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꾸없는 행정을 위하여
이번엔 둘째였다.
나는 고등학교 학생부에 근무를 하며 '비담임'의 영광을 누리며 육아시간을 쓰며 워킹맘 생활을 하고 있었다.
수요일은 아이들이 6교시까지 있지만, 매달 1번 교직원회의가 7교시에 있기 때문에(정확히는 교직원 전달이다. 회의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음) 어린이집에 둘째를 좀 더 오래 맡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때, 어린이집에서 전화가 왔다.(불안함의 엄습...)
아니나 다를까, 둘째가 넘어져서 모서리에 찍혔는데, 눈썹과 눈 사이에 딱 찍혀서 피부가 찢어졌다고 한다.
성형외과 가서 꿰매야 할 것 같다고...
어차피 교직원 전달이니까 교감선생님께 죄송하다 말씀드리고 조퇴 쓰고 가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감선생님께서 난감해하신다. 오늘은 회의에 참석하는 인원만큼 간식을 준비하셨다고 한다.
이미 결재가 끝났고 교직원수만큼 샀기 때문에 회의에 빠지는 건 안된다고 하신다.
네?
다른 것도 아니고, 그 간식 때문에
아이가 눈 위를 꿰매야 하는 상황에서
메시지 전달로도 충분할 그 회의에 들어가야 한다고요?
만약 내가 수업이 있었다면, 대체불가 내 수업이니 어린이집 원장선생님께 말씀드리고 1시간 후에 가겠다고 했겠지만,
교직원 회의에서, 내가 부장도 아니고, 그냥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건데, 단지 간식 수만큼 머리수를 채워야 해서 회의에 있어야 한다고?
나는 1. 어이없음. 2. 울분에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교무부장님께서, 그럼 조퇴 쓰지 말고, 사고 안 나게 조심히 미인정 무단조퇴(?)를 권유하신다.
암튼 조퇴했다는 기록이 남으면 이미 결재가 끝난 간식에 문제가 생기니, 그냥 조심히 조용히 나가란다.
감사하다고 머리를 조아리며 나가는 내 뒤통수에 교감선생님은 '사고 안 나게 조심해!!!!' 하고 외치신다.
휴..
담임선생님과 원장선생님은 이미 성형외과에 도착해서 둘째는 이미 수술대(?)에 올라와 있었다.
안 그래도 감각이 예민하고 가만히 못 있는 둘째는 나를 보더니 더 난리였다. 서러움이 넘쳐났는지.
의사 선생님은 아주 훌륭한 솜씨로 후다닥 상처부위를 봉합했다.
생각보다 상처부위는 크지 않았지만, 나는 이런 상처를 보면,
드레싱 때문에 며칠을 병원에 와야 한다는, 또 그것은 온전히 내 몫이고, 동시에 첫째는 방치될 거라는 불안감에 어마어마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또 눈물을 흘리며 둘째를 차에 태워 집으로 돌아와, 마음을 추스르고, 태권도를 다녀온 첫째를 환하게 맞이하고,
씻기고, 밥을 먹이고, 오후일정을 보내면서,
나는 문득,
아니 눈을 다쳤으면 어쩔뻔했냐고, 눈 위를 다쳤으니 천만다행 아니냐!! 그깟 드레싱 10번도 갈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아이들이 다쳤을 때 항상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은 역시 ‘그만하니 다행이다’라는 자세인 것 같다.
한편, 낮에 교무실에서의 내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엄연히 직장인데, 나는 직장인인데, 더군다나 공무원이지 않은가. 빵꾸 없는(?) 행정이 너무나 중요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사유로 행정에 빵꾸를 내겠다고 하는 것은 관리자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다친 것은 딱한 일이지만, 그것은 나를 대신할 가족이 없는 나의 딱한 사정일 뿐.
그럼에도 무단조퇴 허락을 내주신 교무부장님과 교감선생님, 그리고 내 뒤통수에 ‘사고 안 나게 조심해!!!’라고 소리치신 교감선생님은,
내가 사고 나면 결국 무단조퇴한 공무원으로 징계를 내가 먹기 때문이기에, 나를 챙겨준 따뜻한 마음(?)이 근간에 있었다고 생각하니, 그 또한 감사한 일이었다.
나는 매번 내 주변에 든든한 육아지원군이 있는 동료교사들을 보며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지원군이라고는 딱 하나 있는 남편조차도, 몇 년은 주말부부였다가, 다시 합쳤는데 사정은 이른 출근에 늦은 퇴근의 하숙생 수준.
그러니 육아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 아이를 둘씩이나,
그것도 내가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장애까지 가지고 있는 아이를 낳아놓고선,
일도 하겠다 하고,
아이 치료도 하겠다 하고,
또 이렇게 때때로 아이가 다치기라도 하면 “네! 지금 출동합니다!”하고 직장을 박차고 나가면서, 부장님께 교감님께 머리를 조아리지며
혼자 아등바등하는 것에 진절머리가 날 때도 있지만,
뭐, 이 또한 지나가지 않겠는가. 평생 이렇게 살진 않겠지?
그런 마음으로, 또 하루 버티며 사는 거지 뭐.
나는 그저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