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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연 Mar 09. 2020

그곳의 기억

교토에 가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이 켄쿤신사라면, 둘째날 아침 일어나서 향하는 곳들이 있었다. 느긋하게 여행을 시작하는 나는 오후가 되서야 이 곳에 도착했고 한참을 돌아다니다보면 어느새 노을이 예쁘게 지고 있었다. 그 예쁜 태양 사이로 빛나던, 고요하고 아름다운 곳들은 내가 살아가는 데 정말 큰 힘을 주는 기억으로 남곤 했다. 오늘은 교토의 산죠역 동쪽 지역의 추억을 얘기하고 싶다.




가장 먼저, 얘기하고 싶은 곳은 바로 아와타신사(粟田神社)다.



천년쯤 전에 지어졌다고 전해 내려오는 이 신사는 산죠역에서 이십 분 정도 걸어올라 가면 있는 신사다. 주택과 가게들 사이로 불쑥 나타나는 토리이(신사 앞에 있는 문)를 따라 또다시 오르막길을 올라가면, 고요하고 예쁜 자그마한 신사가 나타난다.


세번째 사진을 확대해서 보면, 헤이안 신사의 커다란 토리이가 보인다.


사람이 별로 찾지 않는 곳이라, 언제 가도 조용한 이 곳을 찾게 된 것 또한 일본도 때문이었다. 아와타(粟田)라는 이 신사의 이름은 일본도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유명한, 아와타구치(粟田口) 도파의 이름과 비슷하다. 사실 그건 이 지명의 이름이 아와타구치였기 때문인데, 이곳에서 살았던 아와타구치 요시미츠(粟田口吉光)는 일본도의 삼대 도공이라고 불릴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다. 또한, 산죠 무네치카(三条宗近)라는 헤이안 시대의 가장 유명한 도공 또한, 아까 말한 산죠역라는 지역명이 이름에 남아있듯, 이 지역에 살아서 활동하던 사람이었다.


그 둘이 이 신사와 어떻게 연관되어있냐 하면, 두 도공을 모신 신사가, 아와타신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카지신사(鍛冶神社)라고 불리는 이 신사는 두 도공을 모신 신사로, 지금도 많은 일본도 마니아들이 다니는 곳이다. 오른쪽 사진의 돌판과 아래에 보이는 초승달은 산죠 무네치카가 만든 가장 유명한 일본도인 미카즈키 무네치카(三日月宗近:미카즈키란 일본어로 초승달을 의미한다. 이 검의 날 부분이 초승달 같은 문양이라는 이유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의 이야기를 전한다.



이 오래된 신사의 하늘은 내가 이 곳에 갈 때마다 본 것이었다. 사실 일본도와 관련이 있어서 왔다고는 한들, 매일 일본도 생각만 할 리는 없었다. 어느새 이곳은 처음에 온 이유와 상관없이 내가 늘 들르는 곳이 되었고, 내가 신에게 여러 가지 고민이나 희망을 얘기하다가 가는 공간이 되었다. 늘 조용한 이 곳에서 무엇을 특별히 한 기억은 없다. 그저 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벤치에 앉아 한참을 쉬면서 생각했다. 다음에는 어딜 갈까 고민하기도 했고, 미래에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한참을 그렇게 고민하다 보면 어느새 폐장 시간이 다 되어가, 다시 길을 나섰다.



노을이 지는 이 세상, 내가 내려감으로 인해 신사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문을 닫고 정리를 시작하신다. 이 공간에 좀 더 있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한참을, 나뭇잎 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내려갔다.



이 아름다운 아와타신사에서 관리하는 또 다른 신사는, 바로 이 신사의 길 건너편의 아주 조그만 신사다.



이 신사를 발견하게 된 것 또한 굉장히 우연이었다. 오랜만에 교토에 와서 아와타신사를 찾던 나는, 실수로 반대편 길을 걷고 있었다. 잘못 왔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옆에 아주 작은 신사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홀린 듯, 그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즈치이나리신사(合槌稲荷神社). 위에 언급한 산죠 무네치카라는 도공이 이곳에서 기도를 하다가, 이곳에서 모시는 여우와 함께 코기츠네마루(小狐丸)라는 도검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신사다. 이 작은 신사는 주택가의 한가운데에 있어서, 방해되지 않도록 조용히 들어가야 한다.



이 조그만 신사는 내가 교토에서 발견한 나만의 선물과 같은 공간이 되었다. 누군가를 데려갈 때마다 이곳에 데려가 너무 사랑스럽지 않냐고 속삭였다. 내가 처음 이 곳을 만났을 때의 행복을 누군가에게도 선물해주고 싶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좋은 선물이 되기를.





아와타신사를 들르고 나면 꼭 가는 곳이 있다. 바로 누룩 전문점인 오사카야코우지점(大阪屋こうじ店)이다.



가게 이름에 오사카가 들어있지만, 사실 오사카에는 없고 교토의 츠루마이라는 곳에 본점이 있는 가게다. 이 곳은 누룩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인데, 사실 내가 누룩을 살 일은 없고, 일본식 식혜를 먹으러 매번 들르는 곳이다.



사실 난 일본식 식혜는 너무 달아서 싫어하는 편인데, 이곳에서 마신 식혜는 정말로 맛있었다. 특히 매번 시키는 식혜 라테는 식혜에 우유를 타서 딱 알맞게 단 맛이 올라오며, 함께 씹히는 곡물이 굉장히 맛있다. 그리고 이 작은 가게에 있는 일본식 정원은, 지친 여행자를 위로해주는 것만 같다.


이 곳에서 계산을 하고 나올 때는 꼭 おおきに。라고 교토 사투리로 인사를 해주신다. 그게 너무 어색한데도, 교토에 왔구나 싶어서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나도 언젠간 말해보고 싶지만, 도쿄에서 사는 사람에게 이 사투리는 너무 어색하겠지.





먹는 얘기가 나왔으니 교토에서 가장 추천하는 음식점을 얘기하고 싶다. 아와타신사에서 가까워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쥰세이(順正)라는 탕두부 집이다. 교토의 유명한 음식을 얘기하자면 빠지지 않고 나오는 음식이 탕두부인데,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곳 중 한 곳이다.



식사를 하기 위해서 들어가는 건물까지 이어진 정원은 걸을 때마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숨 막히게 아름답다. 처음 이곳에 온 것은 학생 때였는데, 그때 친구와 함께 어떻게 이렇게 예쁘냐고 호들갑을 떨었던 기억이 있다. 이 아름다운 곳을 지나 식사를 하러 들어오면 또다시 말도 안 되는 풍경이 펼쳐진다.



최근에는 엄마와 함께 갔는데, 그때는 연못이 보이는 자리에 앉아 한참을 밖을 내다봤다. 또한 천장에 그려진 그림들 또한 너무 예뻐서 하나씩 뜯어보곤 했다. 아마 누군가는 이 곳에서 상견례 같은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것 같다. 내가 갔을 때도 정장을 차려입고 개인실에서 식사를 하는 가족을 봤으니까. 이런 곳에서 상견례나 결납(일본어식 결혼 용어로, 약혼과 비슷한 의미를 지닌다)을 한다면 그것도 꽤 분위기가 좋을 것 같다.



음식 얘기를 하자면, 이 곳은 내가 일본에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곳이다.



이 사진은 처음 친구와 함께 먹었던 약 3만 원쯤 하는 탕두부 정식인데, 정말 너무 맛있어서 둘 다 여행 내내 탕두부 한 번만 더 먹고 싶다는 얘기만 했었다. 나는 사실 두부를 싫어하는데, 이날은 정말 모든 음식을 싹싹 긁어먹었다. 교토에서 먹는 탕두부는 다 이런 건가 싶어 이틀 뒤에 다른 탕두부 집에 갔는데 맛이 전혀 달라서 둘 다 실망했던 기억이 있다. 그 정도로 이곳에서 먹은 탕두부는 정말 맛있었다.


최근에 갔을 때는 카이세키 요리 정식을 예약해서 갔는데, 덕분에 더 예쁜 건물에서, 특별히 마련된 좌석에서 더 극진한 서비스를 받으면서 먹은 것은 좋았지만, 처음 이곳 음식을 먹었을 때 정도의 충격적으로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혹시 누군가가 이 곳을 가게 된다면, 정원이 보이는 조용한 건물에서 격식 차린 식사를 하고 싶은 게 아닌 이상, 위에 올린 탕두부 정식을 먹는 것을 추천한다. 



하지만 엄마와 카이세키 요리를 먹은 것은 정말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예쁜 건물에서, 가장 좋은 서비스를 받으며, 계속 나오는 특이한 음식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며 오랫동안 식사를 한 것은 즐거운 추억이 되어 남았다.






산죠역을 근처를 얘기하다 보면 당연히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헤이안 신궁이다.



이 유명하고 커다란 신사는, 여러 번 들렀지만, 사실 내게 크게 의미가 남은 곳은 아니었다. 특별한 기억이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작년 가을, 나는 이 곳에서의 기억이 하나 생겼다.



다른 사람들은 그날 일을 어떻게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일을 하고 있었는데, 동료가 "교토 애니메이션이 불에 탔대"하고 말을 해왔다. 놀라서 뉴스를 켰는데 불에 탄 건물 사진이 나왔다. 그리고 나온 희생자 수. 일본에서 전쟁 이후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테러 사건이었다.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는 건 여러 번 언급했으니, 조금 더 얘기하자면, 나는 교토 애니메이션이 만드는 프리라는 작품을 좋아했었다. 그 외의 다른 작품도 좋아했지만, 하필 프리를 언급하고 싶은 건, 교토 애니메이션이 불탄 그 시기에 프리 극장판을 상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건이 있던 뒤에 극장에서 프리를 여러 번 봤고, 볼 때마다 울었다. 하필 이 극장판이 말하고자 하는 건 '꿈'과 '미래'에 대한 얘기였고, 모든 제작진이 프리라는 작품에 얼마나 꿈과 희망을 걸었는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프리는 교토 애니메이션의 여성 스태프진이 모두 모여 만든, 처음으로 여성 시청자를 대상으로 만든 작품이었다. 수많은 희생자들 중에서는 프리 제작진이 많았다. 나는 그분들의 꿈이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슬펐고, 아팠다. 극장에서 프리 극장판을 보고, 교토 애니메이션을 위해 여러 곳에서 예전 작품들을 재상영해주는 것을 보러 다녔다. 다음 작품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슬픔에 매번 울면서 극장을 나왔다.



2019년 11월 10일, 교토 애니메이션의 방화 사건 이후로 처음으로 했던 이벤트인,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열린 곳은 헤이안 신궁 바로 옆의 롬 시어터 교토였다. 이곳을 가기 위해 당일치기로 신칸센을 타고 온 나는, 급하게 내린 택시에서 이곳이 헤이안 신궁 옆이라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교토에 올 때마다 지나온 이 곳을 오늘은 다른 의미로 왔다는 것이 이상한 기분이었다.



극장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휴지를 손에 쥐고 있었다. 모두 한마음이었겠지. 나 또한 휴지를 손에 쥐고서 오케스트라의 시작을 기다렸다.


콘서트는 정말 즐거웠고 행복했고, 사회를 맡은 주인공의 성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으며 콘서트를 이끌어갔다. 중간중간 눈물을 참지 못하는 사람들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나 또한 휴지가 모자랄 정도로 펑펑 울면서도 이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했다.


맨 마지막, 공연이 다 끝난 뒤에 주인공 성우가 나와서 편지를 읊었다.


"우리는 다음이 있을 것을 믿습니다"라는 프리 제작진의 편지에 극장 전체가 오열했다. 주인공 성우는 울지 않으려 애쓰며, "저는 다음 작품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정말로 기뻤어요!" 하고 웃었다. 희생자분들의 꿈과 희망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이어질 거라는 그 메시지가, 정말 행복했다. 





교토 여행을 얘기하다가 갑작스럽게 교토 애니메이션 얘기를 꺼낸 것은, 이것 또한 내 기억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나는 헤이안 신궁을 갈 때마다 콘서트의 기억을 떠올리고 울지도 모른다. 또한 희생자분들이 살아온 교토라는 이 공간을 기억하는 것 또한 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교토를 사랑한다. 그것은 단순히 한 지역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서, 이 곳에서의 추억을 사랑하고, 이 곳에서의 만남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은 우연 속에서 겹친 그 운명적인 순간들이 날 행복하게 했고, 미래에 살아갈 힘을 주었다. 그것은 아마 그분들께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생각한다. 교토 애니메이션에서 만든 작품들이 내게 주었던 행복과 꿈과 희망을 기억한다. 앞으로도 이어질 희생자분들의 꿈을 나 또한 함께 꾸고 싶다.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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