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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Jan 10. 2024

나았습니까? 아니요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6화 (마지막)

우선 우울증이 나아져야 심각한 집중력 저하 증상이 나아질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나는 우울해졌다. 거의 평생을 고군분투했지만 우울증이 딱히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심할 때에 비하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우울증의 경중을 0부터 10까지로 단계를 나누면, 5 정도까지는 나아질 수 있는데 0으로는 절대 가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이런 고민을 상담에서 털어놓자 상담사 선생님은 자신의 내담자 중에도 나아진 사람이 많이 있으며 나도 꼭 나아질 거라고 격려해줬으나 별로 위로가 되진 않았다. 그즈음 나는 내가 취한 모든 조치가 효과 없었음을 인정했다. 상담이나 정신과 치료 등이 내가 '견딜 수 있는' 정도의 상태로는 만들어 주었으나 약 없이도 버틸 수 있는 상태로는 만들어 주지 않았다. 나는 당장 불면증 약만 떨어져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지만 2024년이 된 지금, 나는 약을 먹지 않고 상담을 다니지 않아도 그럭저럭 괜찮은 정신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가끔 멘탈을 뒤흔드는 일이 일어나면 인생이 너무 싫고 또 온갖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가끔 해결할 수 없어 보이는 고민거리가 내 눈 앞에 나타날 땐 마음껏 걱정을 털어놓을 수 있는 상담사 선생님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지금이 어느 때보다 내 정신이 건강하게 느껴진다.


사실 내가 싹 바뀌어 다시 태어난 건 아니다.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다운되어 있다. 우울해할 때도 있고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잠에 못 들 때도 있지만, 이제 나는 이 상태를 그냥 나 자신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자주 우울해하는 애였고, 너무 생각이 많아서 고통스러워했지만 그냥 그게 내 성격 중 내가 힘들어하는 부분인 거다. 세상에 긍정적인 사람이 있으면 부정적인 사람도 있는 거고, 오히려 이런 성격이라서 창작에 도움이 될 때도 많다. 그런 성격을 바꾸고 싶어 발버둥칠 때 나는 가장 불행했다.


"나는 그냥 이런 사람이구나"를 마음에 새긴 순간부터,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메울 때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아' 이상의 고민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냥, 생각이 너무 많은 거다. 어쩌겠는가. 그래서 나는 이제 인생이 아무리 고되고 힘들어도 다시 나 자신이 너무 싫어서, 혹은 세상 모든 일에 너무 겁이 앞서서 무서워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에게 오는 것들, 나에게서 가는 것들 모두를 그냥 담담하게 받아들이면 된다는 걸, 때로는 참고 때로는 좀 우울해하며 살면 된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누가 나에게 "그 모든 힘들던 증상은 나았나요?"라고 물어보면 난 "아니요"라고 대답해야겠지만, "이제 괜찮나요?"라고 물어보면 "네!"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낫지 않아도 어떠랴. 어쩌면 애초에 나을 수 없는, 내가 안고 가야 할 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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