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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선희 Jul 03. 2024

콩팔칠팔하는 칠팔 월

1번에 5, 2번에 3… 오지선다형 늪에 빠져, 아이들 문제집 채점해 주고, 모르는 문제 질문하면 대답해 주고, 스스로 잘 고쳐오면, 틀린 표시 위에 세모 모양 만들어 주고. 이렇게 몇 주를 보냈다. 그렇게 시험 대비 수업을 하다 보니, 어느새 7월이 되었다. 2024년의 상반기가 다 지나가 버린 것이다. 원래 의미 부여 하길 좋아하는데, 이번 상반기 마지막 날은 의미 부여는커녕 날짜를 확인할 시간도 없었다. 연초에 세웠던 계획이 어느 정도 달성되었는지 돌아보기도 하고, 달성되지 않았다면 나에게 부족했던 것은 무엇일까 생각도 해 보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데, 이렇게 휙 책장 넘기듯이 하반기로 들어와 버렸다.


근데 사실, 조금 좋다. 6월의 마지막 날에 여유가 많아서, 나의 지난 상반기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게 사실은 두렵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나간 과거를 들춰 봐서 뭐하나 싶고, 반성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는 우리 청소년들 덕분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시간을 받아들이게 되었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 7월과 8월을 보내게 될 텐데,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될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아가 보려 한다. 물론 뭐 대단한 계획을 세우지는 않을 거다. 그저 아무 말이나 막, 되는 대로 막, 아무거나 막 하면서 보내 볼 작정이다. 날도 더운데, 머리 싸매고 고민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머리 싸매면 땀띠나 나지. 우리말에는 ‘콩팔칠팔’이라는 말이 있다. ‘갈피를 잡을 수 없도록 마구 지껄이는 모양’을 ‘콩팔칠팔’이라고 한다. 칠 월과 팔 월에 딱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7월과 8월은, 무척 더워 축축 처지는 날들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뜨겁게 놀 수 있는, 휴가도 많이 가는 그런 날들이 펼쳐지기도 한다. 큰맘 먹고 여행 가서, 평소에 안 하던 것들도 하고, 이왕 간 여행지에서는 씀씀이도 좀 더 헤퍼진다. 앞뒤 계산하고 하나하나 신중하게 결정하는 일보다 무턱대고 했다가 실수도 하고 그 실수에 웃고 떠들며 실수를 추억으로 만들어 놓는 날들이 많기도 하다. 이럴 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콩팔칠팔하면서 사는 거다. 가끔은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말에서 멋진 일들이 생겨나기도 하니, 이 말 저 말 마구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말인데, 올해 비가 많이 온다고 하던데, 작년만큼 많이 올까 싶다. 작년에 비가 엄청 많이 오긴 했었는데… 그러고 보니 8월에 이사 안 가고, 전세 계약을 연장하길 잘한 것 같다. 8월에 이사가려고 했던 아파트는 구축이었는데, 거긴 지하주차장이 없다. 그러면 비 올 때 우산 쓰고 나가서 차 탈 때 비 뚝뚝 떨어지는 우산을 차에 다시 넣으면서 내 바지 다 젖고 그랬겠지? 비가 이렇게 오니까 야구도 안 하고 저녁 시간이 너무 심심하다. 할 일 하면서 BGM처럼 야구 틀어 놓는 게 참 좋았는데… 그리고 롯데가 요즘 꽤 잘 나가고 있었는데, 비가 와서 흐름이 끊긴 것 같다. 일이 잘될 때 쭉 그 힘을 받아야 하는데… 힘을 내려면 우선 일이 잘되어야 하는 건가 보다. 일이 잘되려면 힘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힘도 없는데 어떻게 일을 잘해내지? 그것도 약간 운이 필요한 건가? 난 운이 참 없는데… 좋은 꿈을 꿨다고 생각해서 로또를 사도 뭐 그렇다 할 성과가 없다. 로또 당첨자도 누군가 힘 있는 자가 내정되어 있는 거 아닐까? 그러고 보니, 힘이 있는 자가 일이 계속 잘되는 것일 수도 있겠다. 힘이 있다면 이미 일이 잘되고 있는 건데, 뭘 더 잘되려고 로또까지 탐을 내지? 욕심이 정말 많네. 다른 건 모르겠고, 우리 애들이 국어 시험 다 잘 봤으면 좋겠다. 그건 좀 욕심나네. 학생 모두를 100점 맞게 만든 ‘동네 고수’라고 소문나는 거. 교과서 펴고 이거 이거 이거 이렇게 찍어 주면 시험 문제에 고대로 다 나오는 그런 사람이, 그런 탁월한 사람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에게 카톡을 보냈다. “○○아, 시험 잘 봤어? 몇 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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