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죠역에서 동쪽으로 가면 헤이안신궁 같은 역사적인 절과 신사들이 가득하지만, 산죠대교를 건너 서쪽으로 오면 교토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 시작된다.
누군가는 가모강을 직접 보면 실망한다고 하지만, 나는 이 강을 건널 때 늘 기분이 좋았다. 한강 주변처럼 곡예를 선보이는 사람, 연주를 하는 사람,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어느 날은 여러 악기를 쥐고 합주하는 학생들을 보기도 했다.
산죠대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바로 스타벅스일 것이다.
외견부터 예쁜 이 건물은 자리잡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번 자리를 잡고 앉아 귀에 이어폰을 끼고 밖을 내다보면 여유로워진다. 이 날도 노을이 완전히 질 때까지 멍하니 밖을 쳐다봤던 것 같다.
산죠대교를 건너 이어지는 산죠거리와 카와라마치는 교토의 가장 큰 번화가지만, 곳곳에 역사적 유적들이 숨겨져 있다. 사실 그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산죠 대교가 아주 오래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곳이 교토의 중심지였고 동시에 처형장이기도 했다는 이유다. 일본 역사에 조금이라도 흥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 곳에서 죽은 몇 명의 사람을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산죠대교를 건너자마자 보이는 곳은 바로 이 곳. 서천사(일본어로는 즈이센지)다.
이 날도 이곳을 찾아온 것은 아니고 지나가다 문화재 같은 표식이 있길래 들여다봤다가 놀라서 사진을 찍은 것이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카이자, 양자였던 히데츠구의 무덤이다. 히데츠구 또한 산죠 대교에서 처형당했었다. 전국시대의 역사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히데츠구 본인과 그 주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것을 알 것이다. 나 또한 그것이 떠올라 한참을 주위에서 맴돌았다.
이 곳에서 바로 길을 건너면, 일본 근대시대의 역사에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케다야가 나온다.
이케다야는 근대시대에 활동한 무사집단, 신선조가 유명해진 계기를 만든 '이케다야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이케다야 사건은 실제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은 꽤 참혹한 사건이었지만 이미 백 년 넘게 지난 사건인 이상 그러한 슬픔을 표현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인가, 그 사건이 일어난 이 곳 또한 지금은 술집으로 바뀌어 운영을 하고 있다. 그것도 재밌는 것이 이렇게 신선조를 다룬 각종 만화 혹은 게임과 콜라보를 하고 있다.
안에 들어가면 한술 더 떠서, 사건을 재현해뒀다. 역사적 사건을 이런 방식으로 바꿔 즐긴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해서 너무 재밌었다.
안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는데 인사도 일품이다. "御用改めである‼(공무가 있어 왔노라! : 신선조가 외쳤다고 유명한 대사)" 그 인사 소리를 듣는 순간 웃어버리고, 점원 언니가 입은 신선조의 하늘색 하오리에 한층 더 즐거워졌다. 별생각 없이 음료 메뉴를 보는데, 박앵귀(신선조를 다룬 여성 대상 게임) 콜라보 메뉴를 보고 마음이 흔들려 시켰더니 좋아하던 캐릭터의 코스터를 받아서 더 즐거워졌다.
역사를 이런 식으로 즐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었다. 혼자 간 여행이었지만 그래도 너무 즐거운 밤이었다.
그리고 이 곳에서 조금만 걸어오면 사카모토 료마가 암살당한 곳이 나온다. 이 곳은 사카모토 료마와 전혀 상관없이 초밥집이 운영되고 있다. 이 곳도 지나가다 보고 너무 웃겨서 사진을 찍어댔다. 교토라는 이상한 도시는 이런 역사적 공간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 번화가로 바뀐 공간에 남아있곤 했다.
카와라마치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시장이 펼쳐진다. 데라마치라고 불리는 이 거리에는 교토의 그 유명한 절, 혼노지가 있다.
전국시대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 오다 노부나가는 교토의 절 혼노지에서 자다가 본인의 가신이었던 아케치 미츠히데에 의해 배신당해, 불타는 혼노지에서 죽음을 맞이한다. 당시의 혼노지는 그 사건 당시에 사라졌지만, 이곳으로 이전하여 계속 역사를 이어나가고 있다.
시장 한복판에 절이 있는 것도 신기한데, 그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바로 그 혼노지라는 사실은 이 곳을 더 즐겁게 만들어준다.
이렇게 생긴 절은 말 그대로 절이라, 안에 들어가서 불상 앞에서 기도를 할 수도 있다. 워낙 절을 좋아했던 터라 조심스레 들어가 보니 호기심 가득한 외국인들이 따라 들어와서 어쩔 줄 모르고 앉아있던 것도 기억한다. 일본 적은 딱히 절을 하는 공간은 아닌지라 작은 의자까지 준비되어있어서 편하게 쉴 수도 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를 따라서 절에 갔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편해졌던 기억이 있다.
이 건물 뒤쪽으로는 오다 노부나가와 함께 죽은 가신들을 모신 공간이 따로 있다.
이 곳은 아직도 오다 노부나가라는 인물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걸 볼 수 있었다. 역사적 인물의 명복을 빌기에는 이미 아주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그래도 이렇게 찾는구나 싶어서 재밌었다.
이 곳에는 여러 번 왔었는데 2018년에 왔을 때는 일본도 전시를 하고 있었다. 전시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지만 오다 노부나가와 그의 가신들이 갖고 있던 일본도를 전시하고 있었다. 중요문화재나 국보 같은 귀한 문화재는 없어도, 모리 란마루가 쓰던 검을 보는 것은 꽤 즐거웠다. 이런 건 정말로 혼노지에서만 볼 수 있는 거니까.
전시 외에도 일본도의 제작을 눈으로 보거나 체험할 수 있는 공간도 마련되어있었는데, 이렇게 실제로 유명한 일본도를 그 크기와 무게로 재현해둔 것도 있었다. 도검 전시를 위해 전국의 전시를 돌아다니는 나조차도, 이렇게 손에 들고 무게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은 본 적이 없었다. 혹시 누군가 혼노지를 방문하고, 정말 운이 좋게도 전시를 하고 있다면 가보는 것을 추천한다.
혼노지의 방문은 바로 이 멋들어진 주인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머리를 깎은 스님이 써주는 이 한자는 정말 멋져서, 매번 자랑하게 된다. 저번 글에도 이미 한번 자랑했지만, 그래도 이해해달라. 특히 오른쪽은 검 전시하던 시기에 받은 특별 주인이었는데, 앞으로 언제 받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카와라마치와 데라마치, 그리고 그 사이사이의 작은 길들은 수많은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길이다. 조금만 샛길로 들어가거나, 조금만 고개를 올려보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세상들이 펼쳐지곤 했다.
데라마치를 걷다가 문득 위를 올려다보니 비건 전문점이 있어서 들어갔었다. 늘 할 수 있을 거라고는 확신하지 못하고 실천하지도 못하지만, 할 수 있을 만큼,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비건을 실현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이 곳에서는 정말 맛있는 비건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또한 이 곳에서 창밖을 내다보면 또 다른 절로 이어지는 것이, 마치 다른 세상으로 가는 길이 눈앞에 생긴 것만 같았다.
이 곳뿐만이 아니라, 정말 다양한 가게들이 숨겨져 있는데, 예를 들면
영국식 디저트를 파는 FRANZE & EVANS LONDON 라던가 (이 글을 쓰면서 찾아보니 폐점한 것 같다. 도쿄점은 아직 남아있으니 가봐야 할 것 같다.)
태국 음식점 三条パクチー(산죠 고수라는 이름의 가게다)처럼, 도쿄에서도 보기 힘든 정통 태국 음식점이 보이기도 한다. 교토라는 곳이 얼마나 발전이 빠르고 젊은 세대가 살고 있는지 보이는 증거기도 하다.
그리고 땡땡샵 같은 벨기에 만화의 전문샵이라는 정말 특이하고 신기한 가게도 존재한다. 이 곳에서는 얼마든지 길을 잃고 눈에 보이는 곳 어디든 다 들어가 봤다. 어딜 들어가든 즐거웠고, 동시에 그리웠다. 누군가의 가장 소중한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듯한 기분이 들어, 조심스러웠고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이 기억 또한 내게 조심스럽고, 어린 시절의 기억을 회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 작고도 한없이 넓은 거리에는 또 다른 재미가 있다. 바로 몇십 년씩 된 노포들이 숨겨져 있다. 바로 위에 올린 사진 속 스시는 교토 정통 스시로, 히사고 스시(ひさご寿司)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스시집이지만, 카와라마치에서 70년이 된 전통 있는 가게다. 또한 오른쪽의 과자를 만든 곳은 에이라쿠야(永楽屋)라는 이름의, 마찬가지로 70년이 넘도록 한자리를 지킨 과자집이다. 길을 헤매다 눈앞에 보인 가게가 너무 멋져 보여서, 뭔가 신기해서 들어가 보면 이런 역사를 만나고는 했다. 당연히 맛도 있다. 아직도 이 곳에서 먹은 음식들이 아른거릴 정도니까.
카와라마치는 이렇게 역사와 전통과 현대와 미래라는 개념이 혼재했다. 어제의 역사가 오늘로 이어지는 이상한 공간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사람들 사이에 치이면서도 이 곳을 꼭 들르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이런 교토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