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처럼 지혜롭게
요즘 주변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경계’와 ‘건강한 거리’.
지금의 나에게 가장 필요하면서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영역이다.
나만의 선이 흐릿하면, 누군가 그것을 넘어섰는지조차 알아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사랑 안에서 균형 있게 선을 세우는 일은 여전히 내게 남아 있는 과제이자, 자주 걸려 넘어지는 부분이기도 하다.
향 선생님과 사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도,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건강한 경계 설정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진심을 아무에게나 쉽게 내어주어서는 안 된다는 조언도 함께였다.
한 언니는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이유로 온전한 이해를 요구하며 선을 넘는 사람에게는 거리를 두어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나는 힘든 사람들을 마주할 때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올라온다.
연민과 안타까움, 그리고 또 하나는 죄책감이다.
도움을 줄 수 없는 때에는 오히려 그 죄책감이 더 크게 다가오는 듯하다.
때로는 그 마음을 알고 이용하는 사람들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스스로를 낮추어 바라보는 사람이 자신을 이해해주고 눈높이를 맞추어 준 나의 태도를 오히려 자신의 기준으로 해석하여, 나까지 낮추어 보거나 가볍게 여기는 모습을 보기도 했다.
공감하려는 마음이 관계를 회복시키기보다, 오히려 나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어 보이게 만드는 결과로 이어질 때가 있었다.
물론 그보다 더 많은 순간에는, 진심을 귀하게 받아 주는 사람들과 소중한 인연을 맺기도 했다.
나와 비슷한 기준을 가진 이들과는 서로 조심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가끔은 그 선을 가볍게 넘나들거나 시험하는 사람들, 혹은 전혀 다른 기준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게 된다.
이전에는 그런 이들을 원망하거나 비난하기도 했지만, 돌아보면 모호했던 나의 기준과 상대의 사정을 지나치게 이해하려 했던 태도가 오히려 나의 선을 쉽게 내어주는 결과를 만들었던 것 같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 또한 그러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사랑하되, 그 안에서 분별하며 적절한 간격을 유지하는 일 역시 필요한 단계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건강한 관계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방식으로.
상대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무례함까지 받아들이게 되면, 결국 그들에게는 잘못된 행동을 허용하게 되고, 나에게는 상처가 남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내 영혼 또한 지치고 무너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모습 역시 아닐 것이다.
온화함과 부드러움, 따뜻함은 잃지 않되, 죄책감에 흔들려 스스로의 기준을 내려놓지 않기를.
이해하되 어디까지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기준은 분명히 세워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려운 형편이라는 이유로 무리한 요구까지 감당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스스로를 소진시키는 일일지도 모른다.
따뜻하지만 휘둘리지 않고,
용서하되 분별을 잃지 않으며,
부드럽지만 진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
그 길이 올해 내가 마음에 새기고 실천해야 할 방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은 허탈함이 밀려오기도 한다.
진심을 다했지만 그 마음이 가볍게 여겨지고, 오히려 우스운 사람이 된 듯 느껴졌던 순간들.
그러나 이제는 원망하기보다, 용서하되 거리를 둘 줄 아는 태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거룩한 간격을 유지하되, 요셉이 형들을 용서했음에도 그들의 변화를 신중히 지켜보았던 것처럼.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살아가는 균형.
그 조화를 회복하는 것이 지금 내게 주어진 다음 단계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