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이라도 하고 싶다
고량주를 벌컥벌컥 마시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마약을 하는 게 몸에 더 건강하지 않을까? 우울증 환자의 뇌는 생물학적으로 보상회로가 약하게 연결이 되어서 도파민 분비가 잘 안 된다는데 그러면 약이라도 해서 이걸 보완해야 하지 않을까. 매번 고통을 독한 술로 상쇄시키는 것 보다는 LSD를 해서 행복감을 느끼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이건 내가 오늘 낮에 일어나면서 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요즘 내 룸메이트는 연애를 해서 매사에 LSD를 한 것 같은 도핑 상태로 지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에이로맨틱이다. 사람을 보면서 '사랑스럽다'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귀엽다는 건 알겠다. 우리 집 고양이를 보면 귀여우니까. 편안하다는 것도 알겠다. 왜냐하면 내 애인을 보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랑스럽다는 감정은 대체 뭔가? 지금 약간 주저리주저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내가 고량주 반 병을 마셨기 때문에 그렇다고 변명을 해 본다. 어쨌거나 나는 사람을 보고 연애적 끌림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연애를 한다는 이유로 매사에 LSD를 한 감각을 느낀 적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룸메이트를 보면 부러워 죽겠다. 나도 하고 싶다, 합법적인 마약. 그래서 나는 내 애인을 만나러 지하철을 1시간 타고 사랑이 가득한 우리집을 훌쩍 떠났다. 내 애인도 에이로맨틱이고 우울증 환자로, 우리는 만나서 훠궈에 고량주를 잔뜩 먹었다. 그러면서 별 헛소리를 다 했는데, 이건 좌로도 우로도 공격적이고, 동으로도 서로도 어이가 없는 정치사회적 드립의 생생한 현장이었다. 그 내용은 싸이버불링을 우려하여 싣지 않는다.
분명히 애인네 집에 올 때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는 공황이 도져서 제발 저 빈 노약자석에 나도 앉고 싶다, 공황장애 환자들은 왜 장애인석에 앉지 못하는 걸까 고민하면서 오늘 글 주제를 그걸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고량주를 반 병 마시고 나니 그것도 다 의미 없는 고민이 되었다. 우리는, 그러니까 나랑 내 애인은 공황장애 환자같이 눈에 직접 보이는 가시적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들에게 장애인권을 보장하는 사회가 오기 전에 간암으로 죽을 것이다. 나는 실제로 지방간이 있고 살이 정상범주에서 25kg나 더 많이 쪄서 이건 간경화로 넘어가기 직전이다. 그런데도 나는 술을 마신다. 왜냐하면 술을 안 마시면 죽을 것 같기 때문이다. 정신병 약과 술은 충돌하기 때문에 먹으면 간이 '나 죽을게' 하고 죽는데도 나는 정신병 약을 먹고 술을 마신다. 한 번은 술로 정신병 약을 먹은 적도 있다. (이러면 안 된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게 되는 것이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고장난 도파민 분비회로와 고통을 느끼는 편도체가 적당히 마비되지 않기 때문에, 그 고통을 생생히 느끼게 되고 그건 마취주사 없이 개복수술을 하는, 아니, 심장에 극한의 고통이 오는 기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돌아가지 않는 행복회로를 억지로나마 돌리기 위해서 술을 마시고 또 마신다. 그러다가 맨날 생각한다. 차라리 마약을 하는 게 낫겠다. 그건 간이 망가지는 정도도 덜할 거고 (사실 그건 모른다.) 한 번 먹으면 도파민이 절로 뿅뿅뿅 분비된다는 점에서 진정제인 술보다는 각성제인 마약이 차라리 더 나을지도 모른다.
이건 모두 가정에 기반한 글이다. 사실 나도 마약이 나쁘고 중독성이 엄청나게 강하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왜냐하면 나도 정신병 약에 굉장히 중독되어 살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심리학 공부를 오래 해서 긍정 정서와 부정 정서는 따로 논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그 얘기인 즉슨, 내가 행복하다고 해서 불행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행복과 불행복은 따로 노는 감정이다. 사람은 슬픈 동시에 기뻐할 수 있는 복잡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성제인 마약으로 내 긍정 정서를 잔뜩 띄워놓더라도 내 부정 정서는 여전히 바닥을 뚫고 지하 6피트 아래까지 내려갈 것이기 때문에 나는 아마 마약을 하더라도 마약 알갱이를 술에 타서 마시는 인간이 될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지금처럼 술에만 중독되어 있는 것이 낫다. 그런데도 내가 마약을 하고 싶다고 반농담처럼 말하는 이유는, 일반 사람들의 일반적인 삶이 너무나 부럽기 때문이다. 나는 술을 잔뜩 마셔야 겨우 일반 사람처럼 긍정 정서를 유지하며 쓸데 없는 농담을 하고 낄낄대며 웃을 수 있는데, 술을 한 잔 해야 돈을 벌러 다시 인터넷 바다로 뛰어들고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끝낼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술 한 잔 하지 않아도 그냥 그 일들을 할 수 있다니. 너무나 부러운 것이다. 게다가 나는 우울증 환자 주제에 에이로맨틱이기까지 해서 연애라는 합법적인 마약을 통한 LSD 섭취도 할 수가 없다. 정말 억울한 일이다.
우울증 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갓난아이를 5명 쯤 키운다는 말이나 같다. 이전 편에서 내 친구가 통근 시간 지하철만 타면 자기는 자신을 아기 달래듯이 달래면서 간다고 했는데, 나는 지하철이 텅텅 비어 있어도 나를 아기 달래듯이 달래면서 가야 한다. 그것도 아기 5명 쯤을 달래면서 가는 것과 같다. 다섯쌍둥이 유모차를 밀면서 한 명이 울면 다른 네 명이 따라서 으아앙 울고 그 난장판 속에서 울지 말자, 곧 내린다, 오늘 하루도 곧 끝난다, 얘들아 울지 말자, 이렇게 얘기하다가 에라이 XX 하고는 그냥 전부 다에게 술이나 약을 먹여버리는 것이다. (실제 아기에게는 이렇게 하면 안 된다.) 그래서 우리 엄마는 내가 약에 취해서 사는 것 같다고 항상 걱정을 하시지만, 사실 그건 걱정할 거리가 안 된다. 우리나라가 총기 합법화 국가였으면 나는 아기 다섯 명이 항상 울고 있는 시끄러운 머리에 총을 한 방 쏴서 조용하게 시켜주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는 머릿 속의 아기 다섯 명에게 술을 먹이는 것이 더 낫지 않은가? 정신과 약으로 조용해진다면 더 낫고. 이 글을 쓰고 있다가 내 옆에서 갑자기 애인이 엎드려서 에이씨 하면서 울기 시작했다. 그렇다, 내 애인도 머릿속에 갓난아이 5명쯤 키우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 팟캐스트를 듣다가 문학인의 3요소란 니코틴, 카페인, 알코올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내가 굉장히 훌륭한 문학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얘기를 내가 좋아하는 바의 바텐더에게 했더니 거기에 코카인까지만 더하면 훌륭한 락스타가 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다음부터 훌륭한 락스타가 되고 싶은 꿈을 키우면서 살고 있다. 우울증 환자라는 꼬리표가 달리는 것 보다는 락스타라는 이름표가 붙는게 더 멋있지 않은가? 하지만 한국은 안타깝게도 코카인이 합법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내가 락스타가 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일밤 레드제플린의 노래를 틀어놓고 잠드는 것 뿐이다. 여하간,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만약 당신이 이 글을 읽으면서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느낌이 들고 그 심경이 이해가 안 된다면, 축하한다 당신은 도파민분비가 제대로 되고 있는 일반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는 오늘도 당신이 아무렇지 않게 해낸 일들을 부러워하며 술을 마신다. 예를 들면 정오 전에 일어난 것. 머리를 감은 것. 옷을 갈아 입은 것. 양치를 한 것. 밥을 먹은 것. 기타 등등. 나는 오늘 이 일들을 다 위스키 한 잔 마시고 해 냈다. 간을 혹사시키지 않고서는 이 일들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소주 한 잔도 마시지 않고 이 일을 해냈다. 당신의 간이 계속 건강하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나와 내 간도 앞으로 간당간당 버텨주며 할 일들을 해나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