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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 Jul 08. 2024

강박증이 생긴 첫째에게

전염될 것 같다며 소리치며 엉엉 울었던 못난 어미가 반성하며 쓰는 글  

한 달 전쯤이었을까.

갑자기 첫째가 나를 조심스레 부르더니, 친구들과 있을 때 욕을 했다고 고백한 것에서 시작되었다.

나는 그때 첫째가, 착한 마음을 가졌구나 생각했다.

그때부터 시작된 고해성사는, 

 '2년 전에 친구 집에 갔다가 포켓몬 카드를 한 장 훔쳤다'

'오늘 실수로 친구 꼬추를 쳤다'

'오늘 선생님 물건을 실수로 만졌다'

'길에서 더러운 것을 밟았다' 

등등 그냥 지나가도 아무 이상 없을 것 같은 일들의 끝도 없는 고해성사로 이어졌다.

갑자기 메디키넷(adhd약)을 단약 해서일까.

의학적 상식도 없는 주제에 아이에게 섣불리 adhd약을 먹여놓고, 효과 없는 것 같다고 단약 해놓고선 부작용으로 아이에게 강박이 생긴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며 집 근처 정신과를 예약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아이가 불안이 있다고 하셨다.

adhd 약과 무관하게 다른 약을 쓰신다고 했다.

아빌리파이 1mg을 처방받았다.

찾아보니 불안 강박을 잡는 약이고, 어린아이들에게도 쓰는 비교적 안전하고 순한(?) 약이라고 했다




물론 죄책감과 끊임없는 고해성사로 가장 힘든 것은 아이 본인이겠지만, 그걸 온전히 받아줘야 하는 엄마인 나도 한계심이 극에 달했다. 첫째가 나가서 논다고 해놓고선 20분 간격으로 전화가 온다. '엄마 나 뭐 더러운 거 밟은 것 같아.' '엄마 나 친구 물건을 실수로 만졌어' 등등... 아이는 그저 나에게서 '응~ 괜찮아. 앞으론 그러지 마.'정도의 말을 듣고자 한 것뿐이다. 내가 '응 괜찮아' 하면 '응 더 놀다 갈게'하고 전화를 끊는다. '그런 것까지 얘기하지 않아도 돼'라는 말은 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저녁에 자기 전에 폭풍 고해성사를 또 해댄다. '오늘 어떤 나쁜 생각이 들어서 죄책감이 느껴졌어.' '오늘 성적인 생각이 나서 죄책감이 들었어.'등등... 


발달이 느린 둘째, 한 달 남짓 남은 나의 복직, 그리고 육아에 도움이 전혀 되지 않는 남편. 나는 또 궁지에 몰린 것 같았다. 나에게 또 시커먼 불안이 엄습해 왔다. 어지럽고 두통이 지속되었다. 잠잠했던 첫째의 강박증으로 나는 또 불행해질까. 나는 또 캄캄한 밤길에서 혼자 외나무다리를 아슬아슬하게 건너고 있는 사람처럼 두려움에 떨게 될까. 나에게 고해성사를 쏟아낸 첫째를 바라보는 내 경멸의 눈빛을 나는 스스로 캐치했다. 아이의 마음이 불안한 것보다 내가 더 불안해지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다. 



내가 스스로 단단한 엄마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 것은 그런 구렁텅이 속으로 더 깊이 내 발로 걸어 들어가기 전에 내 상황에 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며, 내가 마치 누군가에게 조언을 해준다는 상황이라 생각해 보고, 이 상황에서 어떻게 조언을 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이의 불안으로 더 불안한 엄마가 되었을 때의 파국을 생각하며, 어떻게 하면 더 현명하게 이 상황을 파헤쳐 나갈지, 진지하게 고민한다. 더 이상 주변의 탓을 하지 않으며, 혹은 지나치게 높은 기준으로 아이를 옥죄어서 지금의 강박이 결과로 나타났다는 과거의 나 자신을 비난하지 않으며, 그냥 현재를, 그리고 가까운 미래만을 바라보며, 이 상황이 자연스럽게 지나갈 방법을 생각해 본다. 


오늘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의 유튜브를 몇 개 보았다. 공통적인 얘기를 했다. 약물치료와 인지치료가 병행되었을 때 빠르게 치료가 된다는 것이다. 약물치료는 시작했으니, 이미 절반은 성공이다. 둘째 센터 라이딩도 힘든 상황에서 인지치료는 내 선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본다.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누구나 엉뚱하고 변태적인 생각도 한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이다. 생각은 지나간다. 그러니 아무 문제도 아니다.' 라며 다독이기. 그걸 백번이고 만 번이고 말해주기. 그런 건 어렵지 않잖아. 그저 필요한 것은 내 인내심일 뿐. 아들이 학교를 안 가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담임선생님께 몹쓸 욕설을 한 것도 아니고, 아이는 마냥 착한 아이인데, 그저 섬세하여 죄책감이 많이 드는 시기에 잠깐 들어선 것뿐인데, 그걸로 내가 불행해질 필요는 없다. 


우리는 똑같이 괜찮은 하루를 살아간다. 우리는 똑같이 하루에 주어진 일을 해내고, 하고 싶은 일을 곁들여한다. 우리는 똑같이 나 자신을 사랑하며 더 나은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할 뿐이다. 정신과 약을 먹는 것은 감기약을 먹는 것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그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보조제일뿐. 우리 아이는 잘 클 것이다. 우리 아이는 건강한 정신과 건강한 신체를 가진 청년으로 자라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아이의 말 몇 마디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된다. 그뿐이다. 


그러니 힘을 내자. 

얼마 전에 스쳐 지나가듯 본, 최화정 씨의 어머니가 하셨다는 말씀,




허리를 쫙 펴고, 입고리를 쫙 올리면 세상에 못 할 일은 없다. 




오늘도 허리를 쫙 펴고, 입고리를 쫙 올린 채, 하루를 잘 보내고 안식처인 집으로 돌아올 아이를 맞이하자. 아이의 강박은 분명, 자연스럽게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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