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아 모놀로그 02

진단서의 여정

by Yeon

10년, 정확히는 20년 가까이를 묵으며 묵은지마냥 악화된 내 우울증은 대학원에 와서 급격한 하강곡선을 그리며 빠르게 심화되었다. 배우는 것과 거의 동시에 평가가 이루어지는 대학원에서 내 우울증은 생산성을 감소시키는 부정적 요인에 불과했다. 게다가 코로나로 인해 시작된 비대면 수업 체제는 내가 집에 처박혀 우울함을 만끽하는 데 혁혁한 기여를 했다. 할 일이 몰아닥친 기말고사 기간 나는 죽고 싶다는 말을 버릇처럼 반복하는 사람이 되었다. 대학원에서 유일하게 친해진 친구에게 끊임없이 우회적으로 죽고 싶다는 표현을 했다. 차마 죽고 싶다는 말을 직접 하기에는 나와 마찬가지로 시험기간인 친구에게 너무 민폐인 것 같아서, 에밀 뒤르켐의 '자살론'을 읽고 싶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한참 고뇌하다가 이런 식으로 자살 욕구를 표현한 나에게, 아마도 당황했을 친구는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은 읽어본 적이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제법 멀쩡한 척 막스 베버의 저서도 읽어보고 싶다고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쯤 해서 생각했다, 죽고 싶다고 말을 해봤자 사람들이 당황하기만 하는구나, 라고. 물론 내가 죽고 싶다고 표현한 방식이 대단히 잘못되어 있었지만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너무 대학원에 매몰되어 있었다.


이쯤 되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사람이 무슨 자살론 운운하는지 황당하다고 느끼며 이 글의 글쓴이는 미친 사람인가?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정답이다. 나는 미친 사람이다. 미쳤다는 게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지만, 사회에서 쓰는 '미친 사람'이라는 분류에 나는 정확히 들어맞는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미쳤다'라는 형용사는 '정신에 이상이 생겨 말과 행동이 보통 사람과 다르게 되다'라는 정의를 가지고 있는데, 나의 성격을 설명할 때 가장 간단한 한 마디로 써먹을 법하다. 난 살면서 단 한번도 흔히 말하는 '보통 사람'과 같았던 적이 없다. 정신에 이상이 있다는 것은 심지어 종합병원 명의의 진단서로 명시가 되어 있다. 무려 4개월 이상의 요양을 요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나는 4개월 이상 어디에 처박혀 일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뇌를 좀 쉬게 해야 '보통'으로 돌아올까 말까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4개월 이상 일을 안 하기에 세상은 척박한 곳이다. 이 문단 역시 미친 사람이 독백한 부분답게 매우 두서가 없다.


어쨌거나 나는 사실상 나에게 지옥이 되어버린 대학원이라는 공간에서 살 길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살 길이 없었다. 살 길을 찾지 못한 나는 자기 몸에 상처를 내는 방법으로 답답함을 해소해 보려 했다. 당연히 해소가 되지 않았다. 끊임없는 자해 욕구에 시달리는 내 모습을 보다 못한, 현재는 내 애인이 된 친구가 나를 끌고 응급실에 갔는데, 코로나 시국에 친구가 열이 나는 바람에 나는 응급실에 혼자 들어갔다. 아직도 접수계원이 '자살 욕구 때문에 응급실에 왔어요'라는 말에 '근데 혼자 오셨어요?'라고 물어봤던 게 생각난다. 응급실에 오는 모든 사람이 일행을 데리고 올 수 있는 건 아니다. 나는 혼자서 외로이 응급실에 앉아 있다가 정신과 의사를 만났다. 그는 새파랗게 젊었고 새파랗게 싸가지가 없었다. "뭐가 그렇게 힘드세요?"라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인생이요."라고 대답했다.


터덜터덜 공황장애 약을 받아서 집에 돌아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같은 수업을 듣는 수강생의 카톡이 왔다. 다음주까지 논문 프로포절을 제출하라는 거였다. 어제 자살 시도한 사람한테 오늘 논문 프로포절을 쓰라고?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러나 나는 썼다. 교수님한테 엄청 까이겠지 라고 생각하며 뭐라도 썼다. 그리고 아 시발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1년을 더 버텼다. 거의 내 목숨을 가지고 줄타기를 한 셈이었다. 버틴 1년의 마지막, 나는 카운터 펀치를 맞게 되는데 한 교수가 내 시험 답지를 보더니(열심히 한 수업이었다) 자질이 없다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F를 줬다. 심지어 자질이 없다는 소리를 하려고 폭설이 쏟아지는 엄동설한의 날 나를 학교 자기 연구실까지 불러냈다. 연구실에서 나는 자질이 없다는 소리를 듣고 차에 치여서 콱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너무 추워서 손이 터져서 피가 났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시발이란 생각도 안 들었다. 자살 충동이란 그런 것이다. 죽겠다는 생각 외에 어떤 불만도, 슬픔도 없는 기묘한 상태가 된다.


그 상태를 타개하기 위해 나는 일단 자살하기 이전에 자살행위에 가까운 여러가지 모험을 시도했는데, 그 모험에 대해서는 Slit이라는 다른 소설에서 읽어보길 바란다. 아니, 이 모놀로그에서도 말할 일이 있겠지만 일단 이 맥락에서는 생략한다. 한참 혼란의 시기를 겪다가 나는 결국 휴학을 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고 애인에게 휴학을 할지 말지 타로를 봐달라고 했는데 휴학을 하라는 결과가 나왔다. 미친 사람답게 나는 그 결과를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대학원의 휴학 절차라는 게 굉장히 지난한 것이었다. 우선 다니던 정신과에서 소견서를 받고 그 다음 소견서를 종합병원의 정신과 과장에게 보여줘서 '흠 당신은 정말 아프군요'라는 진단을 받은 후 진단서를 뽑아서 학교에 제출해야 한다. 소견서를 받는 것은 매우 쉬웠다. 정신과 의사가 보기에도 내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나 보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제정신이 아닌 사람 연기를 하면서 종합병원에 갔다. 가서 세상의 모든 희망을 잃은 사람 같은 표정을 지으며 소견서를 내밀었다. 잠시 심각하게 소견서를 살펴본 의사가 알겠다고 하고 4개월 이상의 요양이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적어줬다. 순간 나는 너무 행복했다. 드디어 나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 나는 미친 사람이다! 이제 아무도 나에게 토를 달지 않겠지! 그 서류를 제출하고 나는 잠시 사슬에서 풀려난 대학원생이 되었다.


사실 고민을 많이 했다. 우리 사회에서 우울증에다 공황장애 환자라는 게 서류로 남아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런데 어차피 내 인생은 좋을 게 하나도 없다. 그래서 아무 상관이 없었다. 주변에서 이 소식을 들은 몇몇 친구들이 4개월 이상 쉬라고 조언을 해주었지만, 나에게는 4개월 이상의 생활비가 없었다. 그래서 황당하게도 휴학을 한 후 곧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진단서란 그런 역할을 했다. 나에게 찍힌 낙인이면서, 동시에 나를 자유롭게 했다. 내 스스로 나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명명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래서 그 여정은 유쾌하면서도 어딘지 슬픈 데가 있었다. 하지만 뭐 어떠랴, 나는 6개월의 자유를 얻었다.


그런데 1월의 어느날, 갑자기 내게 휴학기간이 끝났다는 문자가 왔다. 이게 뭔 소린가, 난 1년 휴학을 하려고 했는데, 라고 생각해서 학교에 전화를 해보니 6개월치 휴식이 더 필요하다는 진단서를 제출하란다. 1년치 정도 미쳐 있어야 되는데 6개월치밖에 안 미쳐있다는 학교의 판단이었다. 나는 한 20년치 정도 미쳐있는데 학교가 나를 물로 보고 있다. 그렇다고 20년치 진단서를 뽑아올수도 없는 셈이다. 그래서 나는, 여유가 생기면 곧바로 또, 그 진단서의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정신과 의사에게 "저 6개월 더 쉬어야 됩니다"라고 주장하고, 소견서를 받아서 종합병원에 또 세상 다 잃은 얼굴로 가서 "6개월만 더 쉬게 해주세요 선생님 흑흑"이라고 읍소해야 한다. 이게 뭔 전쟁통인가? 하지만 복학하면 전쟁통보다 더 개판인 상황을 마주해야 할 것을 아는 나는, 정신과 의사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리를 굴려 본다. 무슨 말을 해야 우울해 보일까? 여러분의 의견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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