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차에 치여 죽고 싶던 날
엄마가 오늘 죽으라는 소리를 했다.
아니, 그건 사실이 아니다. 제발 좀 잘 살라고 했다. 돈이라도 뭐라도 줄 테니 제발 좀 멀쩡하게 이성적으로 잘 살라고 했다. 하지만 그건 나보고 죽으라는 소리다. 내가 필요한 건 돈이 아닌 정서적 지지다. 나는 하루하루 눈을 뜨면 예사로 죽고 싶은 나날들을 살아가고 있다. 지속성 우울장애 환자이기 때문이다. 가끔 주요우울장애로 넘어가기도 한다. 내가 이걸 아는 이유는 내가 심리학을 아주 오랫동안 공부했기 때문이다. 나는 심리학에서 정신병들을 배우면서 내가 무슨 질환을 가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 기준도 나에게 부합했고 저 기준도 나에게 부합했다. 그러면서 내가 불안장애, 공황장애, 섭식장애, 전환장애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무덤덤한 과정이었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그게 내 감상의 전부였다.
내 그럴 줄 알았지.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죽고 싶었다. 내 기억에 최초로 죽고 싶은 감정을 크게 느꼈던 것은 12살 즈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 읽었던 소설에 일산화탄소를 마시면 죽을 수 있다고 해서 일산화탄소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머릿속으로 백 가지 떠올려보면서 집안을 일산화탄소로 채워놓고 죽을 생각을 했다. 죽은 채로 집에 돌아오는 엄마를 맞이하고 싶었다. 그게 내 복수의 방법이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잘 살라고 했기 때문이다. 이성적으로 잘 살라고. 매일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방청소를 꼬박꼬박 해놓고 공부도 잘하고 예의도 바르고 친절하고 살갑고 곰살궂고 애교도 많고 활기찬 삶. 그런 것을 나에게 요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우울하고 힘도 없고 아침에 일어나면 또 하루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하고 매사에 슬프고 범사에 피곤하고 망상에 차 있고 이상한 생각을 하고 활기도 없는 아이였다. 지금도 그렇다. 그건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다. 마치 머리카락이 검은 색인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내 의지가 아니듯이, 이렇게 된 건 내 의지가 아니다.
이성적으로 잘 살라는 말은 참 가혹하다. 우리는 암 환자에게는 암에 걸린 것이 네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으면서 우울증 환자가 죽고싶다고 하면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냐고 말한다. 나는 어쩌다보니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상담 대학원까지 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학습 능력 검사 조교 일을 하다가 검사 해석 상담에서 강사가 우울이 있는 사람들은 주변 사람들을 전염시키기 때문에 회사에서 기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착잡해졌다. 나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어디에 가도 음울한 분위기를 풍기고 어디에 가도 기피당하는 사람이구나. 어쩌면 암 환자에게는 관대하지만 우울증 환자에게는 가혹한 이유는 우울증은 암과 달리 전염되는 질환이어서 그런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만, 나도 사회의 일원이 되고 싶다. 이렇게 이상하고 음울한 사람이라도 회사에서 일을 하고 싶고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싶다. 그것은 미셸 푸코가 이야기했듯이 미친 사람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정신병동에 입원 격리 시키기기 시작한 근대 사회의 병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골치 아픈 이야기는 하지 말자. 누가 나같은 미친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겠는가.
어쨌거나 나는 오늘 죽을 생각을 했다. 그 충동에 대해 별로 이성적으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그 충동은 언제나 비이성적으로 불현듯 갑작스럽게 골목길에서 뛰쳐나오는 차처럼 달려들어 나를 치고는 휭 지나가버리고는 하니까. 나는 오늘 엄마에게서 차라리 죽으라는 말이 나을 법한 말들을 들었고 그래서 죽으려고 했다. 가지고 있는 약을 한번에 다 털어먹을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유언장에 뭐라고 쓰지, 난 사실 오랫동안 죽으려고 했는데 드디어 죽게 되는구나, 그런 생각들을 하다가, 내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어 있는 반지가 뱅글뱅글 돌아가는 걸 느끼면서 죽는 대신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반지를 끼고 있는 또 한 명의 다른 사람은 나의 애인이자 절친한 친구로 나와 같이 미친 사람이다. 우울증으로 시작하는 긴 진단명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우리는 서로가 왜 죽고 싶어하는지, 그럼에도 왜 살아가는지 알고 있다. 그 말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들을 말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고 있다. 우리는 서로를 정서적으로 지지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함께다. 엄마는 네가 친구들에게 왜 그렇게 목을 메는지 모르겠다며, 가족들은 널 책임지지만 친구들은 널 책임지지 않는다는 소리를 한다. 엄마는 또 틀렸다. 내게 필요한 것은 책임져주는 사람이 아니라 지지해주는 사람이다. 누군가 나를 지지해준다면, 나는 천천히 누워있던 링 위에서 일어나 다시 삶을 책임지려고 마음을 먹을 수 있다. 그 과정은 길고 지루하고 답답하겠지만, 미친 사람과 함께 한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빠르고 또 빠른 이 사회에서 느릿느릿한 것은 욕을 먹는다. 나는 사이다에는 고구마를, 명쾌한 해답에는 길고 느릿느릿한 고민을 선사해서 욕을 먹는 사람이다. 내 증상은 뭐 하나 제대로 설명되는 것이 없고 내 감정들은 모두 흐릿하기만 해서 뭐 하나 제대로 전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살고 싶다. 엄마의 차에 치여 죽고 싶던 날, 나는 살고 싶었다. 살고 싶어서 그랬다. 나는 목숨이 아홉 개쯤 되는 고양이, 아니면 아흔아홉 개쯤 되는 구미호일지도 모른다. 내 목숨은 하나씩 하나씩 오늘 같은 날마다 죽어서 사라지고 있다. 아흔아홉 개, 구백구십개가 다 사라질 때면 나는 정말로 닳아져 없어버리고 말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뮤지컬 '렌트'의 노래 가사에는 이런 게 있다. "한 해를 어떻게 세나요? 그녀가 죽은 방법들로." 이 가사를 이해하는가? 나는 오늘 엄마의 차에 치이는 방법으로 죽었다. 15년 전에는 일산화탄소에 중독되는 방법으로. 내일은 또 무슨 방법으로 죽게 될까. 그러다가 정말로, 정말로 나는 언제 죽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