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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yeongrim Amy Kang Feb 08. 2023

킥 오프, 그리고 관찰

2023.02.08

지난달의 구조조정 해프닝이 훅 지나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회사는 다시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

여느 다른 회사들과 다름없이 꽤나 규모가 있는 우리 회사는 북미지역 Company Kick off, Apac, 그리고 EMEA 이런 식으로 나누어 시간별로 Kick off를 진행한다.


그리고 EMEA, 내가 소속되어 있는 영국 런던 지사의 CKO 가 시작 되었다.


원칙적으로는 아직 내가 회삿돈으로 기차표와 호텔비용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그냥 집에서 링크로 보면 안 되나 했는데, 워낙 중요한 이벤트라 회사에 나왔었던 사람이던 아니든 간에 무조건 다 in-Person참가라며, 꼭 회사가 마련해 둔 장소에 모여 참석하기를 요구했다.


그렇게 나는, 항상 그렇든 런던에 가기 위해 7시 23 분행 기차표를 끊고, 런던행 기차에 탔다.


영하 2도, 얼굴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바람이 내 앞으로 씽씽 불고 지나갔지만, 오들오들 떨면서도, 뭔가 진귀한 마음이 들어 한숨 한번 쉬지 않고, 이어폰을 끼고 차분히 CKO 장소로 향했다. 


기차로 지나가는 길, 듬성듬성, 들판과 초원 위 나무 잎사귀 위에 뿌려져 있는 하얀색 서리가 갖올라온 햇빛에 반사되어서 인스타감성을 자아냈다. 



8시 반까지 도착하라고 했지만, 최근 들어 미친 듯이 몰려오는 기차, 우편 등등의 영국 파업은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들의 발을 묶었다.


오늘은 파업날이 아니었지만, 지난날의 파업으로 인해서 인파가 몰려들고, 사람들이 일하는 속도가 더뎌지자, 기차도착, 출발시간도 더뎠다. 


8시 반은 무슨 9시에 도착하면 다행이다 싶었다. 

바로 후다닥 역에 도착해, 빠른 걸음으로 나의 두통을 제거해 줄, 오트라테를 머그잔에 가득 담아 걸음을 재촉했다. 해가 나왔는데도, 여전히 얼굴은 얼얼하고, 몸은 후들후들 떨린다.


이놈의 영국지형은 아무리 다녀도 소용이 없다. 나같이 길치인 사람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서, AR/VR 구글맵 온갖 것이 다 발명되어 선보여져도, 소용없다. 오늘도 나는 가는 길을 헤맸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게다가 길에 듬성듬성 어처구니없이 널려있는 공사판들은 나의 머리를 더 헤뒤집었다. 거의 다 왔나 싶어 이리저리 둘러봤는데도,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생각한 그림의 건물이 없어서 둘러봤더니, 아침을 길에서 해결하고 있는 런던인이 나에게 "Are you lost?"라고 하며 인심 좋게 웃었다.


그래서 원래는 모른척할게 100 프로지만, 이번에는 무슨 생각인지, 같이 웃으며, 그런 것 같다며,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냐고 물었다. 그는 껄껄 웃으며, "Right in front of you!"라고 했다.


아.. 이 오피스 빌딩이 콘퍼런스 빌딩이었구나... 굉장히 뜬금없다... 

고맙다는 인사를 후딱 전한 뒤, 나는 신호등도 없는 도로 위에서, 침을 꿀떡 삼키고 길을 건널 준비를 했다. 자고로 런던에서, 아니 영국에서 살았다면, 신호등 따위... 같이 길을 건너는 사람들과 함께 무리를 지어, 후다닥 길을 건넜다. 


드디어 도착.

굉장히 일단 입구부터 쓸데없이 럭셔리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외부인은 입장표를 받고, 카드로 엘리베이터를 움직여 입장할 수 있었다 드디어 꼭대기 도착. 이미 99프로의 사람들이 와있었고, 차, 커피, 다른 빵 머핀등의 주전부리들이 놓여있었다.


아... 이런 식으로 진행하는구나. 갑자기 뭔가 대우받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간사하다... 큰 회의장과 무료로 나오는 한 병에 10파운드는 돼 보이는 스파클링/ still 물병을 마구잡이로 잡아 마실 수 있다는 그 물질적인 것 하나가 이렇게 회사를 향한 애사심을 바꾼다. 


회사의 여러 지역에서부터 멀리 날아온 고위간부들이 이번 fiscal year에는 무슨 목표로 어떻게 일을 할 것인지, 비전은 어떻게 되는지 등등을 말했다. PDE 내가 속해있는 팀의 간부, 나를 고용했던 빅보스가 나와서 프레젠테이션을 선보였다. 


그 몇 안 되는 슬라이드에 내가 속해있는 팀과, 프로젝트의 이름이 떡하니 160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 선보여졌다. 그리고 이걸로 밀고 가겠다는 리더십의 한마디가, 나의 다음 프로젝트의 입지를 더욱 단단히 했다. 

그리고 몰려오는; 내가 여기서 뭔가 해낼 수도 있다는 기분, 자신, 그리고 믿음.


나 혼자는 무조건 해내지 못하겠지만, 팀과 함께 이루어나가면 뭐 하나는 만들어내겠구나 하는 어처구니없는 긍정과 함께, 아이디어가 솟구쳤다. 


지난번보다 훨씬 더 , 잘해야겠다. 더 좋은 Design과 flow를 선보여야겠다. 여기서 드디어 톱니바퀴 부품 중의 하나가 아니라, 톱니바퀴를 굴리게 하는 레버로 아니 그 레버를 굴리는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남아, 다른 이에게 나의 가치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제 것, 이런 회사의 이벤트의 힘을 너무 얕봤다.

킥오프니, 타운홀이니, 스팟라이트니 뭐니, 해도 어차피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리 흥, 저리 흥 하며 넘겼다. 어차피 내가 저기서 해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며.


겨우 70 몇 장의 슬라이드 중 딱 2장이었다. 내가 하는 일을 전회사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나의 아이디어를 알아챌 수도 있다는 생각이 나를 벌써 들뜨게 했다. 


일전 나의 프레젠테이션으로 인해서 저 슬라이드를 만든 총책임자인 GM이 나에게 보낸 슬랙의 메시지를 다시 보았다.


"We are so much much better for having you here."

이걸 이번에도 다시 현실로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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