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아 모놀로그 06

양치를 제대로 할 수 없어서

by 카산드라

가만히 있다가도 속이 울렁거리는 나에게 양치란 매번 헛구역질을 하게 되는 난관이다. 지금도 너무 속이 울렁거린다. 왜 울렁거리는 지는 나도 잘 모른다. 뭔가를 잘못 먹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기분이 안 좋아서 울렁거리는 것이다. 나는 잠을 12시간 정도 자는데, 8시간으로 줄이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오히려 늘어나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왜냐하면 잠을 잔다는 건 내게 있어서 모든 감각을 차단시키는 편안한 상태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말이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나는 그 순간부터 나는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내가 하루를 시작하려면 그 울렁거림을 딛고 일어서야 한다. 그 다음부터는 나룻배에 탄 사람같다. 이걸 해도 울렁거리고 저걸 해도 울렁거린다. 울렁울렁이는 파도 위에서 불안하게 숨만 쉬며 폭풍우를 지나는 뱃사람처럼, 나는 그렇게 깨어있는 하루를 살아간다.


가끔 속이 너무 울렁거리면 일부러 손가락을 목구멍에 집어 넣어 다 토해내기도 한다. 그러고 나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게 되는데, 나는 울지 못하게 된 지 오래 되었기 때문에 그 감각은 내게 펑펑 온 몸을 소진시키며 울고 난 뒤의 탈진과도 같은 감각을 대신 느끼게 해 준다. 이상하게 나는 제대로 할 수 없는 것이 많다. 양치도 제대로 할 수 없고, 눈물도 제대로 흘릴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울음이 올라올 때면 하품을 한다. 하품을 하면 눈에 눈물이 맺히기 때문이다. 이상한 몸이다.


그렇게 속이 울렁거리지만 겨우겨우 일어나서 한바탕 토하고 나면 전날 새벽에 시킨 배달음식이 싸늘하게 식은 채로 날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보면 다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된다. 낮에 일어나 새벽에 자는 나는 새벽에 늘 견디지 못하고 배달음식을 시키고는 하는데 그 비이성적인 충동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어쩌면 자해를 하는 충동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그냥 배달 앱을 뒤져보고, 돈을 쓴다. 내 룸메이트는 곤히 자고 있는데 나는 음식 배달을 시키며 혼자 깨어 있다. 어쩌면 외로움이 가짜 배고픔으로 나타난 건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 먹고 나서는 왠지 살이 찔 것 같은 두려움과 또 살이 찔 짓을 했다는 죄책감때문에 다 토하러 화장실로 들어간다. 변기를 잡고서 익숙하게 먹은 것을 바닥까지 다 토해내고 나면 익숙하게 양치질을 한다. 이상하게 평소에 하는 양치질은 속이 울렁거리고 자꾸 역한 기분이 들면서 토할 것만 같은데 뱃속에 있는 것을 다 비워내고 나서 하는 양치질은 상큼하다. 그렇게 양치질을 금방 끝내고 다시 거실로 돌아오면 널브러진 배달음식들이 있다. 나는 그것들을 헛구역질을 참아내며 치운다. 이제는 좀 요령이 생겨서 미리 치우고 토하러 들어가기도 한다. 배달을 시킬 때도 이미 내가 이것들을 다 먹고나서 토할 것이고 치울 때 다시 토하고 싶어지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치우기 쉬운 것들을 시키고는 한다.


술 한 잔은 이 모든 울렁거림을 잠재우는 마법의 약이다. 이전 글에서 나는 술에 중독되어 있다고 고백한 바 있는데, 이 울렁거리는 속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면 나는 빈속에 50도가 넘어가는 위스키라도 때려넣는다. 만약에 당신도 눈을 뜨자마자 속에 든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입덧이나 멀미를 하는 것처럼 울렁거린다면, 심장이 마치 그네를 타는 것처럼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면 나처럼 알콜 중독이 될 지도 모른다. 나는 술을 끊고싶지만 끊는 방법을 모른다. 마치 배달을 끊고싶지만 끊는 방법을 모르는 것처럼. 내 친구는 자신의 소설에서 자신은 중독될 수 있는 모든 것에 중독이 되어 있다고 썼다. 나도 그렇다.


섭식 장애는 참 기이한 병이다. 그냥 배달을 안 하면 될 텐데, 안 먹으면 될 텐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먹고 나서도 안 토하면 될 텐데, 그게 그렇게 어렵다. 왜 먹고 토하는지, 나도 잘 모른다. 설명이 안 된다. 내 친구와 나는 이런 행위를 할 때면 로마 귀족 짓을 한다고 농담처럼 말하고는 하지만 사실 그건 우리 스스로도 이 행위들이 이해가 안 되기 때문에 하는 헛웃음 섞인 농담이다. 아마도 가장 합리적인 설명을 하자면 하루를 사는 게 힘들기 때문에 일어나는 몸의 반응일 것이다. 이 힘들고 지치는 하루를 다 토해내고 싶은 거다. 마구 먹음으로써 몸을 혹사시키고, 토해냄으로써 몸을 또 혹사시키면서 엉엉 울고 싶은 거다. 김사월의 노래에는 이런 가사가 있다. "밖은 너무 추워, 나는 엉엉엉 울어." 이걸 내 버전으로 바꾼다면 아마 가사는 이렇게 될 거다. "사는게 너무 추워, 나는 엉엉엉 울어." 그래, 이제 알겠다. 내 섭식장애는 내가 울지 못해서 생겨난 병이다. 나는 엉엉엉 우는 대신에 음식을 먹고, 음식을 토해낸다. 사는게 너무 춥고 쓸쓸해서, 너무 슬프고 서러워서 생겨난 병이다. 그러니 섭식장애 환자에게 먹지 말라느니, 먹으라느니, 그런 것은 사실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은 당신의 따스한 포옹, 따스한 한 마디일지도 모른다. 누군가 잔뜩 먹고서 잔뜩 토해내고 변기를 잡고 엉엉엉 울고 있으면, 혼내는 것보다 화를 내는 것보다 뭔가를 먹고 싶을 때마다 나랑 대화를 하자고 하거나 꼭 안아주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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