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아 모놀로그 09

약 세 알을 보는 시선

by Yeon

우울증 환자로 살아온지 어느덧 13년, 진단받은지는 6년, 이제 내가 지독하게 오래 우울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않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말 너무 우울해서 기분이 땅을 칠 때쯤 '아, 내가 우울증이었지'라고 잠깐 생각하긴 하지만 그때 뿐이고, 대부분의 경우 마치 등에 아주 큰 짐을 하나 지고 있는 듯한 기분으로 살아간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를 만나서 우울증이라고 설명할 필요도 거의 느끼지 못한다. 그냥 이게 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만나서 갑자기 자기 자신에 대해 묻지도 않은 정보를 우르르 쏟아내는 경우는 잘 없지 않은가. 나에게는 우울증이라는 사실이 '묻지도 않은 정보'에 들어간다.


하지만 새삼 우울증을 설명할 필요가 생기는 때가 있다. 여행을 간다든지, 누구 집에 놀러간다든지 해서 잠 잘 무렵이 되었을 때다. 자기 전에는 반드시 약을 먹어야 하기 때문에(놓쳤다가는 극심한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 주머니에서 약을 꺼내 툭툭 털어 먹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정신병과는 거리가 먼 세상에 살던 사람들은 당황스러워 한다. "어디 아파?"라고 묻는데, 난 일단 이 질문부터 대답하기가 아주 곤란하다. 아프다는 건 도대체 뭘까? 우울증은 병이다. 그러므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나 역시 아프긴 아픈 건데,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아픔'의 이미지와 너무 달라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그러한 이유로 항상 내가 하는 답은 정해져 있다. "응, 크게 아픈 건 아니고, 그냥 우울증이 있어서 그래." 우울증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하기가 꺼려지는 상대방(주로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개판일 것 같은 사람)에게는 불면증이 있다고 한다. 현대인의 3대 고질병 아니던가.


사실 우울증은 크게 아픈 병이다. 난 정말 크게 아프다. 내 우울증 메이트는 '차라리 우울증이 극심해질 때마다 눈에서 피가 줄줄 나면 좋겠다'고 한탄한 적이 있다. 대단히 공감한다. 그러면 매번 내가 왜 힘든지, 지금 꼼짝도 못하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울증이 겉으로 크게 티가 나지 않는 병이기 때문에 제법 '일반인'들의 세계에 어울려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이 지긋지긋한 병이 쉽게 숨겨진다는 사실은 나를 갑갑하게도 하고 자유롭게도 한다. '병'이라는 사실이 나에게 씌우는 프레임을 좀 더 약하게 만들면서도, '병'이라는 사실 자체를 무시당하기도 한다.


이러한 이중적 구속은 우울증 진단을 받을 때 가장 크게 느껴졌다. 나는 휴학을 하기 위해 우울증 진단서를 뗐는데, 진단서를 떼기 직전까지도 내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은 '이렇게 낙인찍혀서 영원히 불건강한 사람으로 로 규정되면 어떡하지'하는 걱정이었다. 사실 불건강한 사람이 맞긴 하다. 하지만 이 정상성의 사회에서 불건강한 사람은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없다. 예를 들어 나는 지금 직장을 다니고 있는데, 내가 우울증 환자라는 사실이 공개되어 있다면 이 직장에서 나를 채용해주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채용해주었다 하더라도 면접에서 무슨 말을 들었을지 모른다.


며칠 전, 잠자리에 들려고 약을 먹고 있는데 친구가 물었다. "그 병은 언제 낫는 거야? 왜 걸리는 거래?" 나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러게." 중얼거리고는 약을 꿀꺽 삼켰다. 혹시 너도 병에 걸린 내가 지긋지긋하니? 건강한 사람을 곁에 두고 싶으니? 단지 건강하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이 날 떠나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린다. 나는 단지 한번에 약 세 알, 하루에 약 여섯 알을 먹을 뿐인데. 나는 13년째 건강하지 않다. 앞으로 13년을 더 살아도 이 '건강하지 않음'에 익숙해질지 모르겠다. 여전히 건강한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와 향기가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는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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