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의 밤
휴학을 하기 전, 나는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공부를 할 기력은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은데 잠은 쏟아지지 않는 일이 반복돼서 새벽 늦게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샜다. 그러다가 지치고 지쳐서 했던 일들은, 빨래를 돌리거나, 냉장고를 청소하거나, 책상을 정리하는 일들이었다. 그러다 보면 잠이 왔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을 마무리했다는 안도감이 잠을 불러왔던 것 같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괴로웠던 것은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부채감이었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아무리 많이 해도(그렇게 많이 하지도 않았지만)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부채감은 나를 잠들지 못하게 했고 자꾸 혼몽 속에 깨워 두었다. 모든 일에 집중을 하지 못했다. 집에 빨래를 돌려 놓고 널지 않은 채로 방치한 채 외출하면 하루종일 마음 한 구석이 찝찝하지 않은가? 바로 그런 감각이 나를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면증에서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사람들이 모두 잠드는 그 때이다. 12시정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깨어 있지만, 1시 정도로 가면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이 든다. 그러고 나면 무섭도록 외롭다. 세상에 깨어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고 이야기할 사람도 이 고통을 털어놓을 사람도 없다. 그래서 한창 불면증이 심할 때는 불면증 자조모임이라도 있어서 잠이 오지 않는 밤마다 서로 얼굴이라도 보고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끝없는 불면증은 나를 집밖으로 내몰았다. 나는 그 당시 서울에 있는 남자들의 집 곳곳을 떠돌아다녔다. 신기하게 다른 사람과 자거나 다른 사람의 집에 있으면 금방 잠이 왔다. 못 잤던 잠이 밀려들었던 탓에 꾸벅꾸벅 졸면서 섹스를 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뭔가 합리적인 방법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기묘한 안도감이 나를 재웠다. 눈을 떴는데 우리집이면 낯설 지경이었다.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사람을 이렇게 붕 뜨게 만든다. 수면제 처방 정도를 올렸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그리고 휴학을 하기 무섭게 나는 잘 자기 시작했다. 때때로 새벽까지 깨어 있는 날이 있기는 했지만 그런 날은 아주 예외적인 날이었고, 내 불면 유전자에 각인된 한달에 한번 있는 불면일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그 외에는 잠을 좀 많이 설치기는 하지만 잘 잔다. 숙면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일지라도 나에게는 이정도면 개운한 잠이다.
앞에서 언급한 불면 유전자라는 말대로, 나는 아주 어릴때부터 잠을 잘 자지 못하는 아이였다. 악몽을 꾸고 가위에 눌려서 깨어나 우는 건 예사였다. 좀 커서 방을 따로 쓰게 되자 방에 벌레가 돌아다닐지 모른다는 공포에 잠을 자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 몰래 방에 불을 켜놓고 한참 책을 읽다가 겨우 잠이 들곤 했다. 그때 나는 책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잠이 싫기도 했다. 잠을 자는 것이 끔찍했다. 잠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무슨 수를 써도 잠이 오지 않는데 어떻게 잠을 자겠는가. 게다가 우리집은 잠을 제때 자지 않으면 크게 혼나는 집이었다. 온통 고요와 어둠에 휩싸인 집에서, 나는 혼자 외로이 책을 읽으며 밤을 보냈다. 어둠이 가실 때쯤이면 겨우 잠이 왔다.
불면증을 거의 20년을 앓았으니 이제 불면에 대처하는 법 정도는 책으로 낼 만큼 쌓일만도 한데 그런 건 없다. 그냥 버티는 수밖에 없다. 아니, 버틴다기보다, 시간을 흘려보내며 몸을 이완시키는 수밖에 없다. 이완되지 않으면 뭔가 신경 쓰이는 일이 있는 것이니 그걸 해결하든가 아니면 당장 눈에 띄는 과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빨래라든지 청소라든지).
그래서 만약 당신의 주변에 불면증 환자가 있다면,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내일 아침에 알려줄게’ 같은 말을 하는 건 자제하도록 하자. 가뜩이나 순탄치 않은 그의 수면사에 길이 남을 끔찍함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그리고 '잠 자기 전에 커피 마시지 마'라든가 '운동을 좀 해보는 게 어때' 같은 제안도 사실 큰 의미가 없다. 매일 밤 잠을 못 이룰 만큼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은 이미 커피 없이는 살기 힘든 수준에 왔을 가능성이 높고, 운동을 할 기력 따위 일찌감치 소진한 상태일 가능성도 높기 때문이다.
오늘도 잠이 오지 않는 이부자리에 누워서 잠이 오지 않는 게 너무나 익숙한 내 상태에 또 하루 더 익숙해진다. 불면증은 이제 내 영혼의 동반자 같다. 매일 갑자기 나타나서 앵앵 울어대는 우울증보다는 그래도 훨씬 더 다루기 쉬운 친구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