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감정은 왜 이렇게 아팠을까

2장. 상처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상처를 혼자 견딘 사람이었다

by 소소한 기록자

상담실에 들은 상처가 많은 사람이라는 말에 곰곰히 생각했다.

사실 나는 작은 말에도 마음이 오래 남았고,

관계 안에서 쉽게 흔들리는 편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최대한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상황을 판단하려 했다.

그래서 감정은 늘 뒤로 밀렸다.

그 감정을 마주하는 일은

지금이 아니라,

내가 조금 여유로워졌을 때의 몫이었다.

그래서 이후 이렇게 감정이 힘들어졌을 때, 나는 내 안에서 문제를 찾아보려 애썼다.

지금 돌아보면,

그건 나에 대한 가장 쉬운 해답을 찾아가려는 것이었다.


결혼 후 나의 이 불안과 애정에 대한 결핍은 어디서 온것일까 이 감정의 물음을 살펴보았다.


이제 나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야 한다. 거기가 시작이었다.

나의 엄마는 나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야기 했다. 그리고 나는 그 감정을 받아주고 위로하고 어찌 처리해 주어야 하는지 고민했다.

집안의 일들,

내가 어디까지 알아야 하는지도 가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내가 해결할 수도 없는 이야기, 그 뒤에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도 모를 이야기들이 있었다.

겉으로는 모르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늘 불편했다.

나는 차라리 “이건 어른의 이야기야 넌 몰라도 돼!”라고 이야기 해 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그리고 부모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맡겼다.

나는 그것을 신뢰라고 믿으며 살았다.

그래야만 살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내가 학원을 결정했고, 일정을 짰고, 스스로를 조여 가며 살아갔다.

그건 부모가 나를 믿어서라고 생각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나에 대한 신뢰라고,

나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

내가 괜찮다는 뜻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신뢰와 방관은 몸에 남는 감각이 다르다는 것을.

신뢰는 필요할 때 옆에 와 있고, 넘어질 때 “괜찮아?”라고 묻고, 판단이 헷갈릴 때 “같이 보자”고 말해준다.

반면 방관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하고, 내가 잘해내는 동안만 안전하다.

흔들리면, 혼자 버텨야 한다.

나는 이 차이를 말로 알기 전에 몸으로 먼저 배웠다.

그래서 괜찮을 때는 아무 문제 없었고, 힘들 때 나는 늘 혼자라 느꼈다.


이 이야기는 누군가를 탓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라,

아이였던 내가 어떻게 세상을 해석하며

살아남았는지를 돌아보는 기록이다.


그래서 나는 잘해야 했다.

문제없는 아이처럼 보여야 했고,

혼자서도 잘 해내는 아이여야 했다.

도움이 필요 없는 사람,

기대지 않는 사람,

자랑거리가 되는 사람.

정작 내 고민은 누구에게 말해야 하는지 몰랐고,

어떤 어른이 나를 안전하게 해줄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혼자 판단했고, 내 판단이 맞는지 늘 의심했다.

그 의심을 대신 확인해 줄 “괜찮다”고 말해줄 어른을 나는 오래 마음속에 필요로 했다.

그 마음은 성인이 된 나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쳤다.


남편을 만났을 때 내게 가장 큰 감정은 안정감이었다. 나는 이 안정감에 크게 매료되었다.

이 남자는 말이 많은 사람도, 섬세한 사람도 아니었다.

공감 능력이 조금 부족하다는 것도 느꼈다.

하지만 그건 살면서 따라올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사람은 완벽하지 않으니까.


그 옆에 있으면

내가 조금 내려놔도 될 것 같았다.

더 이상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될 것 같았고,

어른 옆에 서 있어도 될 것 같았다.

혼자 버티지 않아도 되는 구조 안으로 옮겨가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서 과한 애정을 요구했던 것이 아니었다.

모든 감정을 처리해주길 바랐던 것도 아니다.

다만

“이제 내가 혼자 안 해도 되는 사람”이

되어주길 바랐을 뿐이다.

그건 과한 요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그 자리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나는, 내 마음과 내 상태를 설명할 언어를 아직 제대로 갖고 있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이해하려 애썼고, 기다렸고,

스스로를 설득했고, 혼자 채우려 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고 느꼈고, 결국 버티던 힘이 빠져버렸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내가 남편에게 기대했던 것은

사랑만이 아니라,

내 안의 오래된 불안을

대신 처리해 줄 어른의 역할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지금 내가 하는 말은

후회가 아니다.


나는 상처가 많은 사람이 아니었다.

상처를 혼자 견디는 시간이

너무 길어져 버린 사람이었다.

작가의 이전글2부. 감정은 왜 이렇게 아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