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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RASA Jul 16. 2019

#46. 관계 속에서 오는 스트레스와 책임감

그러고 보면 나는 참 찌질하다.

어제는 내 생일이었다.

장마철이라 거의 매년 비가 내리는데 어제도 여지없이 비가 내리더라. 심지어 천둥까지 쳐가면서.

(비 내리는 걸 원래 좋아하지 않은데 비 내려서 기분이 더 우울했는지 모르겠다.)


생일날 조조할인으로 보고 싶었던 영화 한 편 보는 것을 시작으로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다. 영화 볼 때 전화 올 때 오는 진동소리와 카톡 진동 때문에 조금 짜증스러웠지만 재밌는 액션 영화 보는 재미에 빠져 전화기를 가볍게 무시했다. 그 정도로 영화는 정말 재밌었다.


사족이 길었다. 글 제목처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속에서 오는 책임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어제 별거 아닌 일로 혼자 상처 받았고 혼자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영화 이야기를 한 건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했지만 하루가 끝날 때쯤에는 많이 우울했다.)




사실 난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이 상당히 강한 편이다. 그래서 약속을 하게 되면 특히 만나기로 한 시간 약속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고서는 거의 다 지키는 편이다. 그리고 약속을 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미리 꼭 이야기해줘서 상대방에게 이해를 구하는 편이다. 시간 약속뿐만 아니라 여러 사람이 그룹으로 모이는 모임에서 해야 하는 과제라든지, 공동의 약속도 거의 지키는 편이다. 그게 기본 도리라고 생각하니까. 그 정도로 나는 약속을 참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


그런데 왜 스트레스받고 상처를 받느냐. 내 기준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혹은 내가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내가 보기에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보면 책임감이 더 강해지고 더 잘해주고 챙기게 된다.


챙긴다는 게 어떤 대단한 것을 챙기는 게 아니라 소소한 것들, 가령 생일이라든지, 취직/이직 축하라든지, 출산, 돌잔치, 명절 등등 이런 경조사를 챙긴다. 그들이 나에게 요구하지 않았는데 나 혼자 내가 좋아서 챙긴다.


올해도 경조사를 나름 챙겼는데 대단한 걸 선물한 건 아니고 케이크나 음료 쿠폰을 준다던지 아니면 외식 상품권을 준다던지 뭐 이런 소소한 것들을 챙겼다. 그런데 어제 생일날 오후가 지나도록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없어서 참 서운했다. 그들에게 선물을 바라고 선물한 게 아니었지만 축하한다는 메시지 조차 없었으니 본전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만약 생일 축하한다고 메시지라도 보내줬더라면 내가 상대방을 생각하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우리 관계가 여전히 끈끈하다거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평소에 자주 연락하고 주기적으로 만났던 사람들한테 아무런 연락이 없으니 마음이 괜히 우울했다.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인 건가 뭐 이런 자존감 낮은 생각들이 날 지배하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이 우울해졌다.


어제 밤늦도록 곰곰이 생각하는 내가 이상했는지 남편이 묻더라. 그래서 솔직하게 이야기했더니 남편이 나에게 말해준 내용이 상당히 충격적이면서 상당히 공감되었다.


충격적이건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음료나 케이크 쿠폰 받는 것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그럼 나도 똑같이 그 사람 생일을 챙겨줘야 하는데 생각처럼 쉽지 않다고. 그리고 그런 곳에 돈 안 쓰는 사람이라면 더 부담되었을 거란다. 그러면서 너 혼자 잘해줘 놓고 상대방에게 기대치를 높게 갖게 되니 그게 상처로 돌아오는 거라고.

굳이 잘해줄 필요도 없고 책임감을 가질 필요 없다고. 관계를 그냥 유지하면 된다고. 그냥 즐기면 되는 거라고.


책임감을 가질 필요도 그리고 챙겨주지 않아도 되는데 혼자 좋아서 잘해주고서 혼자 상처 받은 나 자신을 보니 참 찌질했다. 그랬다. 나는 정말 찌질했다. 그깟 축하한다는 메시지에 목매다니. 해준 게 있으니 당연히 돌아오는 게 있겠거니 미련한 마음을 품었다니. 거기서 오는 기대치가 충족되지 못하니 마음이 우울해지고 찌질해지는 게 당연했다.


어제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 하면서 새삼 깨달았는데 상대방에 대한 기대치가 충족되지 못해서 받은 스트레스를 여러 개 이야기해주더라. (즉 나는 찌질하게 산지 오래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랐다.)

그중 하나가 이혼한 친구한테 잘 살라고 맘대로 돈 줘놓고 열심히 안 살고 탱자탱자 노는 걸 보면서 분노했던 나를 상기시켜줬다. 그 친구가 그 돈을 받고 어디다 어떻게 쓰든 그건 그 친구 마음인데 내가 생각하는 기준대로 살지 못하고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니 돈이 아까웠던 기억이 났다.


이거 말고도 남편이 여러 에피소드를 이야기해줬는데 '그동안 내가 참 찌질했구나' 선물을 주든 돈을 주든 그 뒤로 잊어버려야 하는데 기대치에 어긋나면 실망하고 상처 받는 내 모습을 보면서 참 찌질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천성이 원래 이런 건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에 대한 책임감을 이제 더 이상 갖지 않으려고 한다. (쉽지 않겠지만 좀 나아지기는 하겠지.)

그 책임감 때문에 잘해줬더니 기대치에 충족되지 못해서 오는 스트레스로 우울해지고 찌질해지는 내가 참 못나 보이기도 하고 그동안 경조사비로 쓴 돈도 계산해 보니 어마어마했다.


결정적으로 내가 좋은 의도로 준 선물들이 상대방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니 그 상대방도 나 때문에 스트레스받았을 테고 내 경조사에 원치 않는 돈을 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작용됐을 거란 생각에 오지랖은 이제 그만 떨려고 한다.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부담 주는 선물은 이제 그만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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