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버리는 손목시계
나는 한동안 와병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 비유가 아니라 진짜로. 허리가 아팠던 게 아니고 암이나 백혈병에 걸렸던 것도 아니고 그냥 힘이 너무 없어서였다. 지금도 힘이 너무 없어서 한 줄 쓰고 한숨을 15분 쉬고, 다시 한 줄 쓰고 한숨을 30분씩 흘리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힘이 없었다. 뭐라 설명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영화 '유전'에 보면 주인공 아버지가 우울증 때문에 굶주려 죽었다고 하는 장면이 나온다. 결국 그건 사실 우울증 때문이 아니라 스포일러 때문이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아무런 기이함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넘겼다. 왜냐하면 나는 우울증 때문에 굶주려 죽는 기분을 잘 알기 때문이다. 배가 죽도록 고픈데 뭔가를 입에 넣으면 넣는 족족 다 토할 때가 있다. 반대로 뭔가를 배터지게 먹지 않으면 도무지 잠이 오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난 살이 25kg나 쪘다. 너무 토해서 8kg가 빠진 적도 있다. 그래서 내 몸무게는 지금 정상 범위의 몸무게가 아니다. 허리가 어떻게 그렇게 가느냐는 말을 들었던 것이 전생의 일인 것만 같다. 하지만 이 글에서 하려는 말은 내 몸무게나 섭식장애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눈꺼풀을 뜰 힘이 없을 때가 있었다. 영원한 잠에 빠지고 싶었다. 사실 아무런 생각도 안 들었다. 그래서 그냥 시체처럼 살았다. 마치 코마상태에 빠진 인간처럼. 하루가 24시간이라면 20시간은 잠으로 보냈을 것이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가 해가 바뀌었다. 핸드폰이 들끓었다. 새해 복 많이 받아! 해피 뉴 이어! 나는 그 중에 아무것도 답장을 하지 않았다. 토할 것 같았다. 그것들이 나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같았다. 나는 그 때에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매 주 한 번씩 부모님이 차로 태워다주셔서 갔다 오는 병원 나들이가 그 시절 내 바깥 나들이의 전부였다. 정신분석 세션에서 의사선생님에게 말했다. 어떻게 말 했더라. 대충 이렇게 말했던 것 같다. 죽고 싶어요. 사람들이 날 죽이려는 것 같아요. 새해 안부 인사 문자에도 답장을 못 했어요. (때는 2월이었다.) 답장하기 싫어요. 사람들이 날 가만히 내버려뒀으면 좋겠어요. 창을 들고 나를 찌르는 것만 같아요. 어떻게 사람들은 평범하게 하루에 아침 일찍 일어나서 일을 하고 일상을 보내고 다시 밤에 잠에 들죠? 저는 그렇게 못 할 것 같아요. 저는 일을 못 할 것 같아요. 의사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카산드라씨는 다른 사람이 보내는 연락이나 말들을 '자기를 툭툭 찌르고 건드린다'고 생각하시는군요. 나는 그래서 대답했다. 네, 맞아요. 그때의 나는 약간 미모사같았다.
그 때 침대에 누워서 눈물을 흘릴 기력도 없어서 소리만 내어 흑흑거리고 있을 때. 그리고 그러다가 잠에 들고 깨면 다시 밥을 먹고 바로 캄캄한 방으로 들어와 힘 없는 몸을 털썩 쓰러뜨리고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하고 새벽에 깨면 마치 살풀이 굿이라도 하듯 음악을 이어폰으로 들으면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춤을 추다가 다시 털썩 쓰러져 잠들고... 그러던 때. 나는 오는 연락을 족족 무시했었다. 병원에서 오는 전화도 무시했다. 전화를 들어서 거절을 누를 힘도 없어서 전화가 절로 끊기기까지 멍하니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1시 쯤이었다, 전화가 한 통 왔다. 사랑하는 내 친구로부터 온 전화였다. 지금은 나의 애인이 된 내 친구, 이 멜랑꼴리아 모놀로그를 같이 쓰고 있는 내 친구... 나는 홀린듯이 전화를 받았다. 아직도 그때 내가 그 전화를 왜 받았는지 모르겠다. 마치 마법에라도 홀려 있었던 것 같다. 내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네가 죽었을까봐 걱정했어. 나는 대답했다. 나 안 죽었어. 내 친구는 말했다. 그래, 다행이다. 그 때의 내 감정을 아직도 기억한다. 마치 꽁꽁 얼어있던 손발에, 심장에 누군가가 따스한 물 한 바가지를 천천히 부어준 기분이었다. 천천히 손발이 따스해지고, 팔다리가 따스해지고, 오장육부가 따스해지고 심장이 따스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행복했다. 인생에서 그보다 더 행복했던 적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날을 기점으로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친구도 이랬을 때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아니, 있다. 그런데 우리의 성향은 조금 달라서 내가 극도로 우울할 때 모든 힘을 잃고 안으로 끝없이 침잠하는 타입이라면 내 친구는 마치 커피를 10잔이라도 마신 양 눈을 벌겋게 뜨고 밖으로 한없이 나돈다. 뭐랄까 영화 '김씨 표류기'에서 남자 김씨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나는 여자 김씨이고. 어쨌거나 둘 다 표류한다는 점에서 우리는 공통점이 있다. 내 친구는 그래서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우울한 와중에도 이런 저런 일들을 하고는 하는데 나는 도저히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친구가 차고 다니는 손목시계이다. 애플 워치인데 그 애플 워치는 시간만 재깍재깍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에 오는 자기가 받겠다고 설정한 모든 알림을 진동으로 재깍재깍 알려준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서 핸드폰에 쌓여 있는 알림들을 보면 죽고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 죽어야지. 이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알림 자체를 보는 걸 싫어해서 어떤 알림은 받고 어떤 알림은 받지 않겠다는 설정도 해두지 않는다. 그럴 힘이 없다. 다른 건 그냥 넘겨도 카톡은 정말 난관이다. 내가 사랑하는 두세 친구에게서 온 카톡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카톡이 하나라도 와 있으면 정말 심장에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는 것 같다. 물론 확인하지 않고 지워버린다. 그런 의미에서 내 친구가 차고다니는 애플 워치는 나에게 있어서 자살로 가는 지름길이요 미쳐버리는 시계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알림의 홍수 속에서 살아간다. 대체 어떻게들 살아가는 걸까? 나는 점점 나이가 들 수록 산골짝에라도 살고 싶다. 책이랑 글을 브런치에 올릴 수 있도록 해주고 OTT 사이트에서 영화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와이파이, 끝없는 영화들, 그리고 약간의 나물밥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공연을 좋아하지만 그건 일 년에 한두 번 서울로 나와서 보면 되는 거니까, 그다지 큰 딜은 아닌 것 같다. 나에게 연락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내가 사랑하는 두세 친구들 빼고 말이다. 그 친구들은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 카톡으로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게. 내가 대도시에 사는 이유는 순전히 친구들이 여기에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아니었으면 일찌감치 경주나 그런 곳으로 내려가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미술품을 정말정말 좋아하는데 경주는 한국 고미술의 도시이니까. 그런 곳에서 텃밭이나 가꾸면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 아침에 일어나서 햇빛도 쬐고 땀 흘리면서 일도 하고 동네 할머니들이랑 인사도 하고 그러면서 우울증은 절로 나을 것 같은 망상이 든다. 뜨개질이나 하고 하늘 구경 하고 꽃 키우고...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하지만 나는 대도시에서 공부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한다. 생각만으로도 막막하다. 이제는 하루를 일어나서 시작할 수 있다는 변화가 있지만 그래도 나는 아직 미모사다. 이 여린 미모사에게 애플워치의 시대는 너무나 가혹하다. 미쳐버리는 시계. 나는 느릿느릿하게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