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도는 시간
나는 휴학을 했다. 드디어. 드디어! 나도 이제 인정받는 정신병 환자가 된 것이다. 진단명은 주요 우울장애, 필요한 회복기간은 4개월 이상. 하지만 이제 더한 골칫거리가 생겼다. 밤에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불면과 (나는 요즘 새벽 4시반에서 5시반이면 깨고 만다.) 그렇게 깨고 나면 하릴 없이 찾아오는 우울감, 울렁거림, 그리고 이 남아도는 시간을 어찌해야 할 줄 모르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프리랜서로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지만,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기력이 많이 소모되는 일이라 우울할 때면 나는 망연히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늘어져 있고야 만다. 밤에 잠을 못 자서 그렇지 한 번 잠들때면 24시간도 자기도 한다. 내 일상이 고무줄처럼 늘어졌다가 줄어들었다가 엉망진창인 느낌이다.
그래서 이 남아도는 시간에 뭐라도 해보려고 노력을 하지만, 아무래도 내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내 몸과 마음은 마치 변덕쟁이 날씨 같아서, 운동을 하려고 하면 한없이 울음이 터지고, 책을 읽으려고 하면 활자들이 눈 앞에서 뱅뱅 맴돌고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한동안 아예 쓰지 못했고, 지금은 그나마 기력이 생겨서 노트북 앞에 앉아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고보니 멜랑꼴리아 모놀로그라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말이다. 기력이 있어야 모놀로그라도 쓸 텐데 멜랑꼴리아를 앓고 있는 사람은 대부분 기력이 없으니 모놀로그를 하고 싶어도 못 하기 때문이다. 지난 한 달간 내 꼴이 딱 그짝이었다.
그러다보니 약을 과다복용하게 되고, 약이 일찍 떨어지고, 나는 또 죄책감에 쌓여서 죄인처럼 병원에 일찍 가서 오늘도 약을 과다복용했다는 말을 하고 약을 새로 타온다. 그 외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나는 나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서 취약하다. 나를 다루는 데에 있어서도 취약한 것 같다. 상담에서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리고 너무 충동적이어서 탈이라는 말을 자주 하고는 하는데, 그래서 생각이 너무 많아서 설명을 하려고 하면 머릿속이 오히려 백짓장처럼 하얘지고 충동적이기 때문에 자야 할 시간에도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나는 나 자신과 만든 약속을 제대로 잘 지키지 못하는데, 그것을 설명하기도 힘들다. 예를 들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오늘도 운동을 못 갈 것 같아.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
그런데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기란 쉽지 않다. 나는 정말 못 갈 것 같아서 그런 기분이 드는 건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든 의지와 노력으로 이 일들을 해내고 있으니 말이다. 다들 그 정도 힘들고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고 하지만 나는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들 사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이 남아도는 시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생각해보면 할 건 많은데. 할 건 많은데 할 수가 없어서 그렇다. 오늘처럼 기력이 좀 생긴 날이 아니라면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조차 할 수 없는 날이 많다. 그럼 잠을 또 청하지만, 잠도 제대로 오지 않는 날. 일어나서 엉엉 우는 것밖에 할 수가 없는 날. 그런 날에 나는 또 자살을 생각한다. 왜냐하면 죽지 않고서는 이 고통이 사라지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국 죽지 못하고 또 살아서 하루를 지내는 걸 보면 내 목숨줄은 끈질긴 모양이다. 살다 보면 즐거운 날도 오겠지, 즐거운 날이 아니라면 그래도 오늘과 같은 힘이 덜 드는 날은 오겠지, 하고 버틴다. 오늘도 버틴다. 내 충동성은 내가 그나마 생기가 있을 때면 더 심해진다. 이 우울이 없는 감각을 더 오래 느끼고 싶다. 그래서 나는 커피를 세네 잔씩 마셔가며 깨어 있는다. 그것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러면서 평소에 못 했던 일들을 몰아서 하고 다시 일상을 살아보려고 노력한다.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든 재미있게 보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그러다가 훌쩍, 눈물이 나면 또 울고. 내 감정은 도대체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이것이 우울장애 환자의 일상이라는 거겠지.
두서없는 말이 길었다. 내가 결국 하고 싶었던 말은 우울장애 환자들은 기력이 있었다가 없었다가 하는데, 없는 때가 더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없을 때는 대체로 우울하고, 그래서 죽고 싶고, 불안하고, 심장이 아프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그런 사람들에게 나가서 운동을 해보라거나 책을 읽고 글을 써보라거나 하지는 말자. 그 사람들은 자극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누워있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 살아있음에 감사해하고, 살아있어줘서 고맙다고 이야기하자. 그러다보면 일어나서 그 사람들도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남아도는 시간을 죽이고 또 죽이다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