서 매일 쫓기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나의 하루하루가 늘 무언가에 쫓기고 있다. 오로지 한 자리에서 무언가를 기다리며 느린 시간을 온전히 느끼는 것은, 생각보다 좋은 일이었을 수도 있었음을.


'미학(美學)'은 단어만 보면 마치 아름다운 가르침과 아름다운 배움을 통틀어 뜻할 것처럼 보인다. 사전에 등재된 의미는 '자연이나 인생 및 예술 따위에 담긴 미의 본질과 구조를 해명하는 학문'이라고 한다. 이 짧은 문장에 참 어려운 단어가 많이도 있다. 자연, 인생, 예술, 본질, 구조, 해명, 학문. 참 어렵다. 미학이라는 것은 이미 뜻하는 의미에서부터 많은 생각과 고민과 이해와 해석과 번역이 필요한 학문이다.


그러니까 느림의 미학은 '느림의 근본적인 모습, 형태, 장점과 단점을 느끼고 깨달으며 정의하는 행위'라고 말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나는 나의 속도를 알지 못한다


언제쯤이면 비로소 알 수 있을까. 나의 방향과 속력. 내가 휘젓고 다니는 이 길은 정말 맞는 길인지. 맞는 길과 틀린 길은 어떻게 알아야 하는지. 그러나 내가 품고 살아가는 수많은 질문에는 답이 존재하지 않아서, 내가 스스로 헤매고 헤매고 헤메이는 여정을 떠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지키고 싶은 원칙은 있다. 느리게 가고 싶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스팔트로 잘 포장되어 빠르고 곧은 길이 좋은 길이듯이, 나에게는 아스팔트로 다져지지 않아도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좋은 길이 된 것이다. 이왕이면 그 옆에 나뭇잎 무성한 나무도 몇 그루 있으면 좋고. 이름 모를 풀꽃과 하늘을 가르는 새와 나비 몇 마리도 있으면 더 좋겠다. 빠르지 않아도 모든 것이 잘 흘러가는 세상. 그런 평화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길고 긴 여행길에 올랐다. 언젠가 멈춰 서더라도, 내가 달려왔던 길을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느린 것도 괜찮다. 기다리면 된다. 재촉하지 않아도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일이다. 열심히 키보드 자판을 두드리시던 우체국 창구 신입 직원분께 여기에서라도 몰래 감사 인사를 전한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쳤던 그분이 느림의 미학을 일깨워주는 단서를 던져준 셈이다. 아마 그분은 평생 알지 못하시겠지. 하필 그날 그 시간에 나를 창구 고객으로 맞이하신 그분은, 20분이 넘도록 주소를 검색까지 하면서 무사히 우편물 주소를 입력한 어떤 사람이 이런 글을 쓰고 있으리란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나의 속도를 알지 못할 것이다. 내가 달려가는 길의 방향과 속력을 쉽게 깨닫지 못하리라. 빨라지는 것도, 느려지는 것도 어렵다. 의외로 남들 속도에 신경쓰지 않고 느린 여행을 떠나는 건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삶은 어쨌든 계속 걷고 달리고 걷고 달려야 하는, 끝은 알 수 없지만 분명히 끝은 존재하는 트랙이다. 나만의 트랙을 만들고 그 위에서 달리는 것도 온전히 나만이 해야 하는 일이므로.


느리게 걸어도 괜찮아지기로 했다. 나는 느림의 미학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으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Higher, 헤아리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