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나는 그날 이후로 도움 주신 모든 분들을 찾아갔다. 사정을 설명하고 회생하겠다는 말씀을 드렸다. 대부분은 밥을 사주셨다. 빌린 돈은 무슨 일을 해서라도 반드시 다 갚겠다며, 말씀드린 비전은 반드시 성공시켜 보겠다며 다짐하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내 창업 스토리의 1라운드 마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Y도 만났다. 대체 왜 야반도주를 했냐는 물음에 자기는 아침에 와서 짐을 가져갔으니 야반도주가 아니라고 우겼다. 이따위 놈을 공동 창업자라고, 형제라고 여겼던 나 자신이 우스워졌다. 한대 팰 각오로 만났으나 괜히 힘만 빠질 것 같아 그냥 돌려보냈다. 거지 같은 놈. 다시는 볼 일 없기 바란다.
사무실 정리는 프로젝트 디렉터로 플랜투비에 두 번째로 입사했던 친구가 도와주었다. 재고를 크라우드 펀딩으로 팔아버리고 판 만큼 해외 가방이 없는 아이들에게 가방을 기부하는 단체에 전달하기로 했다. 그래도 남는 재고는 이사님께 드렸다. 이케아에서 산 가구는 비규격이라 어디에서도 매입해주지 않았다. 너무 아까웠기에 본가와 내 방에 가져다 놓을 수 있는 만큼 다 가져가 버리고 나머지는 그냥 버렸다. 사무실 임대료를 내지 못해 보증금도 다 깎였다. 그나마 남은 돈으로는 빚의 일부를 갚았다.
그리고 2016년 10월. 나는 겨우 회생신청을 할 수 있었다. 2014년 6월에 시작했던 플랜투비는 그날 공식적으로 폐업했다. 추심 전화가 오지 않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정말 너무 행복해서 울음이 날 지경이었다. 차를 캐피털에서 회수해갈 때는 가슴이 미어졌지만. 아무튼 차 뺏기고 집 같았던 사무실 뺏기고 남은 건 빚뿐이었어도 마음만은 홀가분했다. 이후로도 밤낮으로 죽어라 일했다. 도와주신 분들의 회사일을 가져와서 외주 형식으로 작업하기도 하며 돈이 되는 일이라면 선뜻 나서서 일했다. 개인적으로 진 빚을 다 갚은 것은 다음 해 6월쯤이었다.
나는 반드시 다시 일어날 것이다.
K 이사님은 이후 한 번도 뵙지 못했다. 언젠가 내가 반드시 성공해서 좋은 술 한 병 사들고 반드시 찾아뵈어 인사드릴 생각이다.
S는 로스쿨에 들어갔다. 자기가 변호사가 되면 법률자문은 맡겨달라나. 뭐 한 번 도망간 놈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Y는 간간히 들리는 소식에 의하면 또 플랜투비 시절 연 닿았던 회사에 들어갔다고 했다. 한심한 놈. 뭐 이왕 이렇게 된 거 다시 보긴 싫지만 그래도 열심히 잘 살아라.
L 차장은 내가 사업한 지 얼마 안 되어서 T사를 나왔다고 들었다. S와 Y는 내가 혹여나 다시 그 회사에 입사할까 봐 비밀로 했다고 하는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라지.
두 번째 입사자이자 마지막까지 도와주었던 프로젝트 디렉터에게 인터뷰를 요청해 보았다.
-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간단하게 해주세요.
- 저는 플랜투비에서 미모와 지성을 담당했던 김피디입니다.
끝내기로 하자.
맨 처음 입사했던 카피라이터는 서점에서 일하며 자기 글을 쓴다고 했다. 넘버나인도 좋은데, 이것도 어떻게 연재할 수 없나 물어봐야겠다.
우주왕먼지 작화를 담당했던 디자이너는 JUNO라는 이름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브런치에도 그림을 올리고 있고. 얼마 전 자신의 책을 출판했다며 사인을 해서 가져다주었다.
세 번째로 입사했던 프로젝트 매니저는 최근 친구의 회사에서 입사 추천서를 쓰고 있다며 회사 소개 좀 해달라고 연락이 왔다. 나는 그 사람 놓치면 회사 손해라며 제발 추천서 좀 잘 써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입사했던 프로젝트 매니저는 마케팅 방면으로 취직했지만 순탄치 않은지 고향으로 요양을 내려가겠다던 소식이 마지막이었다.
'야 두부라도 사다 줘야 하는 거 아니냐?'
회생 신청이 무사히 끝나고 채권자 집회를 다녀온 길에 친구가 전화로 말했다. '여기 온 사람 중에 표정 밝은 사람은 나 밖에 없더라.' '다시 일어나려고 회생하는 사람은 너 밖에 없었을걸?' '그래도 한 달에 내는 변제금이 얼만지 아냐? 허리가 휜다.' 시답지 않은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법원을 나왔다. '야 그래도 그동안 수고했다.' 당장에 이 회생이 끝나면 뭐부터 해야 할지 막막함 보다 설렘이 더 머릿속에 가득했다. 뭐라도 해봤으니 뭐라도 하겠지. 해보자. 하는 생각이 발을 가볍게 했다.
변제금을 다 갚으려면 5년. 내 신용등급은 대한민국 동 연령대 뒤에서 1%. 지금은 뭘 하려고 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내게 필요한 것이 뭘까 뭐가 부족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며 그 기간 동안 채워보고자 한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경험의 부족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서 한 번 경험치 신명 나게 먹고 5년 뒤에 폭풍 성장 한 번 해보자며 스타트업 바닥에 구직자로 뛰어들었다.
본격적인 스타트업 방랑기의 시작이다.