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감정은 왜 이렇게 아팠을까

1장. 나는 왜 이렇게 사람에게 매달렸을까?

by 소소한 기록자

나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이성적이라고 해서 감정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민한 부분도 있었고 다양한 감정도 있었지만, 그 감정이 나를 휘두르게 두지는 않았다.
상황을 보고 판단하고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감정을 빠르게 정리해 문제가 되지 않도록 일단 밀어두는 쪽에 가까웠다.
그 방식의 삶은 오랫동안 나를 지켜주었고, 관계 안에서는 크게 갈등을 만들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성이
감정을 돌보는 영역까지 대신하고 있을 때였다.

깊은 터널 속에서, 아픈 마음을 설명할 언어 없이 혼자 삭히고 견디는 나를 보며
나는 이 감정이 왜 이렇게 아픈지, 그 이유를 내 안에서 찾고자 했다.


내가 사람에게 집착하는 사람이었던가?
유독 사랑이 고팠던 사람이었나?
내가 유독 예민해서 그런 거였나?


하지만 시간이 지나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문제는 감정이 많아서가 아니라,
감정을 혼자 처리해 온 시간에 있었다는 것을.


나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남편의 늦은 귀가, 부족한 어른과의 대화, 아이의 독박육아 모두
내가 감당할 수 있다는 책임과 의지가 있었다. 해야 했다.
그래서 사람에게 매달리고 싶지 않았다.
나를 의존적이고 약하며 스스로 서지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매달리지 않을 거라고, 내 스스로 더 애쓰면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애씀은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사랑의 방법이라기보다는
오래 유지해 온 삶의 방식에 가까웠다.

나는 관계 안에서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정리하고 넘기는 쪽을 선택해왔다.
기대가 어긋나도, 마음이 다쳐도 그 감정을 꺼내어 말하기보다 이성으로 판단하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쪽이 더 익숙했다.
그 방식은 나를 무너지지 않는 사람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감정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설명되지 못한 감정은
처리되지 않은 채 쌓였고,
그 무게를 혼자 감당하는 시간은 점점 길어졌다.

나는 나를 설명할 언어를 잃어갔고, 점점 내 목소리를 내기가 힘들어졌다.

어디선가 그 무게를 내려놓고 싶다는 마음이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생겨나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매달렸던 것이 아니라, 나를 지탱해 줄 감정의 지지점을 뒤늦게 찾고 있었던 것에 가까웠다.


남편과의 관계 안에서 위축되고,
남편의 말 한마디에 반응을 살피고,
기다리던 대답이 돌아오지 않을 때

그 이유를 나에게서 먼저 찾던 태도는 나의 성격이라기보다 오래 반복해 온 습관에 가까웠다.

감정을 드러내기보다 관리해 온 사람에게 그 습관은 한동안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감정이 충분히 다뤄지지 않은 채 오래 방치되었을 때,
이성은 더 이상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없게 된다.


남편은 변하지 않았는데 내가 무너진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는 이전과 같은 자리에 있었고, 나는 더 이상 같은 방식으로 나 자신을 버텨낼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상담실에서 처음 들은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신은 너무 오래 혼자였습니다.”
“상처가 너무 많아요.”

그 문장은 위로도, 비난도 아니었다.
상황을 설명하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나의 매달림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라 오래도록 이성으로 감정을 대신 돌보아 온 사람이
마침내 보이게 된 반응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감정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아픈지를 따지기보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를
차분히 돌아보기로 했다.

작가의 이전글1. 이성적인 여자가 무너질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