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조용히 나를 접어가던 시간들
이 장을 쓰는 일은 유독 어려웠다.
나의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을 다시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어를 고르는 일도 오래 머뭇거렸다.
이 글은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변명을 하기 위한 장이 아니다.
그때의 내가 어떻게 반응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기록이다.
위축
말을 삼키게 된 순간은 아주 일상적인 장면에서 시작되었다.
집안을 정리하는 문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이들 방의 가구 위치, 침대의 배치 같은 이야기였다.
그는 이미 생각을 끝낸 상태였고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내가 조심스럽게 다른 의견을 내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방 사이즈는 재 보고 말하는 거야?”
그 말로 대화는 끝이 났다.
그는 나에게 틀렸다는 말도, 안 된다는 말도 아니었지만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의견을 낼 수 없었다.
설명해 볼 수도 있었고,
다시 말해 볼 수도 있었지만
그 자리는 내 말이 놓일 자리가 아니었다.
위축은 소심함이 아니었다.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험이 반복될 때
몸이 먼저 선택하는 반응이었다.
덜 다치기 위해,
나를 보호하기 위해
조용히 내려오는 방어였다.
눈치
그는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성격인지, 피곤해서인지, 아니면 나와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뜻인지
나는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되었다.
말을 꺼내기 전에 그의 표정과 기분을 먼저 살폈고,
지금은 말하면 안 되겠다고
판단하는 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 나는 조심스럽게 요구했다.
아무 조건 없이 집에 들어와서
“수고했어”라는 말 한마디만 해달라고.
그는 왜 그런 말이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대답 앞에서
나는 더 이상 설명하면 나만 이상해질 것 같았고,
또다시 판단받을 것 같았다.
그 순간부터
나는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라
요구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눈치는 솔직하지 못함이 아니라,
관계를 잃지 않기 위해
말을 조절하는 나만의 언어였다.
죄책감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그의 말이 없을 때, 그의 반응이 차가울 때,
내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나는 자연스럽게
나에게로 질문이 돌아왔다.
‘내가 너무 예민한가?’
‘내가 너무 많은 걸 바라는 건가?’
‘내가 자꾸 애정을 갈구하나?’
그는 내가 그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짜증을 냈다.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묻자
같은 말을 반복했고, 그는 내게 이렇게 물었다.
“내 말이 그렇게 어려워?”
사실 나는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말했다.
“그래, 미안해. 이제 알겠어.”
말을 하면서도 왜 내가 사과하고 있는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이해하지 못한 것보다
그의 짜증이 더 무거웠고,
그 상황을 빨리 끝내고 싶었다.
죄책감은
내가 그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쓸 수 있었던
마지막 방법에 가까웠다.
위축은 말을 줄이게 만들었고,
눈치는 말의 방향을 바꾸게 했으며,
죄책감은 결국 모든 원인을 나에게로 돌리게 만들었다.
이 세 가지는 각각의 성격이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었다.
오래 혼자였던 사람이 관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구조
그 시절 나는 감정이 올라오면 그것을 혼자 처리해야 했다.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이 ‘지금 이 감정들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라는 말을
스스로에게 되뇌며,
감정과 생각이 엉킨 채로 계속 나를 설득하고
다독이고
눌러가며 지내왔다.
그래서 나는
늘 마음이 먼저 무너지고 나서야
겨우 버티는 쪽으로
살아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