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아 모놀로그 04

지옥철과의 만남

by Yeon

휴학을 하고 당장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나는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다. 운 좋게도 그동안 대학원에서 배워왔던 학문과 비슷한 결의 일을 빠른 시일 내에 시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 장점만 있는 일은 없는 법이다. 이 직장에는 아주 커다란 단점이 있었으니, 우리 집에서 1시간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그중 20분은 걷고, 1시간 10분은 지하철을 타야 했다. 9시 출근 6시 퇴근이었기에 딱 출퇴근 시간대에.


지하철을 왜 지옥철이라고 하는지 처음 이해한 것은 9호선을 타고 퇴근할 때였다. 나는 당시 학원 조교로 일하고 있었는데 7시간 정도 일했음에도 식사시간조차 주지 않는 열악한 직장이었다. 저녁을 대충 때우고 학생 지도를 모두 마친 다음 집에 갈 때쯤이면 열시였다. 열시에 그렇게 지하철이 붐비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9호선은 그 악명답게 그 시간에도 사람을 꽉꽉 채우고 다녔다. 피크 시간대에는 9호선에서 실신하거나 구토감에 급히 내리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10시에 탈 때는 딱 거기서 10% 정도 덜한 수준이었다. 내가 몸을 고정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고정되어 갈 수 있는 그런 정도의 붐빔. 아마 많은 직장인들은 이정도의 북적거림은 늘 감내하며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울증과 함께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내게는 누가 나를 30분 정도 바늘 하나 겨우 들어갈 듯한 장 안에 넣어놓고 마구 흔드는 기분이었다.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를 채 떨쳐 버리지도 못한 상태에서 나는 그렇게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그때는 그게 지옥철이라고 생각했다. 더한 지옥을 맛보기 전까지는.


출근 시간대는 그나마 괜찮았다고 말하고 싶다. 일찍 집에서 나와서 괜찮게 출근했다고. 그러나 일단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부터가 우울증 환자에겐 대단한 난관이다. 기력이 없기 때문이다. 어떻게 된 게 고장난 핸드폰처럼 자도자도 기력 충전이 안 되고 아침에 일어나면 배터리 칸이 빨간색으로 깜빡이고 있는 기분이다. 그러다 보니 잠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아침마다 꿈결을 헤맨다. "사람은 누구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아침은, 정말, 정말, 정말 힘들다. 1) 일어나기 싫다는 욕구 2) 영원히 자고 싶다는 욕구 3) 하루가 시작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욕구 4) 차라리 죽어야겠다는 욕구 이렇게 총 네 욕구와 싸워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온갖 욕구를 떨치고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면, 옷을 챙겨 입고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그쯤 되면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기 시작하는 생각은, '나는 인생에 적성이 안 맞아'라는 것이다.


어찌됐든 후다닥 뛰쳐나오면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김밥 속처럼 꽉꽉 차 있는 지하철이다. 좀 일찍 탔으면 훨씬 더 쾌적하게 갈 수 있었겠지만 그런 선택지 따위 나에게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으면 정말이지 내가 뭘 잘못했길래 이런 지옥도에 들어와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요즘은 하도 추워서 다들 패딩을 입고 있으니 더욱 더 세게 끼어 있는데, 너무나도 답답해서 패딩을 콱 찢어 버리고 싶다. 이쯤 되면 현기증이 나고 심장박동이 빨리 뛰기 시작한다. 그러면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신도림역이 되면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겠지, 특정 환승구간이 되면 또 한 물 빠지겠지. 그러니 조금만 참자. 스스로를 아기 달래듯 달래다 보면 시간이 간다. 그렇게 천 시간 쯤 되는 것 같은 시간을 견디고 나면, 뭐 기대할 만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직장에 도착한다. 그래도 밖에 나와서 맞는 상쾌한...혹은 얼어 죽을 듯한 바람은 지하철에서 나오는 히터 바람보다 훨씬 낫다.


여기서 하루가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늘 궁금한 것이 있는데 왜 상대적으로 출근길보다 퇴근길이 사람이 더 많고 끔찍하게 괴로운가 하는 것이다. 내가 일을 하느라 기력을 소비해서 그런가? 아니, 그렇다고 하기에는 출근길과 달리 퇴근길에는 지하철을 몇 대씩 보내고 타야 한다. 어디가 끝인지 모를 줄에 서서 지하철을 몇 대씩 보내고 있으면 마음이 절로 가라앉는다.


이렇게 힘들게 집에 돌아가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남은 일거리와 내일의 출근길 뿐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죽을 것 같다. 지긋지긋하고 반복되는 일상을 살려고 어른이 된 걸까? 물론 아직도 완벽한 어른은 전혀 아니지만, 완벽한 어른이든 완벽하지 않은 어른이든 이런 일상을 어떻게 주말 빼고 평일 내내 버틴단 말인가. 시시포스가 끊임없이 돌을 밀어 올리는 형벌을 받았듯, 현대인의 형벌은 끊임없이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을 타야 하는 벌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런 지하철을 타면서 이미 아침에 우울증과 싸우느라 한창 기력을 쏟고 나왔다면,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지 모른다. 지옥철 안에서 난 그런 생각을 하며 직장으로 갔다가 집으로 온다. 도대체 왜, 내일도 모레도 반복되고 어차피 똑같은 기분으로 똑같은 싸움을 벌여야 하는 상황에서 왜 내가 하루하루를 버텨야만 하는지, 사는 게 힘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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