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참여했던 글방 후기
3월 한달간 글방에 참여했다. 6명 남짓의 사람들이 모여서, 매주 각자 써온 글에 대해 합평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다. 귀중한 주말에 3시간이 넘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것, 참가비가 있다는 것 모두 참여를 망설이게 만든 이유였지만, 그럼에도 과감하게 신청서를 쓰고 참가비를 입금했다. 왜냐하면 뒤집어지게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2023년 여름쯤부터 나는 계속 골머리를 앓았다. 내 글이 재미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읽어도 내 글이 재미없는데 다른 사람이 읽으면 얼마나 재미없겠는가. 내가 글만으로 먹고 살만큼 대단한 작가가 될 수는 없을지라도, ‘아 내가 이런 글을 읽느라 시간을 낭비했다니’ 싶은 글은 쓰지 않았으면 했다. 인스타자기소개란에 잔뜩 멋을 부려 써놓은 문구처럼, 글쓰는 것은 나의 오랜 습관이자 사랑이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못하는 건…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물론 나는 좋아하는 것 중에 못하는 게 꽤 많다. 노래 부르고 춤추는 걸 좋아하지만 정말 눈뜨고 보기 힘들 지경으로 못한다.
그런데 내 글이 재미없는 건 왜 받아들이기 힘들었냐 하면, 나는 항상 재미있는 글을 쓰는 축에 속한다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빵 터지는 글을 쓰려고 이런저런 노력도 많이 했고,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만큼 부러운 이가 없다. 어떤 때는 나도 그렇게 글 잘 쓰는 사람이라며 우쭐해하기도 했다. 그런 것도 잠시,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글이 지루해진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내가 2021년부터 2022년까지 쓴 글을 죄다 재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하나의 시리즈가 흥행하면 그 시리즈로 시즌 10쯤까지 내고야 마는 미국 드라마 제작사들처럼 나는 사람들의 반응을 얻을 수 있었던 글 소재, 섹스를 열심히 우려먹고 있었다. 다른 소재를 써보려고도 했는데 이상하게 어떤 이야기를 하든 결론적으로는 그 얘기가 나왔다. 나는 좀 망연자실해졌다. 섹스 얘기밖에 못 쓰는 작가가 된 기분이었다. 심지어 소설 원고를 작업하다가도 중간에 섹스신을 집어넣었다. 어쩌다 이렇게 내가 ‘창작 섹무새’가 되었을까. 암담했다. 범람하기 시작한 인스타 매거진의 칼럼 중 원나잇과 틴더를 소재로 한 것들이 흥행하면서 많은 글의 패턴이 정형화되어 버린 것처럼 내 글 역시 정형화되어가고 있었다.
결국 2023년 여름에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제 나는 섹스에 대해서 쓰지 않는다. 물론 섹스는 삶의 중요한 부분들 중 하나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맨날 그 얘기만 하는 게 나의 창작에 건강한 영향을 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러고 나서도 나는 매일 에세이를 써서 사람들에게 메일로 보내주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었기에 어떻게든 일상 속에서 소재를 찾아 썼다. 나는 섹스 없이도 글을 쓸 수 있다! 한 줄기 희망이 보였다.
그렇게 꾸준히 글을 쓰고 또 썼다. 사실 그 중간에 섹스 얘기를 쓰기도 했다. 소재가 떨어지면 어쩔 수가 없었다. 쓰고 또 쓰다가 보니 다시 그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내 글은 재미가 없다. 글에서 도파민 활성화 요소를 쏙 빼버리니 갑자기 너무 심심해졌다. 내가 늘 이랬나 싶어서 예전에 쓴 글을 좀 읽어보니 예전에는 섹스 소재 없이도 제법 재치 있는 글을 쓰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불안해졌다. 작가로서의 수명을 다해가고 있는 건가? 아니 수명을 다해간다고 하기에는 글 써서 돈 번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글을 잘 쓴다는 건 나의 착각이 아니었을까? 애초에 글쓰는 걸 좋아하긴 했나? 나의 나쁜 버릇이 등장했다. 하나가 꼬이기 시작하면 그 사실을 둘러싼 모든 상황을 의심하고 부정하는 습관. 매일 자기 전에 고민을 했다. 무슨 글을 써야 재미있을까? 나는 재미있는 글을 쓸 수 있나? 그러다 잠이 들면 꿈에 그럴듯한 글을 쓰는 내가 나왔다. 깨어나면 꿈 속에서 쓰고 있던 그럴듯한 글이 무슨 내용이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서 서글펐다.
2024년부터 나는 글쓰는 게 무서워졌다. 자꾸 쓰나마나한 내용을 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글은…누구나 쓰는 거잖아…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아서 글을 쓰다 말고 저장도 안 한 채 노트북을 꺼버리는 일이 허다했다. 그즈음 애인이 물어봤다. 글쓰는 게 좋다고 하지 않았냐고, 왜 요즘은 글을 안 쓰냐고. 나는 답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때 나는 글쓰는 게 싫어진 상태였다. 너무 핵심을 찌른 질문이라서 답으로 아무 말이나 했다. 그 와중에도 확실했던 건, 나는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잃고 싶지 않았다는 거다. 내가 아무리 제정신이 아닐 때에도 항상 내 곁을 지킨 건 글쓰기였다. 생각이 너무 복잡해진 나는 이럴 때야말로 글쓰는 동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글방에 들어가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실마리가 잡힐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글방에서 큰 도움을 받았다. 첫번째로 내 글이 그냥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글이 아니라는 자신감을 얻었다. 내 글에는 특유의 경쾌한 리듬감이 있고, 어떤 상황이든 그 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시각이 독특하다는 평가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두번째로 내 글이 왜 지루한지, 점점 재미없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해답이었다. 글이 전반적으로 너무 명확하다고, 독자의 오해를 사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느껴진다고 했다. 너무 보이는 그대로인 사람, 의외성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재미없는 것처럼, 그러한 이유로 글이 쫀쫀하게 긴장감있다기보다 ‘음, 그렇구나.’ 싶다는 의견을 들었다. 그게 너무 와닿아서 모니터 너머를 향해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로 이거였다. 내가 고작 6글자로 요약한 ‘글이 재미없다’는 걸 해설하면 바로 이런 말이었다. 글이 늘어져있다는 것. ‘이 다음엔 무슨 내용이 나오는데? 그래서 어떻게 되는데?’하는 간절함과 목마름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무미건조한 글이라는 것.
이렇게 두 가지의 핵심적인 추진력을 얻은 후에, 한동안은 글을 쓰지 못했다. 그건 외부적 요인과 관련이 있다. 오랫동안 함께해온 반려견이 노환으로 앓아눕게 되어서 나는 흔들리는 내 마음을 잡느라 심리적인 에너지를 다 썼다. 무언가 감상에 잠겨 생각하다보면 자꾸 눈물이 나고 마음이 아파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려는 시간이 한참 이어졌다. 다행히 이제는 조금씩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탄탄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글을 쓰고 싶다. 지난주에 단편집 ‘칵테일, 러브, 좀비’를 읽고 나는 탄성이 나왔다. 이 소설이 바로 그런 글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뒤집어지게 재미있는 글. 그러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선 그 마음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해받지 않으려는 마음, 이상한 이야기를 쓰지 않으려는 마음, 아무 말이나 하지 않으려는 마음. 거기서 벗어나 독자를 궁금하게 만들어야 한다.
꼭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지. 아주 많이. 많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